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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주의보' 나도희의 편지 - 공준수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못난이 주의보

'못난이 주의보' 나도희의 편지 - 공준수에게

빛무리~ 2013. 7. 17.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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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벌을 받고 있나 봅니다. 내가 밀어내지 않으면 당신이 먼저 나를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한 사랑에 하늘이 벌을 주시나 봐요. 걸핏하면 어린 사슴 같은 눈망울로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며 "저를 자르실 건가요?" 라고 묻던 처음의 그 모습만 뇌리에 박혀,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봅니다. 설마 착한 당신이 나를 이토록 아프게 할 줄이야 어찌 알았을까요? 겨우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후회합니다. 쿨한 척하면서 당신을 보내주는 게 아니었어요. 이렇게 숨 쉬는 것조차 힘겨울 줄 알았더라면, 울며 불며 떼를 써서라도 붙잡아야 했습니다. 난 왜 그토록 쉽게 당신의 손을 놓아 주었을까요? 

 

 

당신의 순한 두 눈에 떠오른 결심의 빛이 너무 단단해서, 나는 애원해도 소용없을 것을 예감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믿고 싶었지요. 언제부턴가 당신이 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당신도 그럴 거라고... 아침에 눈을 뜰 때와 밤 늦게 잠이 들 때,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당신도 그럴 거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와 시원한 바람을 느낄 때, 내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당신도 그럴 거라고... 그러니 이제 나에게서 당신을 빼면 시체나 다름없을 것처럼 당신도 그럴 거라고, 나는 간절히 믿고 싶었나봐요.

 

 

하지만 당신이 내 곁에 없음을 깨닫는 이 아침, 눈을 뜨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강한 척 자신있는 척 당신을 보내 놓고, 이렇게 바보처럼 울먹이는 내 모습을 당신은 알고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참 모르는 게 많았습니다. 당신에게는 자기 앞가림을 잘 하고 마음씨도 착한 동생들이 있지요. 특히 언제나 큰오빠의 입이 귀에 걸리도록 만드는 막내 여동생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울지, 나도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군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게 비밀이 많은 사람을 난 어떻게 완전히 믿고,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또 나빴습니다. 당신은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뿐 나에게 한 마디 거짓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당신에게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네요. 물론 악의 없는 장난이었다고 변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한치의 의심 없이 나를 믿어준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 없도록 미안해집니다. 어쩌면 공현석 검사의 말이 맞는지도... 나는 가난한 소녀가장의 코스프레를 하고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연극을 하던, 지독히 오만하고 이기적인 공주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최소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진실했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못했던 나는... 시간이 많은 줄만 알고 머뭇거리다가 기회를 놓쳐버린 나는 뒤늦게 후회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당신이 긴 다리로 나의 보폭을 맞춰 함께 걸을 때면, 우리의 심장은 함께 뛰고 있는 듯 느껴졌어요. 그 길이 세상 끝까지라도 이어지길 바랐지만, 마지막 순간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빨리 돌아와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너무 오래 애타게 하지 말고... 너무 오래 별만 바라보게 하지 말고... 운전하다가 라디오에서 사랑 노래 나오면... 소리 내서 울게 하지 말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다가 목이 메어 말끝을 흐리는데, 그런 나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싸며 당신의 입술이 다가왔지요. 참으려 했는데, 기왕 쿨하게 보내 주기로 했으니까 당신 앞에선 눈물 보이지 않으려 했었는데, 참지 못한 당신의 눈물이 먼저 내 얼굴을 적시고 있더군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별을 보면 좀 견딜 수 있을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숨 쉬고 있는 당신을 하늘에서 찾는다는 건 부질없는 짓이었어요. 목소리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지만, 잘 다녀오라는 나의 인사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끊어 버리는 당신의 매정함에 또 다시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멀리 못 간다, 곧 되돌아 온다, 수천 번의 공허한 되뇌임 끝에 잠이 들 때는 차라리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원망스런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네요. 평소에는 부지런히 가게를 정리하며 오픈 준비를 하고 있을 당신 모습을 떠올리며 저절로 웃음짓던 시간인데, 지금쯤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 너무도 막막한 궁금증에 소리없는 전화기만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면, 꼭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노라고, 혹시라도 부담을 느껴 나를 떠날까봐 두려워서 그랬노라고, 나의 모든 진실한 이야기를 해 주겠습니다. 그렇지만 꼭 한 가지는 속이지 않았다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그 말 하나만은 진짜였노라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해 주겠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미안했던 일이 너무도 많은데, 내 얼굴을 뜨겁게 적시던 당신의 눈물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나보다 더 아파하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떠났을 당신이 얼마나 가여운지, 나는 잠시 내 아픔을 잊어 버립니다. 당신을 위해 내가 우는 만큼 조금이라도 덜 아파하길 바라면서,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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