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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진' 역사를 바꾸는 진혁, 그 세찬 나비효과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닥터 진

'닥터 진' 역사를 바꾸는 진혁, 그 세찬 나비효과

빛무리~ 2012. 7. 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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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의 작별 인사

 

'닥터 진' 11회에는 유독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과 명대사가 많았습니다. 진혁(송승헌)과 홍영래(박민영)와 흥선군(이범수)은 좌의정 김병희(김응수)의 계략에 빠져 대왕대비(정혜선)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는데, 죄목은 너무 큰 데다가 누명을 벗을 길은 막막하니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요. 영래의 어머니(김혜옥)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딸자식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보고자 옥리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사정하여 간신히 옥사 안으로 들어오는데, 모진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된 영래를 마주하자 회한의 눈물을 금치 못합니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줄 걸 그랬구나!" 고분고분히 말을 듣고 평범한 여인으로 살았더라면 이토록 험한 운명에 처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이제는 영래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탓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이 못난 딸이 참으로 원망스러우시지요?" 영래가 울면서 묻자, 어머니는 의연한 표정으로 대답하시는군요. "원망스럽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더냐? 하지만 용서 못할 자식도 없으니, 그게 새끼이고 그게 어미니라!" 제가 들었던 모든 영화와 드라마의 대사 중에 최고로 꼽을만한 신선한 명언이 여기서 나왔으니 바로 "원망스럽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더냐?" 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인생 최고의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이 자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식만큼 인생의 고통과 짐이 되는 존재가 또 있을까요?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쪽쪽 빨아먹고 자라날 뿐만 아니라, 각기 제 나름대로 고집이 있으니 부모 뜻대로 움직여 주지도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온갖 사랑과 정성을 쏟아 최선을 다해봤자 그 결과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 농사이니,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원망스런 존재가 자식일지도 모르겠군요.

 

2. 영래의 뜨거운 고백

 

"다른 세상 말이오... 예전에 그러지 않았소? 다른 세상에선 또 다른 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어쩌면 우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났을 수도 있다고... 정말 그렇다면 말이오...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에서,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꼭 다시 만나고 싶구려!... 헌데 그럴 수 있을런지... 기억할 수 있을런지..." 주인공 세 사람은 속절없이 교수대에 올라 인생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데, 죽음을 눈앞에 둔 영래는 과감히 진혁에게 사랑 고백을 합니다. 아무리 씩씩하고 소탈한 그녀이지만 조선시대의 양반집 규수로서 남자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마음을 전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홍안의 소녀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했던 것입니다.

 

버젓이 정혼자가 있는 몸으로 갑자기 나타난 근본도 모를 사내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으니, 그 동안의 마음 고생이 오죽했을까요? 혼인을 거부하는 것은 어머니와 오라비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변함없이 성실한 애정을 보여준 약혼자 김경탁(김재중)을 배신하고 그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였으니 영래의 착한 성품으로는 차마 못할 짓이어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받아들이려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사랑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렸군요. 맺어질 수는 없다 해도 그녀는 어떻게든 진혁의 곁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김경탁에게 파혼을 선언한 후, 양반집 규수의 몸으로 집을 나와 활인서에서 먹고 자며 험한 생활을 시작한 것이지요. 진혁과 영영 이별하는 것에 비한다면, 그 어떤 고통도 영래에게는 하찮을 뿐이었습니다.

 

 

누명을 쓰고 의금부에 끌려와서 가장 심하게 고문을 받은 사람은 영래였습니다. 흥선군과 결탁하여 대왕대비를 암살하려 했다는 거짓 자백을 진혁으로부터 받아내기 위해, 김대균(김명수)이 진혁의 눈앞에서 영래를 집중적으로 고문했기 때문이죠. 그들이 영래의 가냘픈 몸에 사정없이 매질을 하고 주리를 트는 동안, 차마 거짓말로 흥선군을 함정에 빠뜨릴 수 없는 진혁은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고문을 멈추라고 외쳤을 뿐입니다. 하지만 영래는 고통에 혼절했다가 깨어나서도, 자기를 염려하는 진혁의 마음을 먼저 위로했습니다. "내 걱정은 말라니까요. 이까짓 것... 진의원이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오. 하필이면 이런 낯선 곳에 와서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고... 그런 생각을 하면, 진의원이 참으로 안됐소이다!"

