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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주의보' 생명을 살린 공준수, 명작을 이끄는 힐링 캐릭터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못난이 주의보

'못난이 주의보' 생명을 살린 공준수, 명작을 이끄는 힐링 캐릭터

빛무리~ 2013. 7. 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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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못난이 공준수(임주환)가 또 한 번 사고를 쳤습니다. 14살 어린 나이부터 6년이나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갖은 노동과 희생을 한 것도 모자라, 남동생 공현석(최태준)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기꺼이 덮어쓰고 감옥에서 10년이나 살더니, 이제 간신히 햇빛 보며 산지가 몇 개월이나 되었다고 또 다시 여동생 공진주(강별)가 혼전임신한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겠다며 외항선이라도 탈 기세군요. 공진주가 과연 예비 시어머니 방정자(송옥숙)의 거센 반대를 이겨내고 아기 아빠인 강철수(현우)와 결혼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일단 낙태를 결심했던 진주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는 성공했으니 준수는 명백히 한 생명을 살려낸 셈입니다.

 

 

방정자가 얼마나 속물적 인간인지를 잘 알고 있던 공진주는 그런 시어머니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강철수의 열렬한 구애를 받으면서도 줄곧 뿌리쳐 왔습니다. 막내 여동생 공나리(설현)의 문제로 공준수를 만나 못되게 굴고 뺨까지 때린 후, 미안함을 이기지 못한 공진주는 자학하는 심정으로 꼭 한 번 강철수와 동침했던 것인데 덜컥 임신이 되고 말았지요. 글쎄 본인의 말로는 그렇다지만,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 어느 정도는 강철수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설상가상 만년 고시생일 줄만 알았던 강철수가 사시에 최종 합격하면서, 아들을 내세워 팔자 한 번 고쳐 보려는 방정자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졌으니, 결혼은 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네요.

 

낙태를 결심한 공진주는 찾아가는 병원마다 불법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고, 아무리 애원해도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수술을 해줄 수 없노라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막막한 심정으로 호적상 오빠인 공준수를 불러내 보호자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오히려 의사의 반대보다 더욱 심한 공준수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 것이죠. 어떻게든 고집 센 의붓여동생을 설득해 보려는 공준수의 말은 간절하기 이를 데 없어, 듣고만 있어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네 안에 있는 아기, 벌써 심장이 생겼을 거야. 벌써 콩닥콩닥 뛰고 있을 거라고... 그런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겠니? 오빤 네가 그 아기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 작은 심장을 콩닥거리며 온전히 너에게 매달려 있는데, 네가 지켜줘야 할 생명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자 공진주는 울먹이며 외칩니다. "나더러 미혼모라도 되라고? 내가 세상 사람들한테 받아야 할 손가락질은 그렇다 쳐. 하지만 아이가 받아야 할 상처는?" 남몰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았던 공진주는, 자기가 낳을 아이 역시 자기처럼 고통 속에 살게 될까봐 두려워한 거였죠. 아무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지만, 공진주는 엄마 진선혜(신애라)의 심장이 약해진 원인도 자기를 낳았기 때문이라 여겼고,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이유도 결국은 자기 때문이라 여기며 살아왔으니까요. 하지만 공준수는 망설이는 진주에게 결연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래. 왜 나를 낳았느냐고 원망할지도 몰라... 하지만 모르잖아. 낳아줘서 고맙다고, 이 세상에 살게 해줘서 고맙다고,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중략) 오빠가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줄게. 오빠 인생을 모두 네가 낳을 아이에게 걸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거야. 그러니까 진주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오빠가 언제나 곁에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네 안에 있는 그 작은 심장, 멈추게 하지 말자!" 온갖 세상의 풍파와 고통을 다 겪고도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공준수의 모습은 그녀에게 큰 용기를 선물해 주었지요. 그래서 공진주는 마음을 돌리고, 태어날 아기와 함께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나가기로 결심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아드님을 포기 못하겠습니다" 라고 방정자에게 선언한 후 물벼락까지 맞는 수모를 겪었지만, 공진주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늘 곁에 있어 주겠다고, 네 아기에게 인생 전부를 걸겠다고 말해주는 오빠가 너무 든든했기 때문이죠. "오빠, 외항선 탈까 해. 아기한테 돈 많이 들잖아. 오빠 돈 많이 벌게, 진주야. 그래서 내 조카 유학도 보내고 그럴 거야." 벌써부터 유학 자금까지 마련해 주겠다는 삼촌의 말에 예비 엄마는 더욱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이젠 정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언제나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예요.

