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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 아릿한 사랑의 예감이 시작되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공주의 남자

'공주의 남자' 아릿한 사랑의 예감이 시작되다

빛무리~ 2011. 7. 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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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端宗哀史)'를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냉혈한 숙부에 의해 끝내 죽임을 당해야 했던 비운의 임금 단종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어린 주군을 지키려 했던 사육신을 비롯한 충신들의 애절한 이야기는 조선 역사 중 가장 슬프면서도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금계필담(金溪筆談)이라는 야사의 일부 내용과 작가의 상상을 보태어 만들어진 이야기군요.

1~2회의 느낌은 아주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제 맘에 꼭 드는 드라마가 없었는데, 이제 '공남' 덕분에 갈증이 좀 풀릴 것도 같습니다. 특히 남주인공 김승유는 '선덕여왕'의 비담 이후로 사극 속의 가장 비극적인 히어로가 될 것으로 보이며, 시청률이 받쳐 준다면 그 역할을 맡은 박시후는 당시의 김남길처럼 선풍적 인기를 끌며 영웅으로 탄생할 듯합니다. 아릿한 사랑의 예감이 시작되었어요.

정사에 기록된 세조의 딸은 '세선'이라는 이름을 썼던 의숙공주 하나뿐이지만, 야사에서는 차녀 '세선' 이외에 '세희'라는 이름의 장녀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세희는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의 행동이 옳지 않다면서 수차례 직언을 하다가 부친의 극심한 노여움을 사게 되는데, 딸이 아비의 손에 죽을까 염려한 어머니는 유모와 함께 세희를 야반도주시키며 되도록 멀리 떠나서 신분을 감추고 살라 했답니다.

그렇게 도망친 심산유곡에서 우연히 고결한 인품의 평민 총각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때마침 유학을 떠나 있어서 계유정난의 피바람을 모면했던 김종서의 손자였습니다. 나중에야 세희의 신분을 알게 된 남편은 원수의 딸과 부부의 연을 맺었음에 망연자실했으나 이미 아들까지 낳은 후인지라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한참의 세월이 더 지나 세조가 병을 얻어 근처에 요양차 왔다는 소식을 들은 세희는 부왕의 행차를 마중나가 슬피 울었고,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있던 세조는 오랜만에 만난 딸을 반가워하며 공주의 결혼생활을 기꺼이 허락했다 합니다. 그래서 김종서의 후손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다지요. 이것이 야사 금계필담(金溪筆談)에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이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각색하여, 세조의 장녀 세령공주(문채원)와 김종서의 막내아들 김승유의 핏빛 로맨스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표현이 꼭 맞겠군요. 승하할 당시 채 마흔이 안 되었던 문종의 역할은 60대 중반의 정동환이 맡았고, 30대의 팔팔한 젊은이였던 수양대군 역할은 59세의 김영철이 맡고 있습니다. 역사 속 현실과는 다르지만 이 노장 배우들의 중후한 카리스마 덕분에 사극의 분위기는 제대로 살아나고 있군요.

특히 인자한 미소 뒤에 차갑게 번뜩이는 칼날을 숨긴 듯한 김영철의 수양대군 연기는 명품 중의 명품이었습니다. 원래 백전노장 김종서(이순재)는 문종과 세조의 아버지인 세종대왕보다도 십여 세나 위였지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문종과 비슷한 연배로 설정되어 있으니, 김승유는 그의 손자가 아니라 아들로 둔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세령공주 외에 또 한 명의 비운의 공주가 등장하니, 바로 문종의 장녀인 경혜공주(홍수현)입니다. 세령과 김승유는 실존인물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나, 경혜공주와 그 남편 정종(이민우)은 엄연히 정사에 기록된 실존인물이군요. 계유정난으로 인해 정종은 죽임을 당했고, 경혜공주는 관비로 전락했으나 훗날 정희왕후의 청원으로 작위를 되찾았습니다. 조카딸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세조는 그녀의 자식들도 면천시켜 주었고,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는 훗날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으로 임명되었다 합니다.

시대 배경이 조선 초기여서인지 이 드라마 속의 공주들은 조선 여인답게 얌전하지 않고, 차라리 고려 여인처럼 활발합니다. 특히 여주인공 세령공주는 선머슴같은 왈가닥이군요. 그녀는 긴 치마를 입은 채 말타기를 즐기는데, 옆타기도 아니고 남자들과 똑같은 자세로 말 등에 앉아서 치마가 뒤집어지도록 달리기가 일쑤니 좀 민망스럽기도 합니다..;; 경혜공주의 캐릭터는 천하제일의 미녀로 설정되어 있는데, 강론 시간이 답답하다는 이유로 툭하면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치러 들어오는 스승들을 골탕먹여 그만두게 합니다. 그 방법은 갖가지 이유로 중간에 드리워진 발을 걷어올리게 하고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넋을 빼놓는 것입니다.

