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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지니어스' 장동민의 우승을 보며 창세기의 야곱을 생각하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더 지니어스' 장동민의 우승을 보며 창세기의 야곱을 생각하다

빛무리~ 2015. 9. 13.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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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더 지니어스 그랜드 파이널'에서 장동민이 우승했다. 1억3천2백만원의 우승 상금과 더불어 큰 명예와 인기를 한 손에 거머쥔 것이다. 정말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이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언젠가부터 얼굴도 더 잘생겨 보이고 옷발도 잘 받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장동민에게 갖고 있는 기본적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내게 있어 그는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장동민의 성공을 보며 나는 성서 창세기의 야곱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창세기를 읽을 때 내 나이는 열 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창세기의 내용은 정말 동화책 뺨치게 재미있었다. 특히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의 일대기는 드라마틱하기 이를 데 없었고 짜릿한 스릴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출애굽기부터는 급격히 재미가 없어지길래 나는 창세기만 몇 번씩이나 거듭해 읽었고, 두꺼운 성서의 맨 앞부분에는 어린 나의 손때가 까맣게 묻었다. 


나는 요셉을 좋아했지만 그 아버지인 야곱은 무척이나 싫어했다. 야곱이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형 에사우의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야곱은 형이 갖고 있는 장자의 권리를 빼앗기 위해, 죽음을 앞두고 있는 눈 먼 아버지 이사악을 속였다. 형의 옷을 입고 부친 앞에 다가가, 자신이 맏아들 에사우라고 말하며 축복을 요청했던 것이다. 물론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기고 불콩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에사우의 경솔함과 어리석음도 문제였지만, 내 생각엔 야곱의 거짓말과 간교함이 훨씬 더 나쁜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해서 남의 것을 빼앗았으니, 나쁜 짓을 저지른 야곱은 마땅히 큰 벌을 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야곱에게 벌을 주실 생각이 별로 없는 듯했다. 물론 초년 고생을 좀 많이 했지만 야곱은 결국 큰 축복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 심지어 '하느님을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직접 야곱에게 내려주신 것이었다. 아무래도 하느님은 야곱을 편애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에사우의 억울함에 깊이 공감했고, 야곱이 잘 되는 것이 무척이나 못마땅했다.



 

나는 그렇게 어릴 때부터 고지식했고, 원칙과 주관과 호불호가 뚜렷하며 융통성이 없는 편이었다. 곧이 곧대로 단순하고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성격이어선지, 나는 야곱처럼 약아빠진 사람이 정말 싫었다. 우직한 것이 개성이라면 약삭빠른 것도 개성이겠지만, 약삭빠른 사람은 자기 이득을 위해 남의 뒤통수를 치거나 피해를 주는 일이 많기 때문에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총천연색의 개성을 모두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흑백으로 나누어 놓았던 것 같다. 


나는 굉장히 사람을 가리는 편이었기 때문에 많은 친구를 사귀기보다는 몇몇의 친구들과만 깊이 사귀었고 그런 삶에 나름 만족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나는 스스로 방문을 닫아 걸고 그 안에서만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방 안에 갇힌 나의 사고는 넓은 곳으로 뻗어나가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릴 때의 단순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방문을 꼭꼭 걸어잠근 채, 보다 현명해지고 성숙해질 기회를 거부하고 있었던 셈이다. 


'더 지니어스'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한 장동민을 보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하느님은 왜 저같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큰 행운과 은총까지 내려주시는 걸까?" 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창세기의 야곱을 보면서 했던 생각과 놀랍도록 똑같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고집스레 '나쁘다'고 생각해 왔던 그 특징들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개성임을 비로소 알 것 같다. 이를테면 우직한 성품이 좋기만 한 게 아니라 나쁘기도 하듯이, 약삭빠른 성품도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점도 있다는 것을. 


돌이켜 보면 '더 지니어스'에서 장동민이 보여준 모습 중에는 분명 좋은 것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의 충격적인 과거 언행을 들은 후 '나쁜 놈'으로 규정지어 버렸기 때문에 그 좋은 모습들까지도 모두 가식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물론 가식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는 모를 일이고 장동민이 진짜 나쁜 놈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못마땅한 심경이 한층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결승전 마지막까지 김경훈을 응원했지만..;;)


나에게 2015년은 작은 변화와 깨달음의 시기인 것 같다. 특히 하반기에 들어 소소한 깨달음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결코 깨달음이 아니니 진정한 깨달음은 가슴으로 느껴질 때라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 소소한 깨달음들이 차후의 인생에는 약간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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