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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이장일이 김선우의 뒤통수를 내리치고 벼랑에서 밀어 바다로 떨어뜨리던 그 충격적인 명장면은, 두 명품 아역들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었지요. 임시완의 눈빛이 갑자기 정신나간 것처럼 변해서 몽둥이를 들고 이현우의 뒤를 바짝 쫓아갈 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는데,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씩이나 선우의 머리를 몽둥이로 있는 힘껏 내리치는 장일의 모습이 너무도 뜻밖이었던 이유는, 첫 회의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선우와 장일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이장일(이준혁)은 마치 절대악을 응징하려는 정의로운 검사처럼 진노식(김영철) 회장을 찾아가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진노식은 이미 김선우(엄태웅)..
김선우(엄태웅)가 시력을 회복한 후의 모습으로 이장일(이준혁) 앞에 나타나 본격적인 복수의 서막을 알렸으니, 앞으로는 엄태웅의 동공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듯합니다. 이장일과 이용배를 불러내서 마치 "내가 돌아왔다!"고 선포라도 하듯이 보여주었던 섬뜩한 그 연기가 마지막이었나봐요. 스토리의 흐름이나 설정으로 봤을 때는 어째서 그와 같은 만남이 필요했는지 썩 납득이 안 가는데, 아마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그 소름돋는 연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엄태웅의 맹인 연기는 단지 동공뿐만 아니라 온 몸과 표정에서부터 생생히 전해져 오는, 명품 중의 명품이었습니다. 오래 전, 안재욱의 데뷔작이었던 '눈 먼 새의 노래' 이후 더 이상의 맹인 연기를 볼 수는 없을 ..
좀 더 푹 빠져들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워낙 좋아하는 드라마라서 그저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김선우(엄태웅)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는 그가 언제쯤에나 시력을 회복해서 속시원한 복수를 시작해 줄까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건만, 정작 그 때가 되었는데도 통쾌함의 카타르시스를 기다리며 설레기보다는 온통 마음속 한가득 물음표 투성이입니다. 세간의 칭찬이 자자했던 9회의 마지막 부분도 제가 보기에는 참 의문스럽고 이상했는데, 10회를 보고 나니 더욱 황당하다는 생각뿐입니다. 13년이라는 기나긴 준비 기간을 거쳐 드디어 돌아왔으니, 이제부터 김선우의 모든 언행은 엄청난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말 한 마디부터 행동 하나까지 모두 치밀한 계산하에, 아주 의미심장하게 진행되어야..
어느 덧 7회까지 이르른 현재, 김선우(엄태웅)와 한지원(이보영) 사이에 흐르는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멜로는 자칫 이 드라마가 복수극이라는 사실까지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그 어떤 멜로드라마에서도 이보다 더 설레고 짜릿하고 감동적인 사랑은 본 적이 없는 듯하군요. 언제나 저는 감성 위주의 리뷰를 쓴다고 공공연히 말하지만, 솔직히 털어놓는다면 드라마나 영화 속의 사랑에 진짜로 푹 빠져들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몇 걸음 떨어진 채 관조하듯 보고 나서, 글을 쓸 때는 의도적으로 몰입한다고나 할까요? 극도의 감정 몰입을 요구하는 편지 형식의 리뷰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부러 한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고 그 감정을 느끼려고 집중하다 보면, 실제로 드라마를 시청할 때보다 훨씬 더 깊게 느껴지곤 했거든요. ..
비장한 복수극에도 사랑은 필요하지요. 무려 6회만에 남녀 주인공인 김선우(엄태웅)과 한지원(이보영)의 사랑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오래 전, 진노식(김영철)의 차창을 깨부수는 과정에서 잠깐 마주쳤던 한 번의 인연을 제외하면 이 두 사람은 좀처럼 엮일 기회조차 없었죠. 물론 그 한 번의 마주침이 한지원에게는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지만, 김선우는 그녀의 존재를 기억이나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에 비해 이장일(이준혁)은 지난 몇 년 동안 한지원을 지켜보며 사랑을 키워 왔습니다. 그녀의 미지근한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관심을 표현하며, 어떻게든 다가서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이제껏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갑자기 깨어난 눈 먼 녀석이 그녀의 사랑을 가로채 버렸으니, 이장일의..