 

이렇게 진혁을 깊이 사랑한 그녀는 불에 달군 인두로 몸을 지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다만 죽음의 순간까지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또 다른 세상에 태어났을 때 서로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그래서 진혁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울 뿐이었지요. 진혁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저쪽 세상에 두고 온 연인, 자기와 꼭 닮은 미나라는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끝내 그에게로 달려가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영래의 뜨겁고 솔직한 고백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3. 김경탁의 목숨 건 사랑

 

대왕대비가 중독된 것은 도너츠 때문이 아니라 접시에 뿌려져 있던 비소 때문이었습니다. 진혁과 영래가 만든 도너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좌의정 김병희의 사주를 받은 궁녀가 미리 접시에 독가루를 뿌려둠으로써 이 모든 사단이 발생한 거였습니다. 일을 저지른 후 겁을 먹은 궁녀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하여 찾아낸 사람은 다름아닌 김병희의 서자 김경탁이었습니다. 자기의 오랜 순정을 매몰차게 짓밟고 떠나간 그녀였지만, 이 사내의 질긴 사랑은 끝내 영래를 외면하지 못했던 거죠. 하지만 궁녀에게 모든 사실을 자백받은 김경탁은 차마 그녀를 산 증인으로 끌고 갈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입을 열면, 자기 아버지가 대역죄를 쓰게 될 테니까요.

 

김경탁은 영래를 살리기 위해 독가루가 묻은 접시를 증거품으로 확보하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궁녀를 죽여 입을 봉합니다. 열 아홉 살 어린 궁녀를 단칼에 베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냉혹함을 탓할 수 없었던 것은, 날마다 뼈아픈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하는 김경탁의 운명이 더욱 더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한 마디 따스한 말도 해주지 않고 사랑한 그녀는 차가운 배신을 남기고 떠나갔지만, 김경탁의 다정한 마음은 그 어느 쪽도 버릴 수가 없으니 이는 정이 깊어서 오히려 냉혹해져야만 하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눈엣가시같은 흥선군과 진혁을 없앨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무산시킨 자가 바로 김경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병희는 아들의 손에 총을 쥐어주며 자결을 명합니다. 제 욕심을 차리지 못하게 했다고 자식을 죽이려 하다니 금수만도 못한 인간인데, 이런 아비도 아비라고 경탁은 그를 살리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했지요. 이제 죽음을 명하는 아비를 올려다보는 김경탁의 초연한 눈빛에는 놀람도 서운함도 거의 깃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담담한 얼굴로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갖다대고 아비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군요. "대감마님, 못난 소인 하직인사 드리옵니다. 부디 강녕하시옵소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데, 날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난한 백성들도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닥쳐오면 식겁하여 목숨을 구걸하게 마련인데, 좌의정의 서자 김경탁은 단 한 마디의 변명이나 애원도 없이 죽음을 선선히 받아들였습니다. 삶에 대해 추호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은 듯한 모습은, 그가 이제껏 얼마나 지독한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아비를 거역하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쩌면 예상하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목숨을 걸더라도 끝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영래를 향한 한 줄기 사랑이었습니다.