 

 

외항선을 타기로 결심한 공준수는 사랑하는 나도희(강소라)와의 작별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여자에게 리드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다는 둥, 누가 봐도 뻔한 핑계를 대며 떠나려는 공준수의 태도를 나도희는 이해할 수가 없겠죠. 하루 하루 지나면 조금씩 냉정해져 갈 거라며, 그럼 머리도 식을 거고, 머리가 식으면 가슴도 식을 거라며 끝내 모질게 떠나려는 공준수를 붙잡고, 자존심 강한 얼음공주 나도희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결국 울음을 터뜨립니다. "준수씨가 왜 이렇게 나한테 잔인하고 못되게 구는지 화가 나야 하는데... 이럴 수밖에 없는 준수씨가 가여운 건 왜일까..." 그녀의 절절한 사랑을 느끼며 공준수의 눈에도 눈물이 차오르는데...

 

자신의 처지로는 어차피 그녀와의 사랑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공준수는 언제나 한 발을 빼고 도망갈 채비를 하고 있었죠. 다른 면에서는 용감하고 거리낌 없는 공준수지만, 사랑에 있어서만은 좀 비겁했는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살인 전과자라는 자신의 처지가 그녀에게 큰 상처가 될까봐 두려워한 것이니, 오히려 그 비겁함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 때 문득 짝사랑하는 나도희를 찾아왔던 공현석이 두 사람의 심상찮은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또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겠군요.

 

사실 요즘 드라마들 중에서 막장 요소가 전무한 작품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짧고 굵게 제작되는 주중 미니시리즈나 특별기획 드라마의 경우는 막장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호흡이 긴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의 경우는 막장을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훌륭한 작품이라 해도 약간씩은 막장 요소가 들어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소현경 작가의 '내 딸 서영이'라든가, 정지우 작가의 '못난이 주의보'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여지는데요. '내 딸 서영이'는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거짓말하며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가는 여주인공의 설정을 보면 상당히 센 막장에 해당하지만, 세련된 스토리의 힘과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수작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못난이 주의보'에도 따지고 보면 막장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경쟁작을 집필 중인 작가가 대놓고 디스하며 꼬집은 것처럼 '아버지의 친구와 결혼하는 딸'이라든가 '형제간 삼각관계' 등 몇 가지 자극적인 요소가 보이긴 해요.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인데, 공진주에게 물을 끼얹고 뺨까지 때리면서 반대하는 시어머니 방정자의 모습도 지독히 막장스럽고요. 하지만 이런 막장 요소들까지 뜨거운 가슴에 품어 녹여내는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우리의 주인공 못난이 공준수입니다. 그의 해맑은 눈빛과 진실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어느 새 답답했던 가슴은 뻥 뚫리고, 마치 오랜 상처가 치유되는 듯한 따스함이 느껴지거든요.

 

이 드라마를 명작으로 이끄는 힘은 바로 공준수라는 인물에게서 나옵니다. 저는 공준수의 캐릭터를 정지우 작가가 매우 깊은 고심끝에 탄생시킨 걸작이라 생각하며, 이에 필적할만한 두번째 캐릭터는 쉽게 탄생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어요. 명장의 손에서도 언제나 명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듯, 명품 캐릭터 또한 세상에 나타날 시기가 되어야만 탄생할 수 있는 법이죠. 그런 의미에서 공준수라는 힐링 캐릭터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한동안은 나쁜 남자의 인기가 유행을 타고 번졌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못난이 공준수처럼 따뜻한 사람이 점점 더 그리워지는, 춥고 어두운 시대니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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