복수극의 지존이라는 엄태웅의 칭호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차가운 복수심에 불타는 남자의 내면을 이보다 더 리얼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있을까요? 특히 이번에는 처음으로 맹인 연기에 도전함에 있어 많은 연구와 노력을 했음이 엿보입니다. 눈을 뜨고 있되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공허한 눈동자를 얼마나 실감나게 표현했는지, 각종 포털의 인기 검색어에는 '엄태웅 동공연기'라는 단어가 떠올랐군요. 엄태웅은 눈동자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과 언어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갑작스레 눈이 멀어버린 사람의 절망과 공포를 나타냈고, 차츰 기억이 떠오르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 싹트기 시작하는 통렬한 분노와 복수심을 형상화시켰습니다. 엄태웅의 명품 연기와 더불어 '적도의 남자' 5회는 방송 시간..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김영현 작가의 새로운 사극 '뿌리깊은 나무'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 초기 세종조의 한글 창제에 얽힌 비화들을 추리, 액션 등과 결합하여 독특하게 풀어나갈 듯합니다. 초반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데, 이번에는 정말 기대를 걸어봐도 괜찮겠지요? 작가의 이름 때문에 신뢰가 가기는 합니다만, 최근 들어 제법 큰 기대를 가졌던 두 편의 사극에 차례로 실망한 뒤인지라 불안한 마음 또한 적지 않습니다. '계백'은 '상도'와 '다모' 등을 집필했던 정형수 작가의 작품이며, 아역들이 등장하던 초반의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게다가 주인공 계백의 아버지로 나왔던 차인표의 열연이 더욱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성인 연기자들로 교체되면서 어딘가 심상찮은 삐걱거림이 시작되더니,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달려가..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불륜과 이혼 등의 소재는 무척 싫어하는 저에게 있어 '애정만만세'는 처음부터 그닥 애정을 가질만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동시간대에 고정적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없다 보니 무심히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략의 내용은 알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변주리(변정수)와 채희수(한여름)라는 두 명의 불륜녀가 등장하는데, 이 여자들의 뻔뻔함이 어찌나 지독한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원래 여주인공 강재미(이보영)의 남편이었다가 지금은 채희수의 남편이 되어 있는 불륜남 한정수(진이한)의 뻔뻔함은 짝꿍 채희수를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이제껏 선량한 사람들은 점점 더 억울해지고,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내팽개쳐 버린 그 뻔뻔한 인간들은 ..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은 4회를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적 구도를 찾아가는 듯 합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반의 어수선함이 대략 정리되고 주요 인물들의 소개도 거의 마쳤습니다.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이쪽 저쪽을 살피며 궁금증을 억누르고 시청해야 했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구도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가는 전체적 그림을 감상하면 되는 것입니다. 2회까지 밋밋한 존재감으로 우려를 자아내던 정우성은 3회를 기점으로 주인공다운 존재감을 80% 이상 회복했지요. 대통령의 딸 조수영(이보영)이 납치되던 순간,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이정우(정우성)이 보여 준 액션은 정말 멋졌습니다. 김기수(김민종)과 더불어 티격태격하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
유명 포털사이트의 메인에서 언뜻 이병훈 PD가 '대장금'의 이영애와 '동이'의 한효주를 비교한 듯한 기사의 제목을 보았습니다. 깜짝 놀라서 읽어보니 대략의 내용인 즉, "본인은 여자주인공이 밝아야 드라마가 산다고 생각하여 항상 적극적이고 밝은, 전문적인 여자를 그리고 싶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한효주가 유일하게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영애는 대장금 출연 당시의 나이가 30대 중반이었던 데다가 성격이 너무 차분해서,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여성 캐릭터의 밝은 모습이 생각만큼 표현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더군요. 글쎄, 최고의 전문가가 하는 말임에도 저로서는 거의 찬성할 수 없는 의견이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도 연극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실제 성격은 굉장히 내성적이고 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