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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불과 이틀만의 눈부신 발전이었다. 이승기는 확실히 '짐'에서 '짐꾼'으로 진화하는 중이었고, 그 진화의 과정은 쉼 없이 돌아가는 카메라에 그대로 잡혀 생생히 전달되었다. 터키에서 본의 아니게도 살아있는 짐짝 노릇을 하며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던지, 크로아티아로 떠나는 날은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나 씻지도 않은 채 몇 시간이나 가이드북을 예습하며 심기일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무경험에서 비롯되는 실수들이 밤새워 공부한다고 단숨에 사라질 수는 없었다. 이승기는 크로아티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짐 날라주는 포터를 공짜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적잖은 돈을 날리고 말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맹한 모습을 보였으니 누나들의 믿음을 얻기란 아직도 머나먼 일이었다. 초보 짐꾼 이승기의 든든한 조력자는 역시 막내 누나 이미연이었..
터키에서의 첫 날, 짐이 되어버린 짐꾼 이승기의 고난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도대체 어느 만큼의 설정이 들어간 건지, 아니면 그게 전부 다 이승기의 본래 모습인 건지, 약간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이승기는 지갑과 여권을 물 새듯이 줄줄 흘리고 다녀서 누나들이 대신 챙겨주게 만들었고, 최선을 다해 정신을 바짝 차려도 모자랄 판인데 느닷없이 팽이에 정신이 팔려 혼자 노느라, 터키의 낯선 거리에 누님들을 방치해 두었다. 평소의 영민하고 사려 깊은 이승기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환전 등의 일처리를 위해 어디론가 갈 때는 분명히 말을 하고 가야 하는데 갑자기 휙 사라져서 남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일단 그렇게 사라진 후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었다. 지금껏..
'꽃보다 할배'의 성공에 탄력받아 그 어떤 예능보다도 큰 기대와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꽃보다 누나'의 첫 방송이 전파를 탔다.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동유럽 크로아티아에 이르는 여정인데, 첫 방송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까지의 준비 과정과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해서 좌충우돌 헤매는 장면들로 꽉 채워졌다. 드디어 여행을 좀 시작하나 싶더니만 곧바로 끝나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보다 누나' 1회는 기대치를 윗도는 웃음과 재미를 선보였다. 단연 최고의 포인트는 누나들을 모시고 '짐꾼'으로 출발했으나 얼마 못 가 '짐'으로 전락해 버린 이승기의 멘붕이었다. 물론 할배들을 모시고 다녔던 이서진도 초반에는 적잖이 헤매고 힘들어했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43세의 연륜과 경험으로 무장한 이서진..
명품 아역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여왕의 교실'에 또 한 명의 새로운 다크호스가 나타났습니다. 초반에 심하나(김향기)의 남자친구로 등장하여 과감한 놀이터 키스신(?)을 선보였지만,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다는 설정 때문에 곧바로 퇴장했던 김도진(강찬희)이 다시 돌아왔거든요. '여왕의 교실' 작가들은 아마도 '신사의 품격' 팬이었던 듯 김은숙 작가의 남녀 주인공 김도진, 서이수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했는데, 이건 무슨 장난인가 싶을 정도로 뜬금없는 설정이라 조금은 황당했답니다. 1회에서 심하나는 가슴 아픈 첫키스의 추억을 남기고 떠난 첫사랑 김도진이 사실은 옆 반 서이수와도 키스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었죠. 그래서 6개월만에 다시 만난 김도진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지만, 김도진은 놀라운 언변..
당신은 '여왕의 교실' 8회를 보고 감동을 받았나요? 도둑질과 몰카와 왕따 사건의 주동자였던 고나리(이영유)가 반 친구들과 화해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따뜻해졌나요? 친구의 잘못을 쿨하게 용서하고 다시 받아주는 아이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동심을 보며, 그래도 이 세상이 아직은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에 흐뭇해졌나요? 그런가요, 그게 맞는 건가요? 저는 그 장면들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너무 불편하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토록 괴롭힘을 당했으면서도 나리를 용서해 주자고 앞장서서 반 아이들을 설득한 심하나(김향기)는 물론 착한 아이였죠. 하지만 저는 심하나의 착한 행동이 (이번 경우에는) 기특하기보다 오히려 짜증스럽게 느껴지더군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여왕의 교실'에서 표현..