요부와 같은 이러한 행실은 공주로서 지나치게 품위없다 할 것이지만, 어린 아우 단종을 대할 때는 다른 사람처럼 진지하고 어른스런 카리스마를 드러내는군요. 2회까지는 오히려 세령보다 경혜공주의 복합적인 캐릭터가 돋보였습니다. 세령은 오직 왈가닥스런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했으나, 경혜공주는 된장녀 같기도 하고 여장부 같기도 했거든요. 좋게 표현한다면 차갑고 오만하면서도 자유로운 기백을 지닌 공주라 하겠습니다. (** 연기자의 외모를 본다면 홍수현과 문채원의 미모는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막상막하이지만, 캐릭터상으로는 경혜공주가 훨씬 더 미인이고 세령은 비교적 평범한 얼굴로 설정된 것 같습니다.)

김승유는 장가도 들기 전에 기방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는 것만 빼고는 나무랄데 없는 헌헌장부입니다. 젊은 나이에 공주의 강론스승으로 임명될 만큼 학식도 풍부하고, 신숙주의 아들 신면(송종호)과 더불어 검을 수련하는 모습을 보니 무예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양입니다. 왕위 승계 문제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던 문종과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세력을 얻기 위해 동시에 그를 자기의 사윗감으로 점찍는데, 김종서가 문종의 청혼을 받아들이자 수양은 그들의 결합을 막기 위해 김승유를 암살하려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 자리에 자기 딸 세령이 함께 있다가 위험에 처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겠지요.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은 이러했습니다. 사촌 자매인 세령과 경혜공주는 궁궐 안을 거닐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시녀가 다가와 공주의 강론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면서, 지난 번에 공주가 내쫓은 스승을 대신하여 젊은 김승유가 공주의 새로운 스승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합니다. 경혜공주는 강론에 들어가기 싫다고 투덜거리는데, 아버지가 자기를 김승유에게 시집보내려 한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던 세령은 신랑감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다면서 자기가 공주를 대신하여 강론에 들어가겠다고 청합니다.

경혜공주의 당돌한 행실은 이미 스승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던지라, 김승유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말려들지 않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발을 드리운 채로 공부가 시작되었는데, 세령은 낮에 말을 타다가 다친 발목이 아파서 무심결에 다리를 주무르고, 그 바람에 맨살이 드러난 다리가 드리워진 발 밑으로 김승유의 눈에 보이게 됩니다. 공주가 다른 스승들에게 그랬듯이 이번에도 미색을 이용하여 자기를 골탕먹이려는 것으로 오해한 김승유는 거침없이 스스로 발을 들어올리며 세령과 얼굴을 마주 대합니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무엄한 행동조차 서슴지 않는군요.

그러나 공주의 행실을 따끔하게 꾸짖으며 스승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던 김승유의 의도는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그의 목덜미에 묻은 기생의 연지 자국을 발견한 세령이 결코 만만치 않은 언변으로 따지고 들었거든요. 그렇게 불꽃 튀는 첫 만남이 있은 후, 세령은 집으로 돌아와 취미생활인 말타기에 열중하는데 아무도 승마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말을 다루는 솜씨는 어설프기 그지없습니다. 말이 움직이는 대로 속절없이 몸을 맡긴 채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저잣거리를 질주하는데, 위험해 보이는 그 모습을 김승유가 발견하고 쫓아갑니다. 하마터면 말과 함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뻔했던 세령은 다행히 김승유의 구원을 받게 되지요.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목숨을 구해 준 김승유의 사내다운 기백에 세령은 호감을 느끼고, 이 대책없는 말괄량이 공주의 순수함에 김승유도 마음이 끌리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티격태격하면서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궁궐에서는 경혜공주의 혼담이 한창 진행중인데, 김승유는 아직도 세령을 경혜공주로 오인하고 있습니다. 출가하여 규방에 갇히기 전에 그 답답한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한 번이라도 자유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세령의 하소연을 들은 김승유는 그녀를 안스럽게 여기고 제대로 된 승마법을 가르쳐 주는군요.

두 사람은 다시 함께 말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느닷없이 휙휙 화살들이 날아옵니다. 수양대군의 자객들이 쫓아오며 김승유의 목숨을 노리는 거였지요. 절체절명의 순간, 김승유는 세령을 감싸안고 몸을 날려 화살을 피하지만 그 중 한 발이 등에 꽂히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2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제가 원래 사극을 무척 좋아하는데, 한껏 기대했던 '무사 백동수'의 스토리가 너무 허접스러워 실망이 컸습니다. 최민수와 유승호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정을 붙여 보려 애썼지만, 6회에 이르도록 발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워도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지요. 이 허전함을 이제 '공주의 남자'가 제대로 채워 주리라 기대해 봅니다. 대박이었던 1회에 비해 급격히 템포가 느려졌던 2회 때문에 좀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아주 좋아요. 처음부터 구멍이 숭숭 뚫려서 사람을 기막히게 했던 '무사 백동수'의 스토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탄탄함이 느껴집니다. 만약 다음 주에 시작되는 '계백'도 이만큼의 퀄리티를 보여 준다면, 저는 오랜만에 행복한 월화수목을 만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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