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신데렐라 언니' 은조, 성장은 커녕 퇴보하고 있는 불쌍한 캐릭터 본문
지금 '신데렐라 언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주는 인물은 효선(서우)입니다. 초반의 그녀는 특유의 애교를 부리면서 끊임없이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였지요. 그녀의 마음속에도 사랑은 가득했으나 그것을 표출하는 과정이 너무도 미숙했기에, 그녀의 사랑은 상대를 기쁘게 하거나 감동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너그러운 세상 그 자체였던 아버지 구대성(김갑수)의 죽음은, 효선으로 하여금 언제까지나 세상이 자기의 편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 깨달음은 껍질이 깨어지고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이었지만, 효선을 삽시간에 어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만 받고 살아온 시간들은 그녀를 어린아이로 남아있게 했으나, 이제 보호막 없이 찬바람을 홀로 맞이하게 된 그녀는 스스로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에게서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베풀기보다는 받으려고 징징거리며 매달리던 효선은, 이제 능동적으로 베푸는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올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되자, 그녀의 안에 가득차 있던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분출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은 어리고 그릇이 작아서 그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람의 안식처가 되어줄 만큼은 못 되지만, 머지않아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 같군요. 계모 송강숙(이미숙)의 부정을 알고서도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사랑과 용서로 덮어 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과연 구대성의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바로 어머니 송강숙입니다. 나이 오십을 넘기는 동안 온갖 사람을 만나고 온갖 일들을 겪어 왔으나 배우지 못했던 하나의 진실을, 죽은 남편 구대성의 일기를 통해서야 배우게 된 그녀였습니다.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게 뭔지를 깨달은" 송강숙은 잠시 효선의 눈을 피해 숨어 있기로 합니다. 구대성의 눈을 그대로 빼닮은 효선의 눈 앞에서 그대로 버티기에는, 깨달음의 칼날이 그녀의 속을 너무도 깊게 베어버린 탓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리하게 베어진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게 되면, 송강숙은 다시 아이들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 번 도망치면서도 은조를 떼어놓고 간 적이 없을 만큼 끔찍한 모성을 지닌 그녀인데, 어린 아들 준수를 두고 어찌 떠날 수 있겠습니까? "준수가 엄마를 많이 찾는다"고 말하는 효선에게 송강숙은 "너 까짓 게 무슨 준수 걱정을 해. 내가 에미인데... 나보다 더해?" 라고 대꾸합니다. 반드시 그 아이의 곁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저 잠시 떠나 있을 뿐입니다.
효선과는 다른 의미에서, 강숙의 깨달음은 그녀를 삽시간에 다른 사람으로 훌쩍 성장시킬 것입니다. 송강숙은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며 환심을 사는 방법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녀의 마음속에 진심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지요. 그런데 이제 구대성과 효선 부녀로 인해 그녀의 안에 숨어있던 '진심'이 깨어났으니, 이제 거짓으로 웃던 얼굴에 진심을 담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준비되어 있는 껍질 속에 솟구쳐오르는 진심을 담아내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진심을 깨우는 과정이 무엇보다 힘겨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은조(문근영)입니다. 처음에는 제일 성장이 빠른 캐릭터로 보였으나, 현재의 그녀는 답답하고 속터질 만큼 정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대성의 영정 앞에서 "아빠!" 라고 외쳐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 그녀의 성장은 정점을 찍었으나,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그녀가 가진 것이 너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의 실마리를 잡고서도 제대로 풀어나가지를 못하는 것이지요.
효선은 진심을 가졌으나 방법을 몰랐고, 송강숙은 방법을 알았으나 진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효선은 방법을 깨우치자마자 훌쩍 성장했고, 송강숙은 진심을 깨우치자마자 훌쩍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팔자 사나운 엄마에게 끌려다니며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익히지 못했던 은조는, 사람에게 베풀어 줄 진심이라는 것을 충분히 간직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방법도 몰랐습니다.
