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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 배두나, 진정한 프로의 자세를 말하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무릎팍' 배두나, 진정한 프로의 자세를 말하다

빛무리~ 2010. 9. 3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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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어떤 연기자들을 보면, 정말 타고났구나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치열하게 노력해서 몰입하지 않더라도, 대본을 받으면 그냥 스펀지가 물을 빨아 들이듯 온통 그 역할에 젖어서 자기를 잊어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절대 아무런 노력 없이 훌륭한 배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에 비하면 그 어려운 길을 한층 수월하게 걷고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배두나를 보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지요. 어머니인 연극배우 김화영의 피를 물려받은 데다가, 어머니의 독특한 교육관으로 어려서부터 각종 문화체험을 하면서 자라 온 것이 큰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배두나는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로, 그러나 매우 솔직하게 토크에 임했는데, 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내용이었음에도 그녀의 자연스러운 태도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스물 한 살 어린 나이에,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신인으로서 강도 높은 노출신을 촬영하며 겪었던 마음 고생이야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그녀는 이제 와 돌이켜 보면 프로답지 못했기에 부끄러운 과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여자로서의 자존심과 수치심이 자꾸만 머리를 쳐들고, 한쪽에서는 배우로서의 프로의식이 그것을 억누르며 싸우는 것이지요. 힘들어서 매일 울기도 하고 고민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 배우로서의 자기가 여자로서의 자기에게 승리를 거두며 치고 나가는 시기가 있다고 배두나는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많이 편안해진다고 말이지요.

2009년에 일본에서 '공기인형'을 촬영할 때에는, 오히려 여배우의 노출신을 찍는 것이 처음이라 잔뜩 긴장한 감독을 위해 배두나가 나서서 현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미 그녀는 프로 중의 프로가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다수의 국제 영화제 수상 경력을 지닌 거장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녀의 연기력을 극찬했고, '공기인형'으로 배두나는 그 해 일본에서 무려 5개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게 됩니다. 그런데도 국내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참으로 조용한 쾌거였지요. 


김화영과 같은 어머니를 두었을 뿐 아니라 데뷔하자마자 봉준호, 박찬욱, 故 곽지균 등 최고의 감독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배두나는 여러가지로 운이 좋은 여배우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모든 운명을 그녀 자신이 끌어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릎팍 도사 강호동은 "남들과 웃음 코드가 다르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바로 배두나 당신이고, 당신의 그 독특함이 수많은 좋은 인연들을 가져온 것이다."라고 정리를 해 주었는데, 저도 그 말에 상당 부분 공감을 했습니다.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녀에게서는 아주 묘하고 독특한 이끌림이 계속 느껴졌어요. 

일단 자기가 시나리오를 선택하고 출연을 결정했으면, 촬영장에서 어떤 장면이든 거부하지 않고 프로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배두나는 말했습니다. 자기 욕심에 작품을 선택해 놓고 나중에 가서 못한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말이지요. 물론 배두나는 최고의 감독들과 좋은 작품만을 했기 때문에 저토록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녀가 말한 것은 진정한 프로의 기본 자세였습니다.


그녀보다 운이 없는 다른 연기자들은 짐작컨대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할 듯 싶었거든요. 예를 들어 시나리오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는데 현장에서 느닷없이 노출신을 요구한다든가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듯 싶구요. 힘없는 신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따르든가 아니면 기회를 포기하든가, 둘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안 좋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배두나의 발언은 지극히 옳았습니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예술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드는 예술인데, 만약 배우들의 발언권이 지나치게 거세어진다면 작품은 산으로 가고 말 테니까요. 일단 한 배를 탔으면 자기의 입장이나 자존심을 죽이고, 선장인 감독에게 일체의 전권을 맡긴 채 따르는 것이 진정한 배우이겠지요. 말은 쉽지만 사실은 결코 쉽지 않은 프로의 길입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지난 5월에 세상을 떠난 故 곽지균 감독을 떠올리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마음이 정말 여린 분이셨다고 그를 추억하는, 똑같이 마음 여린 배두나... 무릎팍 도사가 앞으로의 꿈을 물으니 잠시 망설이다가 "그런 거 없는데..?" 라고 쑥스럽게 대답하는 엉뚱한 배두나... 그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엄마" 라고... 좋은 엄마든 어떤 엄마든 그냥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평범한 여자 배두나...

그녀는 이토록 다채로운 모습을 동시에 지녔으나,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자기를 잊고 그 캐릭터가 되어 버리는 진정한 프로 연기자였습니다. 그녀가 담담한 어조로 전해 준 감동은 강렬하지는 않았으나 제 마음 속에 매우 오래 남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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