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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자이언트'라는 드라마 속에서 조민우(주상욱)라는 인물은 마치 전신마비 환자와도 같습니다. 정신은 살아 있으나 형체없는 쇠사슬에 몸이 묶여 있기에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조민우를 보면 굉장히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미주(황정음)를 대할 때 외에는 하는 짓이 꼭 제 아비를 닮아서 새끼악마처럼 나쁜 놈인데, 차마 미워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가엾어만 하자니, 점점 더 냉혹해지는 그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라서 중간중간 혐오감이 치밀기도 합니다. 절대악 조필연(정보석)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은 조민우에게 있어 천형(天刑)입니다. 엄마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정해진 벌... 대체 그 어린 생명이 무슨 죄를 지었던 걸까요? 간악한 아비에게 모든 것을 통제당하며, 조민..
'자이언트' 44회에서 이강모(이범수)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만큼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한 번도 변함없이 지속되어 온 이강모의 황정연(박진희)을 향한 사랑은 거의 신앙이라 해도 좋을 만큼 숭고합니다. 백파의 사후, 유경옥(김서형)은 그의 유언에 따라 사채업자들에게서 원금을 회수하여 사회에 환원하려 하지만, 사채업자들의 반발은 예상대로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급기야 차부철(김성오)은 사채업자들과 결탁하여 황정연을 납치했지요. 황정연이 유경옥의 친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의 목숨을 담보로 유경옥에게서 차용증서들을 빼앗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비상사태를 맞아 황태섭(이덕화)과 유경옥, 이강모는 대책을 강구하지만 황정연이 있는 장소를 찾아내는 ..
사채업계의 대부 백파(임혁)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살아 온 방식을 옳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드라마 상에서는 절대악 조필연(정보석)과 맞서 싸우는 인물이었기에 우리는 마음 속으로 그를 응원해 왔지요. 백파와 조필연의 싸움은 말 그대로 돈과 권력의 싸움이었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조필연의 힘이 더 막강해 보였는데, 결과는 백파의 승리였습니다. 그 동안 대부업은 어둠의 시장으로 불렸습니다. 사채업자들은 정당한 세금을 내는 대신 정권의 실세들과 야합하여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댓가로 모든 편익을 제공받으며 사업을 해 왔지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그들의 관계는 너무 단단하고 역사가 길어서 결코 깨뜨려질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조필연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도 그들의 공생관계가..
걸그룹 '슈가'의 멤버로 활동할 당시, 황정음은 지금보다 약간 동그스럼한 얼굴에 아주 귀여운 가수였습니다. 저는 2003~2004년 무렵에 '도전 1000곡'을 굉장히 즐겨 보았었는데, 출연할 때마다 황정음이 보여주던 노래 실력에 무척 감탄하곤 했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오래된 노래까지 두루 섭렵했을 뿐 아니라, 가사조차 한 번도 안 틀리고 끝까지 청아한 목소리로 완창하는 그 모습은 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지요. 어떤 대선배 여가수는 귀엽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기는 이 조그만 머릿속에 어쩜 그렇게 많은 가사를 집어넣고 다니니?" 라고 물었던 적도 있습니다. '슈가' 해체 이후 황정음은 연기자로 데뷔했으나 한동안 부진의 늪에서 시달렸지요. '사랑하는 사람아', '겨울새' 등의 작품에 ..
이강모(이범수)와 황정연(박진희)은 사실상 원수가 아닌데, 지금은 철천지 원수가 되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했던 속시원한 복수극과는 너무 차이가 있군요. 아직도 이강모의 앞날에 많은 고난이 남아 있을 것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지금의 상황은 볼수록 기막히고 안타깝습니다. 자기가 가진 힘을 총동원하여 강모를 쓰러뜨리려고 안달하는 정연의 모습을 보며 정말 답답했어요.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요? 악마 조필연(정보석)이 두 사람 사이에 '오해'라는 매개체를 삽입시켰기 때문입니다. 강모의 아버지를 죽인 것도 조필연이고, 정연의 아버지를 전신마비 상태로 만든 것도 조필연인데, 지금 젊은 두 남녀는 서로를 아버지의 원수라 여기고 있습니다. 오해란 언제나 무서운 것이지만, 이들 사이에 끼어든 오..
