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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와 연극

'차우'가 웃겼어요? 난 무섭던데

빛무리~ 2009. 7. 3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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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공짜 영화표를 구할 수가 있어서 기분 좋게 영화 '차우'를 보고 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포영화가 아니라 코믹영화라고, 굉장히 웃기다고 하셔서 저는 웃을 준비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조금밖에 없고 저는 내내 무섭고 끔찍하더라구요. 제 성격이 너무 진지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같이 본 친구도 저와 같은 의견이었어요.




도입 부분에서 전설의 포수 장항선씨의 손녀가 멧돼지에게 잡아먹힙니다. '차우'라는 단어가 원래 '으적으적 씹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데, 아주 그 소리 제대로 들려줍니다. 뺑소니 차량에 치이긴 했지만 아직 숨이 끊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리 쪽부터 으적으적 씹혀 들어가면서, 소녀의 눈빛에 드러나는 공포와 표정으로 말하는 고통이... 정말 처음부터 섬뜩하고 구역질나고 무서웠습니다.

주인공 김순경 역할의 엄태웅씨, 특별히 정의감에 불타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성실한 경찰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하시더군요. 그가 시골 경찰서로 발령받아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내려왔는데...

남들은 코믹 요소라고 말하는 치매 할머니의 캐릭터 역시 제게는 우울함과 두려움을 안겨주더라구요. 아들의 등에 업혀 가면서 괜히 옆을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채를 잡기도 하고, 남의 어린아이가 먹는 과자를 낚아채기도 하고, 일단 손에 잡힌 것은 절대 놓지 않으려는 그악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그런 상황이라면 얼마나 난감하고 힘들까요? 누구나 아플 수 있는데... 더구나 만삭의 몸으로 그런 시어머니와 함께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김순경의 아내를 보면서 우울해지는 감정까지 느꼈습니다. 산다는 건 참 고행길이구나 싶고...



또 하나의 코믹 캐릭터라고들 말하는 '아이를 학대하는 광녀' 역할 또한 끔찍하게 무섭기만 하더군요. 괴기스럽게 눈화장을 하고 나와서는 어린아이를 마구 때리며 엄마도 아닌데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니... 어떻게 그게 웃긴가요. 슬프고 무섭던데요.

줄거리의 흐름과는 별 관련도 없는데 왜 등장하는지 처음엔 몰랐는데, 마지막에 살아남은 새끼돼지에게 그 아이가 먹이를 주며 보살피는 모습을 보고, 아직도 끝나지 않고 훗날에 재현될 식인멧돼지의 재난을 예고하기 위한 설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보살펴 줄 사람이 없어 난폭한 광녀에게 학대받으며 자라나는 고아 소년, 인간들에게 부모를 잃고 그 소년의 손에서 길러지는 새끼돼지... 그 둘의 마음속에는 인간을 향한 차가운 복수심이 자라나고 있겠지요. 영화 끝에 카메라를 매섭게 노려보던(?) 작은 돼지의 눈빛이 또 약간은 섬뜩하더라구요.




웃음으로 살짝 포장하긴 했지만, 주요 캐릭터들은 근본적으로 슬프고 진지하고 처절합니다. 김순경 엄태웅은 치매에 걸려 산을 혼자 헤매고 다니는 어머니를 찾아야만 했고, 장항선 할아버지는 멧돼지에게 죽임을 당한 손녀의 원한을 갚아야만 했습니다. 생태연구원 변수련(정유미) 역시 평생 교수들의 뒤치닥거리만 할 수는 없기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식인멧돼지 촬영에 성공해야만 했던 것이지요.
심지어는 멧돼지 캐릭터도 비극적입니다. 인간들의 횡포로 삶의 터전이 황폐화되고 동족들을 거의 모두 잃고 마지막 살 길을 찾다보니 식인멧돼지가 된 거니까요.

멧돼지에게 쫓기는 모습을 보면서도 통쾌하고 웃겼다는 분들이 많던데, 저는 무섭더라구요. 삽시간에 그 입속으로 으적으적 씹혀 들어갈 수도 있는데 - 영화 내내 그 으적으적 소리가 수시로 들려오는데 정말 역겨워서 혼났습니다 - 긴박하게 도망가는 그 장면을 웃으면서 보신 분들의 낙천적 마인드가 저는 참 부럽습니다.


영화의 주제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가 있겠지만, 저는 남들과는 좀 다른 면에 집중하게 되더군요. 그 누구라도 괴수 앞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움츠러들거나 도망치고 싶을 법한데, 그때마다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서는 포수들과 김순경(엄태웅)의 용감한 모습이 제게는 감동이었거든요.




특히 기꺼이 뒤에 남아서 멧돼지를 유인하는 역할을 맡겠다고 승낙하는 김순경의 모습은 용감하면서도 매우 현실적이라고 느껴졌기에 마음에 더 와닿았어요.
그는 경찰이면서도 소시민이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지요. 이번 일을 해결하면 진급되는 거냐고 상관에게 다짐을 받고, "만약 제가 잘못되면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아이 잘 키워달라고,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하는 마지막 인사(?)를 외치며 거대한 멧돼지를 향해 달려가는 그는 우리 아버지 같고 오빠 같았습니다.

모두 사람 사는 곳이니까, 어디에나 부패는 있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순경처럼 성실하고 용감하게, 자기 직업에 충실하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를 오늘도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그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는 것에, 저는 이 영화의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함께 영화를 본 친구는 멧돼지의 CG가 어색했다는데 - 많은 분들의 리뷰에서도 그 내용을 보았었지요 - 저는 그런 쪽에는 시각이 아주 많이 둔한 편이라 잘 모르겠더군요.

"조그만 새끼돼지는 CG일까 진짜일까?" 하고 제가 물었더니 친구가 "그거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진짜겠지." 하길래 "그럼 마지막에 카메라를 노려보던 눈빛이 너무 신기하잖아. 새끼돼지가 연기를 한거야?" 했더니 친구는 "새끼돼지를 화나게 만들었나부지." 하더군요. -_- 정말 그런 걸까요? ㅎㅎㅎ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모든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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