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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비가 오십니다. 언제나 정겨운 비님이 오십니다. 어머니... 오늘도 이렇게 저를 찾아와 주시는군요.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토록 황망하게 떠나가신 후, 저는 비가 올 때마다 어머니를 뵙는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어머니와 더불어 맨발로 젖은 풀잎을 밟으며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몸을 맡기던 그 날, 저는 딱딱한 체면과 함께 두려움도 훌훌 벗어 던졌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저를 가르치셨지요. 허울좋은 말이 아니라 거침없이 몸을 던지는 실천으로, 과감한 용기와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머님과 저는 한 나라의 중전이고 세자인데 나막신도 우산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찌 빗속에 뛰어들 수 있느냐고 제가 물었을 때 어머님은 반문하셨습니다. "왜 꼭 그래야만 합니까? 중전은, ..
효명세자라는 역사 속 인물에 퍽이나 관심과 호감을 품고 있던 중, 그를 주인공 삼은 사극이 방송된다 하여 제법 기대를 품어 왔다. 웹소설 원작이라 하니 실제 역사와는 많이 동떨어진 내용일 터라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애써 왔지만, 하필 효명세자 역을 맡은 배우가 '응답하라 1988' 이후로 역시 큰 관심과 호감을 품게 된 박보검인지라 저절로 샘솟는 기대감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절반은 효명세자 때문에, 또 절반은 박보검 때문에 설레며 기다려 온 '구르미 그린 달빛'이 드디어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 1회를 시청한 결과, 스토리는 다소 어설프고 무리수에 오글거리지만 화사한 꿈결처럼 예쁜 화면과 배우들의 상큼한 비주얼이 마음을 사로잡으니 썩 나쁘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 볼만한 드라마가 하도 없어서 그냥 무심히 틀어놓고 있었을 뿐, 초반에는 그닥 흥미롭게 느끼지 못했던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들소')가 최근 엄청나게 재미있어졌다. 갓 스무 살의 여주인공 서봄(고아성)의 캐릭터가 무섭도록 급격히 변화하는데, 그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그런데 재미있기는 하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는 것이 함정이다. 쫄깃한 긴장감 속에서 '풍들소' 14회를 숨죽이고 시청한 후, 내 마음속에 남은 것은 씁쓸한 감정과 묘한 두려움이었다. 서봄은 가난한 서민 가정의 둘째딸이며, 청소년 미혼모 출신의 중졸 여성이다. 19세가 되던 해 봄, 불장난같은 첫사랑으로 덜컥 임신을 한 후 고등학교에서는 자퇴를 해 버렸다. 그러나 만삭이 되어가던 어느 날, 기적과도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