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책과 영화와 연극 (62)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큰 기대는 없었으나 그저 호기심에 '고사2'를 보고 왔습니다. 전편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능했지만, 역시 수작(秀作)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여 저의 예상은 엇나가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과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시끄럽게 질러대는 비명소리 및 끼익거리는 음향효과 때문에 눈과 귀가 상당히 피로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허술한 플롯 때문인지 공포는 함량미달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간을 늘리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지 않아서 1시간 30분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마무리한 것이 오히려 깔끔하게 느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별 내용 없이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영화를 더 이상 길게 본다는 것은 너무 지치는 일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와중..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터라 모처럼 영화관에 가서 '마음이2'를 보고 왔습니다. 방학을 맞이한 초등학생들이 수십명이나 재잘거리며 들어서는 것을 보고, 약간 당황했지만 다행히도 착한 어린이들이라 크게 소란을 피우지 않고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조용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더군요..^^ 스토리라인은 매우 단순합니다. 좋은 주인에게서 사랑받으며 3마리의 강아지도 낳고 행복하게 살던 어미 개 '마음이'가, 어느 날 도둑맞은 막내 장군이를 홀로 찾아나서면서 겪는 갖가지 에피소드입니다. 전편인 '마음이1'이 어린이와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면서도 상당히 어둡고 슬픈 분위기였다면, '마음이2'는 따뜻하고 유쾌한 코믹영화라서 어린이들과 더불어 보기에 더욱 좋은 가족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전편에서는 어린 자식들을 냉정하..
프레스블로그에 등록은 해 두었지만 거의 활동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시(詩)'를 주제로 포스팅을 하라는 메일이 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모처럼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참여해 볼까 합니다...^^ 학창 시절에 국어 수업을 위해서 참으로 많은 시를 외웠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제가 스스로 좋아하는 시가 많았기에 애써 여러 편을 외워 보았었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점차로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활동을 시작하여 잊어버리게 되더군요.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외웠던 두 편의 시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동시를 제외하고 제가 가장 어린 나이에, 깊은 감동을 느껴서 푹 빠져들어 외웠던 시였거든요. 한 편은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이고, 또 한 편은 윤동주 시인의 '눈 오는 지도' ..
우연한 기회에 보고 싶던 영화 '하녀'를 개봉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오히려 생각보다 상당히 괜찮은 느낌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얼핏 뻔한 이야기, 지루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매혹적인 화면의 구성과 원숙한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했다고 하겠습니다. (이하의 내용에는 다량의 스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에서 만만치 않은 함정을 발견했습니다. 충격적으로 표현된 그 주제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자칫 사고의 흐름이 왜곡된 방향으로 비틀어질 수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주인공인 은이(전도연)의 시각에서 영화를 바라보게 됩니다. 현대판 '하녀'인 은이는 주인집 식구들과의 관계에서 철저한 '약자'이며 '못 가진 자'로 표현됩니다. 그렇기에 대..
지금껏 사형제도의 존폐에 관한 논란은 꾸준히 계속되어 왔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손으로 사람의 목숨을 끊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주장과, 갈수록 세상이 험해지는데 법을 약화시켜서는 더욱 강력범죄가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니 사형제도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라도 유지시키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양쪽 다 일리가 있기에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 '집행자'는 어찌보면 식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껏 접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매우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사형수의 입장이나 피해자의 입장, 또는 성직자의 입장이나 우연히 사형수를 알게 된 일반인의 입장에서 다루어진 소설이나 영화는 본 적이 있습니다만, ..
ugly는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극장판의 자막에서 표현한 대로 '불편한'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듯 싶다. 즉 The ugly truth, 어글리트루스는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가 되겠다. (이후, 약간의 영화 내용이 들어 있지만, 후반부의 중요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시사회 리뷰는 처음 써보는데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개방적인 사회 미국에서, 노처녀가 될 때까지 살아온 전문직 여성 애비가, 더구나 지금까지 연애를 못해 본 것도 아닌 듯한데 아직도 남자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는 등, 그렇게까지 순진한 허당 캐릭터로 그려진 것은 상당히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하여튼 방송국 PD인 애비는 처참한 시청률로 인해 목조임을 당하다가 급기야 무척이나 맘에 안 드는 ..
'2009 멀티 문학상' 수상작인 김이환의 소설 '절망의 구'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현대인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해하고, 언제 어디서 치명적 불행이 닥칠지 몰라 공포에 떨고 있으며, 겉보기에는 화려한 듯 하지만 정작 진심을 나눌 친구는 없어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데다가,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폭발할 듯한 분노의 불길을 가슴 속에 잠재우며 살아간다. '절망의 구'는 그런 현대인의 삭막한 내면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1. 공포(恐怖) 이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 전반적인 정서는 '공포'이다. 주인공인 '남자' 김정수는 무려 418페이지에 달하는 긴 소설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공포에 질려 있다. 서울 시내에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2미터 가량 크기의 ..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을 냉장고에 붙여 놓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신이 존재하며, 언제나 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내게 입맞추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힘..
"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 또한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 루드비히 반 베토벤 미첼의 남편 에드는 건축 노동자였다. 한 번은 그가 일자리를 구하다가 집에서 5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거대한 댐 공사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 때를 회상하며 미첼은 말한다. "내 인생에서 그때가 가장 긴 6개월이었어요. 남편은 주말에만 집에 들를 수 있었어요. 금요일 자정이 지나서야 집에 도착하곤 했죠. 그리고는 일요일 점심을 먹자마자 곧바로 떠나야만 했어요. 그 여섯 달 동안 우리는 토요일에만 살아 있고 나머지 요일들은 날마다 외로움과 싸워야만 했어요. 그녀는 특히 외로움을 느꼈던 어느 쓸쓸한 가을날을 기억한다. 구름은 머리 위에 낮게 드리워져 있었고, 잎사귀 위로 간간이 빗줄기가 떨어져 내리던 날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
모처럼 공짜 영화표를 구할 수가 있어서 기분 좋게 영화 '차우'를 보고 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포영화가 아니라 코믹영화라고, 굉장히 웃기다고 하셔서 저는 웃을 준비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조금밖에 없고 저는 내내 무섭고 끔찍하더라구요. 제 성격이 너무 진지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같이 본 친구도 저와 같은 의견이었어요. 도입 부분에서 전설의 포수 장항선씨의 손녀가 멧돼지에게 잡아먹힙니다. '차우'라는 단어가 원래 '으적으적 씹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데, 아주 그 소리 제대로 들려줍니다. 뺑소니 차량에 치이긴 했지만 아직 숨이 끊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리 쪽부터 으적으적 씹혀 들어가면서, 소녀의 눈빛에 드러나는 공포와 표정으로 말하는 고통이... 정말 처음부터 섬뜩하고 구역질나고 무서웠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