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임태경의 백혈병 고백, 아픈 사람을 격려하는 따뜻한 마음 본문
언제부턴가 '놀라운 대회 스타킹'을 안 본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기적의 목청킹' 시즌2가 시작된 줄을 알았더라면 좀 더 관심을 가졌을텐데 저는 모르고 있었네요. '기적을 노래하는 야식배달부' 김승일을 비롯하여 다수의 화제 인물을 탄생시켰던 '목청킹' 시즌1은 적잖은 놀라움과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물론 김인혜 교수처럼 폭행과 비리 논란으로 얼룩진 인물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노래를 통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훨씬 더 가슴에 오래 남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인물은 79세의 최고령에도 불구하고 파워풀한 가창력을 선보이며, 평생 함께한 아내를 향해 로맨틱한 세레나데를 불러주셨던 이덕재 할아버지였습니다. 아, 그리고 처음 출연 당시에 너무 심각한 음치성향을 내비쳐서 과연 교정이 가능할까 의심스럽던 28세의 전도사 감성조씨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훈련을 마친 후 '목청킹'이 끝날 무렵에 보여주었던 괄목할만한 성장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정말 그 때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멀쩡한 노래 실력을 자랑하는 걸 보고 "아, 역시 노력해서 안되는 일은 없구나!"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목청킹'만 빼면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은 자체가 갈수록 컨셉이 억지스럽거나 선정적인 쪽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더구나 강호동이 잠정 은퇴한 후 붐과 이특이 맡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몹시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편견일 수도 있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도 원래는 안 보려고 했었는데.
저녁 무렵 인터넷 기사들을 살펴 보다가 문득 "임태경, 중학교 때 백혈병 앓았었다 고백" 이라는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 내용을 보니 '스타킹'에서 새로 시작된 '목청킹2'에 난소암으로 투병중인 소녀가 출연해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자리에 멘토의 자격으로 참석해 있던 임태경이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는, 자신도 중학교 때 백혈병을 앓았었노라고 갑자기 고백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상상 못했던 일이라서 충격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뒤늦게 방송을 보니 이번 '목청킹2'에는 유난히 아픈 사연을 가졌거나 현재 심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더군요. 친한 친구 사이인 중년 남성 김달오씨와 김병주씨는 '달오와 병주'라는 듀엣 이름을 지어 함께 출연했는데, 그 중에도 김달오씨가 최근 겪고 있는 연이은 불행들은 정말 처절한 것이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것만도 충격인데, 1년 전부터 당뇨 합병증으로 급성 녹내장이 진행되어 현재는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끝이 아니라, 그의 친동생은 지난 추석 무렵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껏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고통들을 견뎌낼 힘은 오직 노래에서 나온다고 김달오씨는 말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친구를 부축하고 함께 나온 김병주씨에게도 범상치 않은 아픈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결혼한지 불과 1년만에 뇌종양으로 쓰러졌고 길어야 1년밖에 살 수 없을 거라는 시한부 판정까지 받았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오랜 투병 생활 중에도 부부는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고, 지금은 기적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김병주씨는 아내의 병을 완치시킨 힘 또한 노래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더군요. 눈물 가득한 목소리로 'you raise me up'을 부르는 김병주씨의 노래는 실력과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이겨낸 친구가 곁을 지키고 있으니, 김달오씨의 불행도 머지않아 극복할 수 있겠지요.
그 다음 출연자가 바로 난소암으로 투병중인 17세 소녀 신민지 양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갑자기 학교에서 쓰러진 그녀는 청천벽력같은 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 후 곧바로 힘겨운 항암치료에 들어갔습니다. 예민한 사춘기 소녀로서 극심한 탈모 때문에 결국 삭발까지 해야 했던 경험은 육신의 아픔 못지않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신민지 양은 오히려 엄마가 걱정하실까봐 힘든 기색도 내비치지 않고 의연하게 생활한다더군요. 그녀도 역시 고통을 이겨내는 힘은 노래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임태경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저도 중학교 때 백혈병을 앓았었기 때문에... 민지 양이 지금 어떤 상황일지... 더우기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들 깜짝 놀라서 술렁거리는데, 임태경은 개의치 않고 특유의 차분한 말씨로 민지에게 "운동은 좀 하나요?" 하고 묻더군요. 민지가 "그냥... 숨쉬기 운동이요" 라고 대답하자 임태경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우리에게는 숨쉬기 운동보다 많이 걷는다든가 하는 운동이 조금 필요해요. 빨리 체력을 다시 찾아야... 부르고 싶은 만큼 양껏 노래할 수 있어요!" 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임태경은 자신이 과거에 백혈병으로 투병한 적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뮤지컬 배우와 팝페라 가수 등으로 활동하면서 브라운관에는 거의 얼굴을 비춘 적 없는 그가 최근 '불후의 명곡2' 등에 출연하면서 활동 반경을 넓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음악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뿐 음악 외적인 일로 화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끌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거든요.
저도 예전부터 '나 가거든'을 비롯한 몇 곡의 노래를 음원을 통해 듣고는 그 목소리에 감탄하긴 했지만, 특히 '불후의 명곡'에서는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명품 보이스와 가창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뮤지컬 배우답게 풍부한 표정과 연기력까지 보태어진 임태경의 무대는 더할 수 없이 매혹적이었지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윤시내의 '열애'는 임태경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노래로 재탄생했습니다. 두 곡 다 애절하고 슬픈 노래인데, 제가 듣기에는 임태경의 애창곡이라는 '지금 이 순간'보다 훨씬 더 그에게 잘 어울리더군요. 단순히 연기력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폐부에서 우러나는 듯한 그 처절함과 슬픈 감성이 왠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관련글 : 임태경 좌절금지! 그는 계속 노래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제는 좀 알 것도 같습니다. 백혈병이라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중병인데, 어린 나이로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그 혹독한 시련을 겪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깊은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병마를 거뜬히 이겨내고 지금 우리에게 귀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임태경이 고통스런 과거를 굳이 털어놓은 이유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통해 신민지 양이 더 강력한 희망과 열정을 얻고 나아가 그 힘으로 완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겠습니까? 목소리 만큼이나 아름다운 그 마음이 하늘에 전달되어 세상을 울리고, 신민지 양 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픈 사람들의 가슴에 치유의 종소리로 울려퍼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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