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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조기 종영 결정의 폐해는 14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법정 드라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판 과정이 대폭 축소되면서, 시청자들은 주인공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맛보거나 패배의 좌절을 느낄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그러잖아도 너무 어려운 경제 전문 용어들이 난무해서 이해하기 힘든데, 잔뜩 몰입하고 있다 보면 어느 새 재판은 황당할 만큼 짧게 끝나 버렸다. 그냥 주인공 김석주(김명민)가 몇 마디 하고, 증인 몇 마디 하고, 이에 맞서는 전지원(진이한)이 몇 마디 했을 뿐인데, 화면이 바뀌면 사람들은 그냥 법원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판결이 내려지는 장면 따위는 과감히 삭제해 버린 것이다. "뭐지? 김명민이 진 거예요?"... "이번에는 이겼나본데?"... 함께 시청하던 우리 부부는 어안이 벙벙한 채 서로 묻고..
인간의 본성은 과연 선한 것일까 악한 것일까? 어쩌면 이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로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어린 아기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행동할 뿐인데, 본능 자체에는 선악의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성인이 되어 사회의 규범을 충분히 익힌 후에도 무작정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한다면 그것은 악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고난 품성을 논할 때 선악보다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공감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면, 최소한 악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타인의 고통을 자기 가슴으로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어도 인간은 참 많은 실수를 저지..
요즈음 나는 공포스럽도록 지독한 '드한기'에 허덕이고 있는 중이다. '드한기'가 무엇의 줄임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뜻은 '도통 볼만한 드라마가 없어서 지루한 시기'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평소 드라마 시청을 즐길 뿐 아니라 리뷰를 쓰는 활동을 통해서도 일상의 활력을 충전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힘든 시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각종 드라마는 여러 방송국에서 차고 넘치게 방송되고 있으며 새로운 작품들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어째서 당최 볼만한 것이 이토록 없는 것일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황금의 제국'이 방송되던 6월부터 9월까지는 정말 행복했었다. 그 두 작품 외에도 썩 괜찮다 싶은 드라마가 초가을 까지는 제법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후부터는 거의 전멸 수준이..
너무 강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이었을까요? 제가 김경탁(김재중)의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듯 합니다. 서출이라는 태생적 설움은 일찌기 짐작하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 슬픔을 디딤돌 삼아 절치부심하고 독하게 노력하여 나중에는 이복형 대균(김명수)의 뺨을 치는 야심가로 성장할 거라고 예상했었죠.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그의 눈빛은 왠지, 작고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순한 남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좀 멀어 보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영래(박민영)를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도 처음부터 순도 100%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녀를 사랑하는 진심이 70~80% 가량은 되겠지만, 나머지20~30% 쯤은 집착과 소유욕 등의 감정도 섞여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김경탁은 너무나 외로운 사람이..
