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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어린 단종은 누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경혜공주(홍수현)의 사가를 찾아가고, 오누이는 서로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부마 정종(이민우)은 친구 신면(송종호)에게 이렇게 말하는군요. "언제나 오늘처럼만 평온했으면 좋겠네. 전하께서도 공주마마께서도 아무 걱정 없이 환히 웃으실 수 있게..." 하지만 신숙주의 아들 신면은 이 평온한 시간이 결코 길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정종의 사람좋은 미소에 화답하지 못합니다. 임금이 궁궐을 비운 그날 밤, 수양대군(김영철)은 네 명의 교자꾼과 한 명의 시종만을 거느린 채 김종서(이순재)의 집을 찾아갑니다. 김종서와 단둘이 마주앉은 수양이 긴히 의논할 것이 있다며 꺼낸 말은, 바로 자신의 장녀 세령(문채원)과 김종서의 막내아들 김승유(..
경혜공주(홍수현)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현재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입니다. 남녀 주인공인 세령(문채원)과 김승유(박시후)는 마음속에 담아두고 사랑을 키워가던 사람과 이별해야만 하는 아픔을 견디는 중이지만, 제게는 그들보다 경혜공주의 고통이 훨씬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원래 경혜공주는 병든 아버지 문종(정동환)의 간절한 부탁을 받고, 어린 남동생(세자, 훗날의 단종)의 앞날을 지켜주기 위해 우의정 김종서(이순재)의 며느리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부마로 낙점되었던 김승유는 수양대군(김영철)의 마수에 걸려 공주를 희롱했다는 누명을 쓰고 참수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그 바람에 김종서는 아들의 목숨의 구하기 위해 수양에게 무릎을 꿇고 정치에서 물러나고 말았으니, 이제 쇠약한 문종의 곁에는 최후의 바람막이조차 사..
학창시절,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端宗哀史)'를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냉혈한 숙부에 의해 끝내 죽임을 당해야 했던 비운의 임금 단종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어린 주군을 지키려 했던 사육신을 비롯한 충신들의 애절한 이야기는 조선 역사 중 가장 슬프면서도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금계필담(金溪筆談)이라는 야사의 일부 내용과 작가의 상상을 보태어 만들어진 이야기군요. 1~2회의 느낌은 아주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제 맘에 꼭 드는 드라마가 없었는데, 이제 '공남' 덕분에 갈증이 좀 풀릴 것도 같습니다. 특히 남주인공 김승유는 '선덕여왕'의 비담 이후로 사극 속의 가장 비극적인 히어로가 될 ..
경수(이상우)의 헤어진 아내(송선미)와 그들의 딸인 수나(전민서)가 42회에 등장하면서 또 한 차례의 파란을 예고했습니다. 저는 경수가 아내와 딸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은연중에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혼 자체를 원하지도 않았고,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일 자체가 곤욕이었을 테니까... 생겨난 아이의 존재는 더욱 그의 어깨를 무겁게 했을 것이며, 창살없는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족쇄였을 테니까, 아무리 자식이지만 별로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족의 재회 장면은 경수의 마음이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비록 여자로서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경수는 아내를 인간적으로 존중하며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자기와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요즘 맏딸 부부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혼까지 갈 것 같지는 않지만,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한 부부 사이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듯 하군요. 그런데 분명 임신한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여인과 단둘이 영화를 보러 간 이수일(이민우)의 행동이 신뢰를 깨뜨리는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양지혜(우희진)를 탓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 지혜의 엄마가 그러하듯이 말이에요. 물론 남편을 대하는 지혜의 태도가 옳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객전도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그 동안 아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수일 본인이 조금씩 극복해 나갔어야 해요. 마치 안 그런 척, 그녀에게 맞춰 주면서 사는 게 편해서 그러는 것처럼 쇼..
큰딸 내외인 양지혜(우희진)와 이수일(이민우)은 평범하고 화목한 커플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귀여운 딸 지나가 있고, 이제 곧 태어날 둘째 아기도 있습니다. 아내 양지혜는 성격이 드세고 이기적인 듯 하지만,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진실하고 매사에 경우가 바른 여인입니다. 상대적으로 착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남편 이수일은 아내에게 눌려 사는 듯 보이지만, 나름대로 자기 삶의 방식을 융통성있게 운영하는 터라 두 사람은 퍽 잘 어울렸지요. 특히 예정에 없던 둘째의 임신으로 한참을 고민하던 지혜가, 이기심을 억누르고 모성의 용기를 발휘하며 둘째를 낳기로 결심하던 장면은 흐뭇한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독특한 사랑과 평범한 사랑이 공존합니다. 가장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태섭(송창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가족들은 최근 태섭(송창의)의 커밍아웃을 경험하며 놀라운 수준의 이해심과 포용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중에는 병걸(윤다훈)이나 수일(이민우)처럼 거부감을 드러내는 일원도 있었으나, 그들의 태도를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이수일의 모습은 아주 전형적인 '보통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속으로는 거부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고 마치 이해하는 것처럼 쿨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요. 만약 태섭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묶여 있지만 않았더라면, 수일의 착하고 순한 성격상 약간의 거부감도 드러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가족들 중에 동성애자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