남성들도 그런 경우가 있겠지만, 저는 가끔씩 어떤 '여자'의 행동을 보며 같은 여자라는 게 창피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요즘같은 시대에 '남자니까' 어떻고 '여자니까' 어떻고 하면서, 매사에 여자임을 또는 남자임을 티낸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안녕하세요'에 출연하신 공주병 엄마는 같은 여자들을 무척이나 창피하게 만드시는 분이었습니다. 고민의뢰자는 현재 5살, 2살의 남매를 키우고 있는 둘째딸이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는 공주병 엄마의 시중을 드는 일이 어찌나 까다로운지,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도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자 형제들 사이의 고명딸로 외할아버지의 귀염을 듬뿍 받으며 자라신 엄마는 지금도 항상 "어머, 나 이런 거 안해..
'더킹 투하츠'는 보면 볼수록 참 신기한 드라마입니다. 가장 비현실적인 설정하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섬뜩할 정도로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죠. 현재 대한민국은 입헌군주제 국가도 아니고 북한과의 관계도 드라마 속에 그려진 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언제 어디선가 현실 속에서 본 듯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느낌을 주는 드라마는 처음이에요. 보통 드라마 속 인물은 그 성향과 특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일관된'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그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를 시청자들이 뚜렷이 인식해야 몰입이 수월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캐릭터가 굉장히 단순합니다. 착한 놈은 항상 ..
봉영규(정보석)는 지적 장애인입니다. 남들이 바보라고 놀리면, 그는 바보가 아주 좋은 것이라면서 싱글벙글 웃습니다. 그의 나이는 어느 새 50을 훌쩍 넘겼으니 지천명(知天命)이라 할 것인데, 따지고 보면 하늘의 뜻을 그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며, 누구에게도 앙심을 먹지 않습니다. 햇님은 환하게 세상을 비추어 주니 고맙고, 새싹은 물만 먹고도 무럭무럭 자라서 예쁜 꽃을 피워 주니 고맙습니다. 온통 눈 마주치는 것마다 예쁜 것, 고마운 것 투성이입니다. 그는 어머니(윤여정)를 좋아하고 딸 봉우리(황정음)를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있어서 봉영규는 행복합니다. 참, 깜박 잊을 뻔했는데 좋은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바보라..
컴백 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동방신기의 모습을 '세바퀴'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워낙 고정패널과 출연자가 많은 프로그램이라 개별적인 토크는 거의 들을 수 없었지만, 제게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다짜고짜 스피드 퀴즈'에서 유노윤호가 통화 상대자로 원로 여배우인 윤여정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친분관계라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2009년 가을, 두 사람은 같은 드라마에서 만나 굉장히 아름다운 커플(?) 연기를 보여 준 적이 있었더군요. 워낙 시청률이 좋지 않았고, 저도 보다가 중간에 포기했던 드라마인지라 깜박 잊었었는데, 덕분에 생각이 났습니다. '맨땅에 헤딩'은 작품성 면에서 별로 높이 살만한 드라마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
'놀러와'의 세시봉 특집을 계기로 조영남의 TV 출연이 잦아졌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경실과 함께 '밤이면 밤마다'에도 나왔었고, '무릎팍 도사' 이장희편에도 특별출연으로 얼굴을 비추더니만, 이제는 예고했던 대로 '무릎팍 도사'의 메인 게스트로 출연했군요.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조영남의 이미지가 약간이나마 대중적 비호감의 늪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놀러와'에서도, '밤밤'에서도, '무릎팍'에서도 제가 조영남을 보며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그의 모습이 행복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조영남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별로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무척 많이 늙었고, 굳이 일부러 겸손하려고 할 필요도 없이 작고 초라해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