'닥터 진' 7회의 중심부에서 극을 이끌어간 캐릭터는 진혁(송승헌)과 홍영래(박민영)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흥선군 이하응(이범수)이나 종사관 김경탁(김재중)도 아니었습니다. 이름없는 풀꽃의 은은한 향기와 초록빛을 지녔던 여인... 고달픈 삶 속에서도 고이 간직해 왔던,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던진 여인... 기녀 계향(윤주희)이 바로 7회의 주인공이었지요. 드라마 전체를 볼 때 그녀가 등장한 분량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나, 짧은 동안에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불태우고 떠난 인물이 아닐까 싶군요. 계향의 캐릭터가 더욱 의미있는 까닭은, 그 인물 자체가 철저한 '약자'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생이란 겉보기에만 화려할 뿐, 사실은 서민보다도 못한 처지의 최하층민이죠. 노류..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김영현 작가의 새로운 사극 '뿌리깊은 나무'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 초기 세종조의 한글 창제에 얽힌 비화들을 추리, 액션 등과 결합하여 독특하게 풀어나갈 듯합니다. 초반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데, 이번에는 정말 기대를 걸어봐도 괜찮겠지요? 작가의 이름 때문에 신뢰가 가기는 합니다만, 최근 들어 제법 큰 기대를 가졌던 두 편의 사극에 차례로 실망한 뒤인지라 불안한 마음 또한 적지 않습니다. '계백'은 '상도'와 '다모' 등을 집필했던 정형수 작가의 작품이며, 아역들이 등장하던 초반의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게다가 주인공 계백의 아버지로 나왔던 차인표의 열연이 더욱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성인 연기자들로 교체되면서 어딘가 심상찮은 삐걱거림이 시작되더니,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달려가..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불륜과 이혼 등의 소재는 무척 싫어하는 저에게 있어 '애정만만세'는 처음부터 그닥 애정을 가질만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동시간대에 고정적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없다 보니 무심히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략의 내용은 알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변주리(변정수)와 채희수(한여름)라는 두 명의 불륜녀가 등장하는데, 이 여자들의 뻔뻔함이 어찌나 지독한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원래 여주인공 강재미(이보영)의 남편이었다가 지금은 채희수의 남편이 되어 있는 불륜남 한정수(진이한)의 뻔뻔함은 짝꿍 채희수를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이제껏 선량한 사람들은 점점 더 억울해지고,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내팽개쳐 버린 그 뻔뻔한 인간들은 ..
'몽땅 내 사랑'에서 드디어 감격적인 부녀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토록 애타게 친딸 샛별이를 찾아 헤매면서도 바로 눈앞에 있는 딸(윤승아)을 알아보지 못하고 매일 구박만 하는 김갑수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는데, 그들이 혈육을 만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한 마음이 앞서더군요. 작품 전체의 가장 큰 비밀이 풀렸으니 앞으로의 변화무쌍한 전개는 더욱 흥미로워질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샛별이의 행방에 대해 마지막 단서를 쥐고 있던 최순옥 할머니가 결국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김갑수의 절망은 극에 달했지요. 이제 영영 딸을 찾을 방법이 없어졌다고 여긴 김갑수는 비밀의 방에 꽁꽁 숨겨 놓았던 샛별이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어딘가에 살아 있을 딸을 향해 목 멘 소리로 중얼거..
'몽땅 내 사랑'에서 사랑과 복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전태수가 느닷없이 음주 폭행 사고를 일으켜 하차하게 된 후 '몽땅'의 스토리는 혼란을 거듭해 왔습니다. 전태수가 빠져나간 빈자리가 너무 컸기에, 도대체 이제 와 그를 빼놓고 무슨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었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몽땅'은 다른 캐릭터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소소한 웃음으로 시간을 벌며 잘 버텨왔고, 최근에는 새로 투입된 진이한이 전태수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채움으로써 안정적 포맷을 되찾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후속작으로 예정된 '하이킥 시즌3'의 제작이 늦어짐에 따라, 원래 120회 예정이었던 '몽땅 내 사랑'이 연장되어 무려 200회까지 방송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화제성과 시청률 면에서 대박을 쳤던 '거침없이 하이..
배우 이현진은 1985년생으로 올해 26세이며, 브라운관에 데뷔한 것은 1997년 후반의 시트콤 '김치치즈스마일'을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이제껏 만 3년 동안 그가 출연한 작품을 거의 다 보았군요. 이현진 때문에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본 것은 아니고, 그냥 재미있는 작품을 고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었지요. 그만큼 이현진은 신인치고 아주 작품 운이 좋은 배우였습니다. 데뷔작인 시트콤 '김치스'는 그 전작인 '거침없이 하이킥'의 명성에 비한다면 미약했으나 그래도 나름대로의 고정팬을 갖고 있는 좋은 작품이었지요. 저는 그 작품을 통해서 엄기준이라는 배우를 처음 알았습니다. 이현진은 엄기준의 동생 역할이었는데, 대학생이며 동시에 수영선수였기때문에 모델 출신의 멋진 몸매도 항상 뽐낼 수 있었고(당시 신인배우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