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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일베 논란보다 인상적이었던 출석부 외워 부르기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1박2일' 일베 논란보다 인상적이었던 출석부 외워 부르기

빛무리~ 2014. 7. 2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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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에서 마련한 '선생님 올스타' 특집은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그 동안 일반인 출연자가 적지 않았던 '1박2일'이지만 그 대상이 일정 직업으로 한정된 경우는 처음이었고, 왠지 '의젓함'과 '신중함'의 대명사일 것만 같은 선생님들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미는 보장된 셈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사들 중 한 명이 '일베' 논란에 휩싸이며 좋은 기획에 생채기가 나고 말았다. '세종고 김탄'이라는 별명답게 수려한 외모로 인기를 끌던 정일채 교사가 과거 인터넷 게시판에 남겼던 몇 줄의 댓글 때문에 '일베'(일간베스트) 논란에 휩싸이고 만 것이다. 정 교사는 급히 해명 및 사과문을 올리고 해당 댓글을 삭제했지만, 거세게 불붙은 논란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었다.  

 

 

개인적인 내 생각을 간단히 밝힌다면 최근도 아니고 3년 전에 썼던, '게시글'도 아닌 몇 줄의 '댓글'만으로 한 인간에 대한 평가가 좌우된다는 것이 좀 불편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못 생각하거나 실수할 수 있고 사람의 생각은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 3년 전에 한 청년이 모교 게시판에 올렸던 몇 마디 댓글을 이제 와서 수많은 대중이 그토록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일채 교사가 자신은 결코 일베 회원이 아니라고 밝혔는데도 대중은 전혀 믿지 않고 있으니, 수년 전의 댓글 때문에 주홍글씨 낙인이 찍히고 만 청년 교사가 안타깝다. 연예인도 아닌데 포털사이트의 검색 순위에 오르며 온갖 악플에 시달리게 되었으니, 정일채 교사에게 '1박2일' 출연은 치명적 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1박2일-선생님 올스타' 특집에서 정말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안산 송호고등학교에 국사 담당 교사로 재직중인 김명호 선생님의 감동적인 '출석부 외워 부르기'였다. 김명호 교사는 28세의 젊은 나이로 멤버와 게스트를 통틀어 가장 어린 막내였다. 그러나 처음 등장할 때부터 그의 포스는 남달랐으니 '크레이지독'이라는 별명부터가 그의 범상찮은 기질을 말해주고 있었다. 김명호 교사는 좀 단순해 보이는 이미지였으나 퀴즈풀이에서 풍부한 지식을 선보이며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크게 날렵해 보이지 않는 체격이었음에도 몸을 쓰는 미션에서 거의 선두를 달리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김명호 교사와 짝꿍이 된 김종민은 덩달아 1등 커플의 명예를 수차례나 누렸으니,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어리버리 인생 최대의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 특집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방송이 거의 끝나갈 때쯤 등장했다.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1분 이상 깔대기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치시오!"라는 미션을 받아든 김명호 교사는 거침없이 외치기 시작했다. "아...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목이 아프다. 말 좀 잘 들어라... 사회 나가서 기본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내 말을 잘 지켜야 한다. 첫째, 종쳤을 때 자리에 앉아 있어라. 둘째, 말투 표정 윗사람한테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셋째, 수업 시간에 휴대폰 하지 마라. 넷째, 책상 위는 항상 깨끗이 해라. 정신 사납다. 다섯째, 가방 메고 청소하지 마라. 청소할 땐 청소만 해라.... 잘 좀 해라. 제발 잘 좀 해라... 지금부터 쭉 너희들 이름을 나열하겠다!"

 

사투리 섞인 무뚝뚝한 어조였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제자들을 향한 진심이 묻어났고, 훈화를 마친 선생님은 정말로 자신이 맡은 반 학생들의 번호와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1번부터 32번까지 단 한 차례도 막힘이 없었다. 32번 학생의 이름을 외치고 난 뒤 "나는 다 했다!" 라는 한 마디를 끝으로 김명호 교사는 미션 수행을 마쳤다. "나는 다 했다"는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나는 이토록 너희에게 관심이 많고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을 다 했으니, 이제부터는 너희의 몫이다!" 라는 뜻이었을까?

 

 

김명호 교사가 출석을 외워서 부르는 동안, 그의 다른 모습들이 브라운관을 채웠다. 안양외고의 최보근 교사와 차분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는 아이들한테 잔소리를 너무 심하게 해서 탈"이라고 김명호 교사가 말하자, 최보근 교사는 "열정이 있는 거니까" 하고 대답했다. 김명호 교사는 대화 중에 뭔가 흥(?)이 치솟았던지, 불현듯 자신의 교육관(?)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선생이 편하면 애들이 망가져요. 선생이 편하면 안 돼요... 아이들이 어디 가서 출세하는 건 바라지 않아요. 남의 눈에 피눈물 내면서 출세하는 사람들 많지 않습니까? 그건... 싫어요. 그럼 또 당한 사람들이 똑같이 남의 눈에 피눈물 낼 거 아닙니까?" 28세 젊은 교사의 순백색 열정은 그 자체로 뜨거운 감동이었다.

 

공부 잘 하고 출세하고 돈 많이 버는 제자들이 아니라, 사회 규범을 지키며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신변을 단정히 수습할 줄 아는 제자들을 키워내고 싶어하는 김명호 교사는 이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참 스승이었다. "선생이 편하면 아이들이 망가지기 때문에 선생은 편하면 안 된다"는 말은 그의 열정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크레이지독'(미친 개)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학생들을 엄하게 다스리는 것 역시 열정이 없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편하게 교사 생활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을 것을, 제자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지 않는다면 왜 피곤함을 자초하겠는가?

 

 

제발... 10년, 20년, 30년 후까지도 김명호 교사의 순백색 열정이 빛바래지 않기를 나는 기도한다. 너무 깨끗하고 순수해서 오히려 불안하다. 아직은 사회 초년생인 그가 앞으로 겪어야 할 풍파가 얼마나 모질고도 다양할지를 짐작하기에, 강인하고 굳건하게 초심을 지켜주리라 믿으면서도 저절로 염려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선의가 반드시 선의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떻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몰지각한 학부모들의 만행도 겪게 될 것이고, 배은망덕한 제자의 배신도 겪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면역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매번 예리한 아픔을 주며,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만큼 상처도 깊은 법이다.

 

그렇게 거듭 상처가 나고 대충 아물어 딱지가 떨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히 굳은살이 생기게 된다. 굳은살은 애초의 열정을 꽁꽁 가두고 무심함과 게으름과 냉정함을 불러온다. 지금 게으르고 무심한 교사들이라고 해서 어찌 처음부터 그랬겠는가? 필시 그들에게도 순백의 열정 넘치던 청년 교사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 논리는 단지 교사라는 직업에만 국한되지 않으나, 미래를 키워내는 교사들이 차츰 변해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슬픈 일이다. 32번까지 학생들의 이름을 외치고 단상에서 내려서는 김명호 교사의 모습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진 이유는, 변하고 싶지 않으나 속절없이 변해가는 어른들의 모습이 안타까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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