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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문제는 비키니가 아니라 여성 상품화와 외모 차별이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1박2일' 문제는 비키니가 아니라 여성 상품화와 외모 차별이다

빛무리~ 2014. 7. 2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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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자로 방송된 '1박2일'의 주된 촬영지는 망상 해수욕장이었다. 해수욕장에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등장했다 해서 그 자체로 크게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아이들과 더불어 온 가족이 시청하는 방송인데 비키니 여성의 몸매를 지나치게 부각시켜 민망했다는 의견이 시청자 게시판에 다수 올라왔지만, 직접 방송을 본 여성 시청자로서 내 느낌에는 별로 과하지 않았다. 물론 옷차림이 비키니라서 노출은 꽤 심한 편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노출보다 몸짓이나 행동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요즘 10대 걸그룹의 음악 방송에 크게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유 또한 옷차림의 노출보다는 (천박해 보일 만큼) 과도한 섹시댄스 때문이다. 반면 '1박2일'에 등장한 비키니 여성들은 이상한 행동이나 몸짓을 하지 않았고, 장소가 해수욕장이었기에 옷차림도 주변 환경과 매우 잘 어울려 보기에 거북한 수준은 아니었다. 

 

 

아무튼 시청자 게시판에 논란이 일자 '1박2일' 제작진은 재빠른 사과를 했다. 연출자 유호진PD는 "어제(27일) 방송 콘셉트는 휴가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가정해서 진행된 것인데 시청자들께서 불편하셨다니 죄송하다"고 밝혔다. 물론 휴가지에 동성끼리 놀러갔다가 낯선 이성들을 만나서 자연스레 어울려 노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어 온 일이다. 통기타 음악의 대표곡 중 하나인 윤형주 작사 작곡의 '조개 껍질 묶어' 역시 그와 같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 그림자 시원한 파도 소리~ 여름 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지 않네~" 경쾌한 가사와 멜로디에는 한 여름 밤 해변에서 달콤한 설렘을 만끽하던 청춘의 기억이 새록새록 담겨 있다.

 

하지만 진짜 불쾌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첫째는 게임의 승자에게 비키니 미녀들과의 시간을 허락함으로써 '여성의 상품화'라는 느낌을 준 것이고, 둘째는 미녀가 아닌 개그우먼 오나미와 김혜선을 등장시켜 남성인 멤버들에게 처음부터 극도로 무시당하는 장면을 연출했던 것이다. (만약 남성과 여성의 입장이 바뀌었다 해도 불쾌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이들과 더불어 온 가족이 보기에 부적절한 내용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미녀들은 한껏 대접해 주고 미녀가 아닌 여자에게는 함부로 못되게 구는 멤버들의 행동을 보며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오나미와 김혜선은 개그우먼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기꺼이 (또는 마지못해서라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인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시청자의 마음은 당하는 그녀들보다 훨씬 불편했다.

 

 

그 동안 게임의 승자에게 돌아간 혜택은 대략 '음식'과 '숙소'로 압축되었고 때로는 '좋은 차량'(이동수단)이라든가 '무거운 짐 내려놓기' 등의 혜택이 주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미녀와 시간 보내기'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는 '미녀'를 게임 승리에 대한 상품으로 하사하는 셈이니 인도적 차원에서도 기획 자체가 적절치 못했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불건전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다. 비키니 여성들의 노출 심한 몸매가 퇴폐적으로 느껴졌다면 그 이유도 사실은 옷차림 때문이 아니라 '여성을 상품화하는' 설정 때문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는 제작진의 명백한 실수였다.

 

그리고 '외모'를 소재로 삼는 개그는 일시적이고 자극적인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근본적으로 백해무익한 방송이다. 솔직히 오나미와 김혜선이 특별히 못생겼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저 요즘 세상에 흔히 말하는 쭉쭉빵빵 인형같은 미녀가 아닐 뿐이다. 물론 '1박2일' 멤버들의 모든 행동은 의도적 연출일 뿐 그들의 진심이 아니겠지만, 남성이 여성을 예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얼굴 보자마자 함부로 막 대하는 모습을 본 시청자들에겐 무엇이 남을까? 특히 어린 청소년과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그런 장면들이 끼치는 영향은 매우 극악하다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의식중에 "그래도 된다.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 멤버들 뿐 아니라 개그우먼들의 지나친 오버도 결코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다 설정이기 때문에 그녀들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미녀들은 웃음과 행동이 모두 나긋나긋한데 미녀가 아닌 개그우먼들은 웃음과 행동이 모두 우악스러우니, 외모에 따라 행동이 결정된다는 편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사람의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외모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예쁘지 않은 여성들도 행동은 매우 섬세하고 나긋할 수 있으며, 자기 외모를 풍자하는 개그에 익숙해진 코미디언들과는 달리 외모 비하에 깊이 상처받을 수 있다. 그런데 TV 속의 자극적인 개그는 어느 새 인간들을 세뇌시켜, 예쁘지 않은 여자는 좀 놀려대거나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외모'란 노력해서 가꾸고 만들어가는 부분도 있겠지만 타고나는 부분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인간이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라고 볼 수 없다. 게다가 예뻐지려고 성형수술이라도 받으면 '성괴'(성형괴물)이라고 비난해대니, 외모 지상주의가 판치면 판칠수록 예쁜 외모를 타고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책없이 불행해질 뿐이다. 이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아무쪼록 '1박2일' 제작진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고 형식적 사과를 하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논란의 근본적 원인을 잘 파악하고 차후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참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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