차라리 그녀의 마음속에 인간에 대한 불신과 증오만이 가득했을 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 더없이 독특하고 시크하던 은조의 매력은 바로 그런 공허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긍정적이거나 바람직한 캐릭터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세상 그 누구도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그녀의 시선에는 거부하기 힘든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대성이 그녀의 마음속에 잠자던 진심을 깨웠습니다. 은조의 깨달음이 송강숙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이미 어른이었던 송강숙의 굳어질 대로 굳어진 마음은 구대성과 한 이불을 덮고 8년을 살면서도 깨어나지 못했으나, 아직 어리고 여리던 은조의 마음은 훨씬 민감하게 구대성의 진심과 사랑을 알아차리고 반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은조는 그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감정이 너무도 낯설고 힘겹기만 합니다. 놀아 본 사람이 놀 줄도 알고, 산해진미도 먹어 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쳐드는 진심어린 사랑이 당혹스럽기만 한 은조는, 그것을 타인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고사하고, 자기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란 효선에게는 그 감정이 낯설지 않고 익숙합니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준비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차고 흘러넘치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제 효선은 그것을 바가지로 아낌없이 퍼내어 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조의 가슴 속에는 아무런 그릇도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샘솟는 사랑은 아무 곳에도 저장되지 못한 채 바닥으로 쏟아져 버립니다. 그래서 남들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은조는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녀는 여전히 웃을 줄도 모르고, 타인에게 부드럽게 말할 줄도 모릅니다. 엄마에게도, 효선에게도, 기훈에게도, 정우에게도, 심지어는 어린 동생 준수에게도 딱딱한 어조로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듯 찡그리며, 툭툭 던지듯 말하는 방법 밖에는 모릅니다. 엄마의 친구에게 자기 엄마의 행방을 물을 때처럼,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며 거부감이나 주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준수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걸그룹의 노래와 춤을 익히는 모습이 약간 새롭기는 했으나, 제가 보기에는 허리를 다친 사람을 치료한답시고 발목에 붕대를 감는 모습 만큼이나 생뚱맞고 어이없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상관없어 보이는 그런 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차츰 발전해 나갈 수도 있겠지만, 어린 동생을 향해 미소 한 번도 지어주지 못하면서 춤부터 배운다고 뭔가 잘 되어갈 것 같지는 않더군요.
준수가 은조를 "마귀할멈!"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걸그룹의 노래와 춤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자기에게 웃어주지도 않고 언제나 화가 난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다가서 봤자 어린애는 울음만 터뜨릴 뿐입니다. "은조야, 제발 웃는 연습부터 해라..." 이것이 제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리고 은조는 17회 엔딩 장면에서 저를 결정적으로 실망시켰습니다. "저 사람은 미친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도... 미친 게 분명하다..." 라고 되뇌이며, 자기에게 손짓하는 홍기훈(천정명)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녀는 미친 게 분명합니다.
매정하게 말하면, 그것은 죽은 구대성에 대한 배신입니다. 어느 이웃 블로거님은 '패륜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하셨더군요. 비록 구대성은 죽기 전에 기훈을 용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대성의 딸이 홍기훈이라는 남자와 연인의 관계로 맺어지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은조와 효선도 구대성을 본받아, 기훈을 용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용서한다는 것과 남녀간의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구대성이 남긴 명예로운 이름을 지키고, 그의 기업인 대성참도가를 일으키겠다고 결심했던 구은조와 홍기훈 두 사람이,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기적인 사랑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희생은 개뿔... 내가 원하는 대로 할거야. 될 대로 되라지..." 이런 식입니다.
홍기훈의 캐릭터는 벌써 망가질 대로 망가졌기 때문에 아무리 뻔뻔하게 나와도 뭐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은조가 그에게 끌려다니기 시작하니 정말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발악을 하다가도 기훈의 품에 안기자마자 조용해지고, 아직도 이복형 기정에 대한 유치한 원망을 버리지 못한 기훈의 찌질한 독백을 그의 품에 안긴 채 잠자코 들어주는 모습에서부터 짜증이 솟구쳤는데, 둘이 모든 것을 팽개치고 키스라도 할 듯한 태도로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나니 더 이상 '신언니'를 시청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군요.
"효선이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애교와 콧소리로 얻어내지 못할 게 없었던 어처구니 없는 계집아이에서, 살아 온 세월에 경의를 표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만... 발톱 세운 계집애, 그대로였다."
이것은 은조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일 뿐 아니라,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성장은 커녕 급속도로 뒷걸음질쳐서 퇴화하고 있는 은조의 모습은 불쌍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구원해 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군요. 어떤 분들은 그녀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하다 하실지 모르겠으나, 저의 눈에는 오히려 고귀한 사랑을 내팽개치고 이기심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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