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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은조가 이름을 부르는 단 한 사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신데렐라 언니

'신데렐라 언니' 은조가 이름을 부르는 단 한 사람

빛무리~ 2010. 5. 14.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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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조(문근영)는 타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녀가 입을 열어서 "효선아", 또는 "준수야" 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오랜 세월 동안 애증으로 휩싸인 기훈(천정명)을 향해서도,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습니다. 그가 떠났을 때에도 그저 새처럼 자기의 이름만 부르며 울었을 뿐입니다.


구대성의 영정 앞에서 "아빠!" 라고 부르는 순간 그녀의 마음 한켠이 열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거리낌 없이, 그것도 자주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정우야, 정우야~" 그의 방문 앞에 서서 그녀가 부릅니다. "정우야, 좀 나와 봐", "정우야, 네가 처리해 줄 일이 있어", "정우야, 할 말이 있으니 네 룸메이트 좀 내보내 줘" ... 이렇게 기훈에게 할 말이 있을 때조차도 은조는 정우의 이름을 먼저 부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유명한 싯귀가 떠오르는군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얼핏 그냥 지나칠 수 있으나 참으로 중요한 의미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지요.


반드시 이름이 아니더라도, 호칭을 사용해서라도 누군가를 부른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마음을 연다는 뜻입니다. 효선이(서우)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부릅니다. 엄마, 언니야, 오빠, 아저씨, 할머니, 아줌마, 준수야... 말을 하기 전에 효선이는 꼭 이름이나 호칭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부르고 시작합니다. 그에 비해 은조는 사람을 아예 부르지를 않습니다. 그냥 다짜고짜 자기 할 말부터 시작하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은조의 입에서는 "아저씨" 라든가 "할머니" 라는 소리조차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한눈팔고 있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저기요" 정도의 말을 한 적이 있을 뿐이지요.

그런 은조가 정우의 이름을 부를 때, 저는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정우야, 정우야... 그녀가 소리내어 정우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녀의 마음 속에 가득차 있는 무거운 짐들이 하나씩 정우의 어깨에 내려놓아집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끔찍한 장씨 아저씨의 이야기도 정우에게는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정우는 말합니다. "누야, 니는 걱정 말거라. 내가 알아서 처리할기다."


은조는 정우가 선물한 빵(브로치)을 옷에 달고 다닙니다. 그 무심한 은조가, 옷을 갈아입을 때 잊지도 않고 옮겨 달기까지 하면서요. 정우가 그 빵을 달아주면서 말했습니다. "이게 누야를 지켜 줄거다. 이거 달고 있으면 절대 안 굶는다. 정말이라니까! 내가 누야 안 굶기려고 이제껏 살아왔는데,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지금?" 그러자 은조가 대답했습니다. "이상하다. 바보 멍청이 같은 말이, 믿고 싶어져..." 정우는 씩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믿어라, 가스나" 
 
 
은조는 정우가 밥 먹으러 가자고 손을 잡아끌면 순순히 따라가고, 밥 위에 반찬을 얹어 주면 순순히 떠서 오물오물 잘 먹기도 합니다. 군대에서 받은 월급을 모아봤자 얼마 된다고, 위기를 맞이한 대성참도가를 위해 자기가 맡긴 돈을 다 써도 좋다며 호기를 부리는 정우를 보며, 은조는 그 힘든 와중에 피식 웃기도 합니다. 웃음을 잃고 살던 은조는 정우 때문에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있습니다.


정우는 은조를 위해서, 기훈의 비밀을 알면서도 덮어 주고, 은조에게 털어놓겠다는 기훈을 필사적으로 말립니다. 힘겨운 그녀의 마음에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는 기훈의 비밀이기에, 정우는 그녀가 끝까지 모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돌려드리려고 했다"는 기훈의 말을 믿어주는 것도 은조를 위해서입니다. 그 말을 믿지 않으면, 기훈은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리고, 그러면 기훈을 아직도 마음 한켠에 품고 있는 듯한 은조가 더욱 가엾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정우에게 있어 은조는 삶의 모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조에게 있어 정우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면 아직 뚜렷하지는 않으나 서서히 그의 존재가 그녀의 마음 속에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은조에게 정우는 남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정우는 그 이상의 의미가 되어 있습니다. 구대성 외에는 아무도 열지 못한 은조의 마음을, 그 다음으로 한정우가 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삼천배를 하는 마음으로, 아저씨(구대성)를 대신해서 너희들을 보살피겠다"고 말했던 홍기훈은, 불행히도 그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조는 물론 효선에게도 그는 상처만 주고 있으며, 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홍주가를 상대하는 그의 역할은 미미할 뿐입니다. 불쌍해서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홍기훈이라는 캐릭터는 보면 볼수록 '못난 놈' 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네요.

은조에게 용감하게 속을 털어놓을 것처럼 온갖 폼은 다 잡더니만, 술에 취해서 엉뚱하게 정우한테만 털어놓고, 그 아이가 말린다고 또 정말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계획을 미리 적(홍회장)에게 전화로 모두 터뜨리는 어리석음이며, 결과적으로 실천하지도 못한 계획 때문에 아버지만 쓰러지게 만들고, 이복형 기정의 공격에는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그렇게 이쪽저쪽이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와중에 아직도 은조를 향한 연정을 버리지 못해 치근덕거리기나 하고... 대체 뭘 하는 녀석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이토록 한심한 남주인공을 대신하여, 한정우가 적어도 은조에게는 그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제와서 정우가 자기 눈앞에서 사라진다면, 은조가 느낄 공허감은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기훈을 못 보면서 괴로운 것보다는 보면서 괴로운 게 낫다"고 은조는 정우에게 말했지만, 그것은 깨끗이 정리되지 않은 미련일 뿐입니다. '보면서 괴로운' 기훈의 오래된 존재감 때문에, '보면서 즐거운' 정우의 신선한 존재감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온통 괴로움 뿐인 그녀의 일상에 유일한 즐거움을 주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때는 깨닫게 되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가 떠나지 않아도, 은조가 어서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를 숨쉬게 하는 공기처럼, 어느 새 소리도 없이 스며들어와 그녀의 세상이 되어주고 있는 정우를 말입니다. 은조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만으로 정우가 행복하듯이, 은조도 정우로 인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훈이 결코 그녀에게 줄 수 없는 행복을 정우는 줄 수 있기에, "정우야~" 하고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기분 좋은 물결을, 그녀가 어서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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