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신데렐라 언니' 은조와 기훈의 멜로가 너무 싫다 본문
문근영은 오빠들에게만 여동생이 아니라 언니들에게도 여동생처럼 느껴집니다. '신데렐라 언니' 이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슬픈 캐릭터의 정점을 찍는 듯한 은조를 보면서 마치 그 아이가 내 여동생인 양 측은하군요. 기훈과의 멜로가 너무 싫은 것은 아마도 그래서인가 봅니다. 그 가엾은 것이 사랑을 한다면, 자기를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서 마음 기대고 살아야 할텐데, 홍기훈은 절대로 그런 역할을 해줄 수가 없으니까요.
지금껏 많은 드라마를 시청했지만, 주인공들의 멜로가 이토록 싫게 느껴진 적이 없습니다. 요즈음 개인적 사정으로 본방사수를 하지 못하였는데, 은조가 정우를 앞에 두고 기훈에 대한 추억을 줄줄이 늘어놓는 장면과, 기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괴로워하는 은조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며 슬픈 음악이 흐르는 부분과, 은조를 그리워하는 기훈의 모습이 잡히며 또 음악이 흐르는 부분에서는 그냥 지켜보고 있기가 싫어서 마우스를 끌어 뒤쪽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구대성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은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매달리는 기훈의 모습은 못난 놈에 배은망덕한 놈일 뿐, 좋게 봐주려고 해도 그럴만한 요소가 너무 없습니다. 자기가 효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자발적으로 물러난 것은 모처럼 잘한 일이지만, 그녀를 정식으로 거절하면서 "은조한테는 내가 거절당했어." 라고 말해서 더욱 큰 상처를 준 것은, 그야말로 보기 드물 정도의 못난 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훈은 절대로 효선과 은조 앞에서 당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절에 찾아가 삼천배를 하면서 애끓게 눈물을 흘릴 때는 그에 대한 동정심으로 용서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매일 삼천배를 하는 마음으로, 아저씨 대신 너희들을 보살피겠다고 말할 때에는 약간 기특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보살피고 있는 것입니까? 효선에게는 상처를 주고, 은조에게는 들이대고 있으니, 구대성에게 속죄하고 싶은 마음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요?
이제 홍기훈이 구대성의 죽음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마저 은조가 알아 버렸습니다. 그 못난 놈은 스스로 털어놓지도 못하더니 결국 들키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은조의 마음은 변함이 없군요. 그 이유가 효선이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8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돌아온 홍기훈을 자기의 남자로 받아줄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리석은 미련마저 끊어 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제 그가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으니 정말 기훈과 은조의 멜로는 확실히 끝났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군요.
은조는 더 이상 효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기훈에게 또 함구령을 내립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 아프더라도 차라리 터뜨려서 미련을 끊어 주어야 할 듯 싶은데,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숨기는 것만 최선인 줄 압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인데, 정우도 은조를 위해서 숨기라고 하더니, 이제 은조도 효선을 위해서 숨기라고 합니다. 기훈이 녀석은 귀가 얇은 건지, 누군가 말하지 말라고 하면 정말 입을 다물고 있으니, 효선에게도 결국 털어놓지 못하고 들키게 될 것입니다.
약간 지루해지는 면이 없잖아 있어도 여전히 '신데렐라 언니'는 매혹적인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기훈이라는 매력없는 존재가 멜로의 중심에 서 있어서, 바로 그 부분 때문에 격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효선의 캐릭터는 구대성의 딸답게, 복수마저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굳이 멜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은조에게 굳이 멜로가 필요하다면 한정우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은조의 성격상 동생으로 대하던 정우를 갑자기 남자로 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아주 서서히 가까워져 가는 느낌으로 아련한 멜로를 진행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의 기획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드라마의 전개 과정 중에 이미 홍기훈이라는 캐릭터는 완전히 망가져 버려서 회복 불가능입니다. 결코 멜로의 중심에 설 수 없을 뿐 아니라,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역할도 제가 보기에는 물 건너간지 오래입니다. 솔직히 이제는 기훈이 대성참도가를 위해서 죽는다고 해도 별로 슬프거나 감동적일 것 같지 않아요.
'신데렐라 언니'가 제대로 된 작품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홍기훈을 포기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인공이랍시고 기훈을 살리려다가는 작품 전체가 망가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드라마에 멜로가 필수요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멜로 없는 드라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신데렐라 언니'는 이미 멜로를 포함하지 않아도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발 이제와서 억지스런 멜로를 삽입하여 작품을 망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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