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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남자' 김선우와 한지원의 아주 특별한 사랑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적도의 남자

'적도의 남자' 김선우와 한지원의 아주 특별한 사랑

빛무리~ 2012. 4. 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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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한 복수극에도 사랑은 필요하지요. 무려 6회만에 남녀 주인공인 김선우(엄태웅)과 한지원(이보영)의 사랑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오래 전, 진노식(김영철)의 차창을 깨부수는 과정에서 잠깐 마주쳤던 한 번의 인연을 제외하면 이 두 사람은 좀처럼 엮일 기회조차 없었죠. 물론 그 한 번의 마주침이 한지원에게는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지만, 김선우는 그녀의 존재를 기억이나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에 비해 이장일(이준혁)은 지난 몇 년 동안 한지원을 지켜보며 사랑을 키워 왔습니다. 그녀의 미지근한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관심을 표현하며, 어떻게든 다가서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이제껏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갑자기 깨어난 눈 먼 녀석이 그녀의 사랑을 가로채 버렸으니, 이장일의 눈이 뒤집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겠군요. 가뜩이나 김선우는 그의 죄책감과 불안을 자극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데, 간절히 얻고자 했던 여자의 마음마저 그에게 빼앗겨 버렸으니까요.

운명처럼 가까워지는 김선우와 한지원의 모습을 보며, 저는 그들의 앞날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어요. 그들의 사랑은 어떤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지막 휴식처가 되어줄 것입니다. 지금은 겨우 호감이 싹트는 단계이지만, 그들이 시작하고 있는 것은 순도 100%의 진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호감을 느끼고, 그 감정을 표현한 쪽은 한지원이었습니다. 여고생 시절, 자기 아버지를 모욕한 진노식의 차창을 돌멩이로 때려부수던 행동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청순가련한 외모와 달리 참으로 당돌하고 깡이 센 여자죠. 자기 손에서 돌멩이를 뺏어들고는 거침없이 차창을 박살내 주던 김선우의 모습은 그녀의 마음속에 한 장의 사진처럼 깊은 인상으로 새겨졌습니다. "제 타입이었어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김선우의 첫인상을 이렇게 표현할 만큼, 한지원은 어쩌면 김선우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반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년의 세월이 흘러, 초라한 맹인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김선우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용기와 총명함으로 반짝이던 눈빛은 초점을 잃어 흐릿해졌고, 온 세상을 날아다니듯 민첩하던 몸놀림은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힘겨울 만큼 둔해져 버렸습니다. 한지원이 기억하던 인상적인 모습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녀의 성격상 김선우의 얼굴이 잘생겨서 첫눈에 반했던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런데도 한지원은 변함없이 김선우를 좋아합니다. 항상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그를 위해 택시를 잡아 주고... 혼자 보내기 뭣하다는 핑계로 그의 집까지 함께 오고... 선우가 이제는 혼자 갈 수 있다고 하는데도 굳이 7층 버튼을 눌러주겠다며 엘리베이터까지 함께 타고... 좁은 공간 속에 그와 나란히 선 채 괜히 뜸을 들이며 머뭇거리다가 한참만에 버튼을 누르고... 마지 못해 내려서는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돌아보고...

그가 원하는 책이 오디오북으로 제작되지 않자 직접 곁에 앉아 라이브로 읽어주고... 기타를 치며 노래까지 불러주고... 한지원의 태도는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여자의 모습입니다. 혈혈단신 고아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남자... 심지어 몸도 성치 않은 이 남자에게 끌리는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편 김선우는 아직 그녀의 이름조차 알지 못합니다. 오디오북에서 들었던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녀가 녹음한 책이 헤밍웨이의 소설이었다는 이유로 무작정 "헤밍씨!" 라고 부릅니다. 왜 이름을 묻지 않는 걸까요? ... 그러고 보니 한지원 역시 김선우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맹인복지관에서 봉사하는 그녀는 당연히 김선우의 이름을 알고 있을텐데, 한 번도 부르지 않는군요. 이장일은 언제나 그녀를 "지원씨!"라 부르고 그녀도 "장일씨!"라 부르는데, 김선우와의 관계에서는 마치 둘 다 이름없는 사람들 같습니다. 이게 우연일까요?

김선우는 그녀의 이름만이 아니라, 어떻게 생겼는지 외모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김선우가 알고 있는 한지원이라는 여자는 오직 목소리와 향기로만 존재할 뿐이죠. 보통의 경우라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함에 있어 외모가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사랑비'는 나름대로 순수한 사랑을 다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역시 외모에서 비롯된 흔한 사랑일 뿐입니다. 그녀를 보는 순간 3초만에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그야말로 예쁜 외모에 홀딱 반했다는 말 외에 다른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나 김선우와 한지원의 사랑에는 모든 현실적 조건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외모에 무관심하고, 여자는 남자의 재력이나 능력 따위에 무관심합니다. 그 여자가 어떻게 생겼든 상관없이, 그 남자가 상거지 신세든 뭐든 상관없이, 두 사람은 그냥 서로의 존재 자체에 끌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유도 저는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름 역시 세상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또 하나의 조건이니까요. 자기 이름을 타인에게 알리고 싶은 욕망이 바로 명예욕 아니겠습니까?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분한 이 두 사람의 특별한 사랑에는 이름마저도 쓸데없는 허울에 불과합니다.

이장일이 한지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뻔합니다. 처음에는 그녀가 부경화학 사장 딸이라서 좋아했고, 나중에는 그녀 집안이 폭삭 망했음을 알았지만 그 예쁜 외모 때문에 계속 좋아했지요. 그녀의 인간 됨됨이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등록금 벌기도 힘들어하면서 봉사는 무슨 허영이에요?" 라고 묻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김선우와 복지관에서 자꾸 마주치는 게 싫어서 그랬던 것이지만, 그 어리석은 말로 인해 이장일은 한지원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의 내면적 실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지요. 그렇다면 좋아하는 이유가 예쁜 얼굴 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외적 조건에 의한 사랑을 무조건 가치 없다고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더라도 나중에는 조금씩 진심이 더해질 수 있겠지요. 처음엔 예쁘고 돈 많아서 좋아했지만, 차츰 만나다 보니 다른 장점들을 발견하면서 진짜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조건들을 완벽히 배제하고 시작하는 한지원과 김선우의 아주 특별한 사랑을 지켜보는 제 마음은 더없이 흐뭇합니다. 아직도 사랑에 관해서만큼은 지독히 유치한 고집을 버리지 못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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