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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추노'라는 드라마의 장르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진중하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정통 사극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되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살던 노비와 하층민들의 삶이 처참한 삶이 적나라하게 배경으로 깔리고, 꼭대기에서부터 개혁을 시도하던 소현세자는 추악한 정쟁(政爭)의 희생양이 되어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하였습니다. 소현세자를 따르던 충신들은 초개와 같이 죽어나가거나 가문이 몰살되고 노비로 전락했으며,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부패한 권력의 핵심들은 여전히 썩은 내음을 풍깁니다. 이에 '노비당'이라는 이름으로 기습과 쿠테타를 전담하는 반란 세력이 가장 아래쪽에서부터 치솟아 올라오는 중이며, 소현세자가 남긴 마지막 혈손 이석견을 중심으로 몰락한 양반들의 세력도 집결의 움..
드라마 '추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한 명씩 뽑아 인물 탐구를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첫번째 주자는 웬만하면 주인공 대길이(장혁)로 선정하고 싶었으나, 6회까지 시청한 현재, 저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고 있는 캐릭터는 오히려 그의 반대편에 꿋꿋이 서 있는 송태하(오지호)입니다. 아마도 저의 타고난 성격과 생활 환경 때문일 거예요. 저는 기본적으로 정(正)과 반(反)이 존재하면 융통성 없게도 항상 정(正) 쪽으로 마음이 기울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나쁜 남자' 신드롬에 물들지 않고 있어요. 물론 나쁜 남자의 매력이 상당히 치명적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항상 제 눈에 더 밟히는 것은, 그 나쁜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착한 남자의 모습이었답..
아서라 왕손아, 그 손을 거두거라 활활타는 불나방처럼 달려들면 너 죽는다 헛귀로 듣지마라, 이 언니의 충언이다 뜰 안에 핀 꽃은 꺾는 법이 아니니라. 내 뜰 안에 핀 꽃을 내 손으로 꺾었다가 그 후로 십년동안 죽은 몸으로 살아가는 나의 꼴이 안 보이느냐, 정녕 이게 산 것이더냐 곱디고운 가시에 찔려 이내 몸은 시체구나. 칼을 맞고 총 맞아도 두려울게 있겠느냐 개똥밭에 구른다한들 아까울게 있겠느냐 오래전에 죽은 몸으로 버티며 살아감은 삼도하(三途河) 건너기 전에 꼭 한번만 보고지고.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비참한 이내 신세 왕손아, 내 아우야, 너는 보고도 모르더냐 아서라,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설화(雪花)는 뜨거우니 너의 손을 델 것이다. 눈속에 피어나니, 그 얼마나 뜨거우랴 눈속보다 더 추웠을 ..
도련님, 지금 계신 곳은 제가 있는 이곳보다 더 춥겠지요? 냉기 가득한 그 곳에서 저를 미워하고 계신가요? 그 어떤 모진 말로 저를 탓하시더라도, 당신의 목소리를 한 번만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언년이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정하신 좋은 혼처도 마다하시고,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저에게 다가와 붉은 꽃신을 신겨 주시며 하시던 말씀이... "나는 평생 살거다. 너랑 같이" ...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한데, 어느덧 무심한 세월은 10년을 넘겼습니다. 뜨거운 입술의 감촉도 생생한데, 이제 도련님의 시신은 흔적조차 없겠군요. 제 오라비가 불을 놓아 집을 태우고 사람들을 죽일 때, 오라비는 저를 살리려 한다 하였지만 사실은 저를 죽인 것이었습니다. 도련님이 그 불길 속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
보소 보소, 오라버니, 귀찮다 말고 날 좀 보소 핏덩이로 버려진 몸, 길바닥에 버려진 몸 사당패가 주워다가 등골뼛골 다 빼먹어 이내 나이 열일곱에 산속 물속 모두 알고 모르는 것 없지마는 마음만은 순백이네 이내 신세 모질다고 외면일랑 하지 맙소 손 잡아도 추운 세상 혼자서야 어찌 사오? 화살잡이 사냥꾼도 제 품안에 드는 새는 고이고이 품어주어 살리는 게 인정인데 길바닥에 굴렀어도 짐승보다 못하겠소? 날 좀 보소, 오라버니, 곱게 곱게 날 좀 보소 사당패 살이 십수년에 춤을 추고 노래할 제 나를 보던 남정네들 그런 눈빛은 하지 말고 지금 나를 보는 눈에 따뜻함만 더해 주소 욕심없이 나를 보는 사내 눈은 처음이오 나를 버린 아비 어미, 살았다면 그랬을까? 나에게도 오라비가 있었다면 그랬을까? 피붙이의 정이란..
저하, 세자 저하, 신(臣)을 용서하옵소서. 마땅히 일어서야 할 때를 깨닫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온 불충한 신을 용서하옵소서. 흉중(胸中)에 품으셨던 큰 뜻을 채 펼치지 못하고 한스러이 떠나실 제, 곁에서 지켜 드리지 못한 회한이 뒤늦게 이 가슴을 치나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지언정 포로로 끌려가지는 않겠다며, 일개 무장에 불과한 신이 부리던 무모한 오기를 저하께서는 탓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의 눈을 틔어 주셨습니다. 보다 큰 뜻을 위해서는 일시 치욕을 견디며 숙일 줄도 알아야 진정한 대장부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하를 따르며, 결코 짧지 않았던 오욕의 세월 속에서 신은 보았나이다. 저하의 원대한 꿈을 보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끝없는 노력을 보았고, 멀리 본국 땅에서 시름에 허덕일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