 

4. 춘홍의 혜안(慧眼)과 진혁의 나비효과

 

신비한 능력을 지닌 기녀 춘홍(이소연)... 어쩐지 낌새가 그렇다 싶더니만 그녀는 진혁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미래에서 온 사람을 알아보다니 그녀의 정체 또한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 이 신묘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 여배우 이소연의 고생이 많습니다. 무슨 전설의 고향도 아닌데 언제나 무섭게 충혈되어 있고 기이한 빛을 내뿜는 그녀의 눈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더니만, 공식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를 보니 연유를 알겠더군요. "동양인에게서 보기 힘든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 마치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과 같은 신비한 눈빛에..." 어이쿠, 춘홍의 신비한 눈빛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설정해 놓았군요. 동양인의 멀쩡한 눈동자가 저절로 푸르게 될 수는 없으니 아마도 렌즈를 착용했을텐데, 이소연의 눈이 언제나 충혈되어 있는 것은 그 렌즈의 부작용 탓인 듯합니다..;;

 

춘홍이 자기 정체를 알고 있음에 놀란 진혁은 다짜고짜 묻습니다. "그럼 혹시 돌아갈 방법도 알고 있습니까?"  (역시 진혁은 오매불망 돌아갈 생각뿐이었군요. 가엾은 영래..;;) 그러자 춘홍이 대답합니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면요!" 진혁이 얼른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자, 춘홍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습니다. "나으리는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오셨습니다. 무엇보다 이 곳에 와서 한 가장 큰 실수는 좌상 김병희를 살린 것입니다!" 그렇군요. 진혁은 다만 의사로서 사람을 살리고자 했을 뿐이지만, 특수한 상황에 놓였던 탓에 결과적으로는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큰 실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진혁이 아니었다면 뇌출혈로 쓰러진 김병희를 그 당시 의술로 살릴 수는 없었을 테니, 역사는 예정대로 흘러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마무리되고 흥선대원군의 시대가 도래했겠지요.

 

 

"만약 그자를 살려놓지 않았다면, 흥선군께서 지금 저렇게 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흥선군의 미래가 바뀌려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역사가 바뀐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춘홍의 말에 진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립니다. (내면 연기가 안 되는 송승헌의 낯빛은 그닥 변화가 없었지만, 대충 그럴 거라고 상상하면서 보았습니다..;;) 무심결에 했던 자신의 행동이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음을 알고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인 거죠. 그는 부랴부랴 말을 달려 흥선군의 귀양 행렬을 쫓아갑니다. 이제라도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의지로, 흥선군의 때 아닌 죽음을 막아보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대비 시해 미수 사건의 누명이 벗겨졌는데도 어째서 진혁과 홍영래만 풀려나고 흥선군은 풀려나지 못했을까요? 이 부분은 참으로 의문스럽네요. 하여튼 김병희는 제멋대로 흥선군을 귀양보내고, 쇠뿔도 단김에 뽑겠다는 듯 유배지에 당도하기도 전에 사약을 내리도록 명했습니다. 강화도령 철종이 허수아비 임금이긴 했겠지만, 좌의정의 명이 곧바로 어명으로 둔갑하는 모양새를 보니 기가 막히더군요. 게다가 아무런 명분도 없이 내려지는 그 사약을 흥선군은 고분고분 받아 마실 태세를 취합니다. 늦지 않게 뒤따라온 진혁이 애타게 도망치자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천하의 흥선군이 개죽음을 순하게 받아들이려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설정은 여러모로 좀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드라마 속의 일이긴 하지만, 과연 진혁의 나비효과로 역사가 바뀌게 될까요? 아니면 진혁이라는 한 사람의 존재쯤은 아랑곳 없이 모든 일은 예정대로 흘러가게 될까요? 진혁은 전염병에 걸린 식이엄마(방은희)를 애써 살려주었지만, 그녀는 아들을 구하려다가 고작 며칠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그 무렵에 죽을 수밖에 없도록 운명지어진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진혁도 절망적인 의문에 휩싸였었죠. 한 사람의 운명조차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는 거라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요? 진혁이 자기 존재의 위험한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앞으로의 스토리 진행은 점점 더 흥미로워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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