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황석정 (2)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처음부터 범상한 느낌은 아니었다. 처음 만난 덩치 큰 사내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고, 뭔가 신경에 거슬린다 싶으면 거침없이 뺨까지 올려붙이는 조선시대 여자아이라니! 신분 높은 공주나 양가댁 규수도 아니고, 기생도 천대받던 시절인데 하물며 기생의 몸종에 불과했으니. 가령(채수빈)은 천한 중에도 가장 천한 신분이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가령의 존재는 벌레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 누구든 마음껏 짓밟을 수 있고, 설령 죽인다 해도 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그만큼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았을 거라는 얘기다. 그러한 신분의 가령이가 어찌 그토록 당돌한 성품으로 자라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어려서부터 천대받고 짓밟히며 성장했다면, 티..
어쩌면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김부선은 그저 자신의 평소 성격대로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내뱉었을 뿐, 대중의 공감이나 응원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방 열사'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그녀에게 쏟아진 대중의 열광적 응원에 과연 그녀는 초연할 수 있었을까? 아파트 난방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그녀의 외롭고 힘겨운 투쟁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김부선은 순식간에 영웅으로 떠올랐다. 솔직히 그 이전까지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여배우 김부선의 이미지는 별로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억울한 서민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용감하게 총대를 메고 앞장선 그녀의 모습은 진짜 멋있었다. 투쟁의 결과는 좋지 못했다. 경찰은 난방비 0원을 부과받은 입주민들이 열량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인정할만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