이강모(이범수)의 복수극이 시원스레 진행되면서 한동안 지켜보는 마음도 즐거웠는데, 너무 빨리 고통이 찾아들고 있습니다. 악마는 더없이 뻔뻔하고 비열하고 영리합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공격에 몸이 다치고 쓰러지는 것 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는데, 사랑과 믿음마저 잃게 될 터이니 이 슬픔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주인공 이강모의 곁에서 든든한 우군이 되어 줄 수 있었던 사람들이, 악마 조필연(정보석)과 그 일가에 의해 어떻게 사랑과 믿음을 잃고 무너져 갈는지를 한 명씩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황태섭 (이덕화) 이제껏 조필연과 더불어 악역이라고만 인식해 왔던 황태섭 회장은 사실상 악역이 아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악역 치고는 너무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원래..
이강모(이범수)와 이성모(박상민) 형제의 복수극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빠른 템포와 극적인 전개에 한시도 눈을 돌릴 수 없고 숨조차 크게 쉬어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고통을 참으며 준비해 온 이들은, 본격적인 복수의 궤도에 접어들자 엄청난 속도로 삽시간에 거인들을 무너뜨리는군요. 현재까지는 그야말로 유쾌 상쾌 통쾌입니다. 우선 이강모는 도로공사의 기반이 될 신기술을 거침없이 개발해 냈고, 사채업계의 대부인 백파(임혁)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사로잡아 든든한 우군을 확보했습니다. 건대협 소속인 광명건설의 천수만 회장을 찾아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신기술을 내세워 독점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도시국장인 한명석(이효정)에게는 단지 몇 마디의 말을 건넴으로써 황태섭과의 오랜 우정을 깨뜨렸습니다..
드디어 이강모(이범수)가 출소하여 '한강건설'이라는 회사를 창립하고 야심찬 복수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강모는 별로 운이 나쁜 편도 아니군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긴 했지만 형 이성모(박상민)가 정부기관 쪽에 연줄이 닿아 있어서 어느 정도 보호를 받으며 출소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고 (아직 형기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황태섭(이덕화)이 그의 아들 대신 누명을 써 주는 댓가로 선선히 이강모에게 넘겨 주었던 개포지구의 거대한 노른자위 땅이 모두 그의 소유로 남아 있으니, 재기의 발판은 더없이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덕분에 그는 사회에 다시 발을 내딛자마자 조금도 시간을 끌지 않고 즉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시원스레 오르기 시작했군요. 사채업계의 독사라 불리는 노인, 백파(임혁)를 상..
조필연(정보석)은 이성모(박상민)와 이강모(이범수) 형제의 가장 큰 원수입니다. 그들 아버지의 친구였던 황태섭(이덕화)도 깊은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황태섭은 원래 친구를 죽일 생각이 없었으며, 그 위험한 자리에 나올 희생양이 바로 자기의 친구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발견하고 놀라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멀찌감치서 지켜보던 조필연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그들의 아버지를 죽였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타고 왔던 트럭 안에서, 이성모(아역 김수현)는 똑똑히 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성모는 당시 19세의 소년에 불과했으나, 우연히 숨어들어간 미군부대에서 조필연과 마주쳤을 때 침착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총에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던 아버지를 본 것이 겨우 며칠 전인데, 원수를 눈앞..
내가 정연이를 왜 사랑했을까? 그녀도 믿지 않았고, 다른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정연이는 처음으로 내가 원해서 선택한 내 여자였다. 다만 아버지가 선택한 정략 결혼의 상대자와 일치했을 뿐이었다. 예전에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아버지를 이길 수 없으니까, 아버지가 원하는 다른 여자와 결혼함으로써 그녀를 잃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내 곁에 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결국 나는 잃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는데,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서도 그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억지로 붙잡으려 했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뼛속이 아플 정도로 절실히 느끼게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꼭 두 사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