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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 윤형주의 촌철살인, 그 놀라운 말솜씨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놀러와' 윤형주의 촌철살인, 그 놀라운 말솜씨

빛무리~ 2010. 9. 2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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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 - 세시봉 친구들'은 음악과 토크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감동과 재미를 자아냈던 최고의 방송이었습니다. 나이로는 큰형이지만 철들지 않는 이미지로 인해 동생들의 구박을 받던 조영남은 아슬아슬한 민폐형이면서도 자유로움에 대한 향수를 묘하게 자극하는 면이 있더군요. 송창식도 그에 못지 않게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조영남이 보다 세속적이라면 송창식은 훨씬 기인적이고 속세를 떠난 신선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언제나 밤 9:30에 점심식사를 하고 새벽 2:00에 저녁식사를 하는 송창식과 40여년을 친구로 지내 온 윤형주에게 어떤 지인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합니다. 그리고 63세의 막내 김세환은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로 자리를 편안하게 해 주었지요.

그런데 '세시봉 친구들' 모임을 단순한 음악회처럼 흘러가지 않도록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은 바로 윤형주였습니다. 물론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에 그 재능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겠지만, 윤형주의 말솜씨는 너무도 예능감이 흘러넘쳐서 이렇게 일회성으로만 즐기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가능성은 없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놀러와'의 고정 패널로 모셨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 비해 결코 많이 웃지 않았습니다. 모두 배꼽 빠지게 웃어대는 와중에 혼자 무덤덤한 표정을 고수하며 앉아 있는 모습이 더 큰 웃음을 자아냈는데, 그렇게 담담한 얼굴로 이따금씩 날리는 촌철살인의 멘트는 MC 김원희를 실신 직전으로 만들 만큼 압권이었지요. 그 대상은 주로 철없는 큰형 조영남이었는데, 젊었을 때는 동생이랍시고 설움도 꽤 당했던 모양이지만(기타도 못 만지게 하고..;;) 이제 조영남은 윤형주 앞에서 거의 꼼짝을 못하더군요. 그렇게 윤형주가 끊임없이 조영남을 자극하며 티격태격 토크를 이어간 덕분에, '놀러와 - 세시봉 친구들'은 감동과 더불어 충분한 웃음까지 겸비한 최고의 예능으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평화로운 가정 생활을 누리고 있는 동생들에 비해, 자기는 2번의 이혼을 비롯한 각종 스캔들로 약간은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조영남에게 "그런데 형은 실패했다고 생각 안 하잖아요?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라면서 콕 찌르는 식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은 방송에 비쳐진 조영남의 이미지와 어울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굳이 그것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해야 할 이유는 없었지요. 순간적으로 내뱉은 조영남의 언사가 진심이었다 해도, 적절히 주저앉히며 웃음을 끌어낸 윤형주의 판단력은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윤형주의 말처럼 실제로도 조영남은 자기의 화려한(?) 사생활을 은근한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는 게 맞는 듯도 합니다.


그 옛날의 세시봉에는 '놀러와'의 MC들처럼 예쁜 여자들은 없었다고 송창식이 말하자, 윤형주는 또 한 번 의외의 발언으로 모두를 넘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윤여정씨가 제일 나았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조영남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윤여정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윤형주의 과감성 덕분에, 순간 조영남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으나 우리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토크는 더욱 재미있어졌습니다. 브라운관에서 매번 명품 연기를 보여주는 중견 여배우 윤여정이 한때는 라이브 음악 카페 세시봉의 DJ 였다고는 상상도 못했었거든요. 본인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인연일 뿐이겠지만, 그들의 유명한 만남이 세시봉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기에, 그 사랑의 시작을 혼자 상상해 보니 왠지 달콤하기도 했습니다. 

골방 토크에서도 조영남은 "그 당시에 내가 사귀던 여자친구의 집이 미아리에 있었는데, 우리는 그 집에서 모이곤 했다."라고 애매하게 넘어가려 했지만, 어김없이 윤형주가 "여정씨네구나!" 라고 콕 짚어주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에는 여자친구라고 불렀던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뭔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또 한 차례 상상에 잠겼지요. 언젠가 윤여정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았는데 굉장한 미인이더군요. 그녀의 아름다움과 조영남의 노래 솜씨가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인기 절정의 선남선녀 커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지나간 일이지만요.


조영남이 시인 윤동주의 '서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자, 시인의 6촌 동생 윤형주는 다 끝나고 나서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시도 그 자체로서 고유한 음율과 박자가 있는 노래인데, 너의 잘난 작곡 실력으로 귀한 시에 손대지 말거라.' 하시는 바람에 동주 형님의 시는 노래로 만들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의 집안에서 그토록 조심스럽게 아끼는 시인데 덜컥 손을 대고 말았으니, 조영남의 입장이 매우 민망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웃으면서도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왜 그 곡은 히트가 안 되지?" 하고 윤형주가 묻자 옆에서 송창식이 "시가 더 좋으니까!" 라고 명쾌하게 정리해 주더군요. 그래서 또 한바탕 웃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조영남은 송창식의 '벤츠'에 대해서도 트집을 잡았는데, 재일교포 3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서 '가나다라마바사'를 노래불렀던 송창식이 왜 차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벌써 누군가 지구를 10바퀴 돌고도 남았을 정도의 40만km를 주행한 후의 중고차를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 해도 그 정도면 성할 리가 없겠지요. 여기서 윤형주가 또 핵심을 콕 짚어 줍니다. "형, 그 차 보닛 열어 봤어요? 그 안에 국산(부품)도 아주 많아요!"


이 외에도 알토란 같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는데 일일이 주워섬길 수가 없습니다. 면면하게 이어지던 윤형주의 촌철살인 토크는 두고두고 다시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더군요. 더불어 한때는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으나, 자존심 때문에 온갖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돈이 많은 척을 하고 다녀서 별명이 '송구라'였던 적도 있었다는 송창식이, 여전히 깊이 있고 매력적인 보이스로 들려 준 수많은 노래들도 두고두고 다시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놀러와 - 세시봉 친구들'을 '남자의 자격 - 하모니'와 더불어 오래도록 소장하려고 콘팅에서 유료 다운받은 파일을 삭제하지 않고 놔두었습니다.

무려 1400여편의 CM송과 120여편의 가요를 작곡한 윤형주는 음악성 면에서도 천재적이지만, 시인 윤동주의 가족답게 유려한 말솜씨와 글솜씨를 지녔습니다. 말솜씨는 이번 '놀러와' 방송에서 처음 알았지만, 그가 작사했던 수많은 노래가사를 통해 글솜씨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요. 제 기억으로는 외국 곡에 윤형주가 가사를 붙였던 노래 같은데, 문득 오래된 추억과 더불어 애틋하게 떠오르니, 그 노래의 1절 가사를 읊조리며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잔잔하던 호수 위에 파문... 그대 처음 바라 본 순간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며... 서로 조심스레 가까웠을 때
빨려들던 눈동자에 비친... 외로움에 지친 그림자
그러나 이제는 나 당신만의 사랑... 나 당신만의 사랑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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