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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트' 종영, 내가 주목한 3가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프레지던트

'프레지던트' 종영, 내가 주목한 3가지

빛무리~ 2011. 2. 2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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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기 드문 정통 정치드라마로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프레지던트'가 종영했습니다. 낮은 시청률로 고전했지만 저에게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긴,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마지막회를 시청하며 제가 주목한 3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1. 아버지의 희생

조태호 회장의 악행을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는 명백한 살인교사자이며 비리 기업인입니다. 게다가 그가 선택한 자살의 방법 또한 최악이었습니다. 살인병기 등으로 수족처럼 부리던 황팀장에게 약을 먹이고 운전을 시켰으니 자기 목숨 외에 한 목숨을 더 죽였을 뿐 아니라, 교통사고가 났다면 무고한 다른 사람마저 희생시킬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방법이었습니다. 핸들을 놓고 정신을 잃은 황팀장, 방향을 잃고 무섭게 돌진하는 자동차, 그 뒷좌석에서 모든 것에 초연한 듯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는 조태호 회장을 보면서 제가 분노를 느낀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의 희생에는 너무도 무관심한 그 노인의 이기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딸과 사위를 위해 팔순의 몸으로 옥살이를 감수하고,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선택이 한편으로는 가슴 저리게 느껴지니, 제 마음이 어지간히 약해져 있는 모양입니다. 조회장은 죽기 전에 사위 장일준(최수종)과 통화하며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소희가 처음 자네를 우리집에 데리고 왔을 때, 내가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자네는 대통령이라고 했지. 코흘리개 어린애들이나 할법한 이야기였어. 그런데 기막힌 것은 내가 자네 말에 믿음이 생기더라는 거야. 그 때부터 나는 자네를 대통령으로 만들 작정을 했어. (장일준 : 이건 살인입니다. 무고한 사람을 둘씩이나 죽인 겁니다!)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올 때는 더 많은 사람이 죽었어. 이건 나의 마지막 사업이야. 나는 이 사업을 꼭 성공시키고 싶었어. 자네라면 이 나라를 새롭고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걸 위해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야 했어... 장서방, 내 죄업은 내가 다 안고 가겠네. 내가 지옥에 가서 죽은 사람들에게 사죄하겠네. 부탁하네. 모든 것은 내가 다 지고 갈 테니까, 자네는 자네 길로 가게. 부디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어 주게. 그리고... 소희는 버리지 말게."

'싸인'의 정병도가 윤지훈(박신양)에게 남겼던 손발이 오그라들도록 유치한 편지에 비한다면, 조태호 회장의 유언은 참으로 간결 명료하며 심지어 당당해 보였습니다. 그는 확고한 신념과 원칙으로 평생을 살아 온 사람이었는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성 때문에 악인이 된 것이었습니다. 사위에게 남기는 그의 말을 들으니, 문득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던 태종 이방원의 모습이 겹쳐지더군요. 어쨌든 장일준을 위해 희생한 수많은 사람의 명단에 이제는 아버지의 이름이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2. 떠나가는 충신들

드디어 장일준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여러 차례 목숨의 위협까지 받으면서도 결국은 대통령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 혼자만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함께 해 온 많은 사람의 꿈이었으며, 그가 올라선 단상은 희생자들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장일준은 꿈을 이룬 그 순간에 수족같은 인재들을 거의 모두 잃어야 했습니다.


윤성구(이두일)와 오재희(임지은)는 어느 정도 미리 예상하고 있었지만 기수찬(김흥수)까지 떠나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장일준이 느끼는 큰 충격은 고스란히 저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저희... 이제는 정치 안할 겁니다. 절대로요."(오재희) "저에게도 양심은 있습니다. 사람까지 죽는 것을 봐야 하는 선거... 저에게는 승리가 아닙니다. 그걸 묻어두고 태연하게 갈 만큼, 저 그렇게 내공이 강하지 못합니다. 이제 목 빼고 저를 기다리던 여자들을 만나서 밀린 데이트나 해야겠어요."(기수찬) 그렇군요. 주군과 맺은 의리 때문에 승리의 순간까지 함께 달려오기는 했지만, 장일준의 참모들은 그 모질고 독한 정치판에서 끝까지 뒹굴기에는 너무 올곧은 품성을 지닌 자들이었던 겁니다.

"아버지,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십시오. 5년 후에는(임기를 마치시면) 그 때는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순간에도 유민기(제이)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쿨한 모습으로 떠나가는 아들을 장일준은 또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군요. 이제 장일준은 그 높은 자리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이치수(강신일)가 형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는 아주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어야 할 것입니다.

3. 승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꿈을 이루었으나 장일준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승리하자마자 진정한 동지들이 떠나가더니, 그 다음에는 온갖 탐욕스런 날파리떼가 그에게 들러붙습니다.


장일준의 죽은 장인 조태호 회장은 욕심과 더불어 희생 정신도 지닌 사람이었으나, 그의 뒤를 이은 조상진은 오직 탐욕만을 물려받았습니다. 지금껏 매부 장일준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그는, 이제 승리를 이루니 그 권력에 숟가락을 얹을 생각부터 합니다. 기업의 협조가 없으면 대한민국은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돕지 않으면 모두가 적이 될 것이고 장일준은 아무런 정책도 추진할 수 없을 거라고 자기 누이인 조소희(하희라)를 협박(?)합니다. 조소희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장일준에게 들러붙어 그 덕을 보거나 피를 빨아먹으려는 세력이 어찌 처남 조상진뿐이겟습니까? 수많은 희생을 딛고 그 자리에 섰으니, 이제는 그 힘을 이용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 장일준의 원래 목표입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날파리가 몰려들어 그의 앞길을 막고 시야를 흐리게 합니다. 장일준은 현재 수족을 모두 잃었기에 보호막조차 없습니다. 이토록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새로운 동지를 만들고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방해하는 세력이 아무리 많다 해도 초심을 잃지 말고 굳건히 나아가야 합니다. 초심을 잃고 권력의 달콤함에 취한다면, 꿈을 향해 달려 온 지금까지의 희생과 노력은 아무 소용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승리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시작일 뿐, 결코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했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다고 이 나라가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고, 정치인은 기득권을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는 어쩌면 대통령이 되어서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거대한 벽에 부딪혀 그가 꿈꾸던 것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승리하기 위해 벌였던 그 고단한 싸움을 여기 기록으로 남겨, 그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한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고 목적과 수단을 뒤바꾸어, 그 뜨거운 권력 의지로 그는 무엇을 하려 했던가? 그는 왜 그리도 힘든 길을 가야 했던가?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아들 유민기가 제작한 선거 다큐멘터리를 보며 장일준은 눈물을 흘립니다. 나직한 아들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나레이션이 심금을 울립니다. 그토록 원하던 청와대의 꼭대기 자리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장일준의 모습에서 '프레지던트'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원래는 시즌2와 시즌3까지 기획해서 대통령 장일준의 정치하는 모습과 임기 후의 모습까지 다루려 했다는데, 시청률이 워낙 안 좋게 나와서 제작될 가능성이 희박하겠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진짜 이야기는 다루지도 못하고 문 열자마자 끝나버린 셈이에요.


그러나 이토록 현실적이고 진지한 의문을 던져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유치할 만큼 선악구도가 분명하고, 나름 정치드라마를 표방했던 '대물'은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처럼 오글거리는 원칙만을 주절거렸지요. 높았던 시청률이 말해 주듯, 많은 사람들은 그 단순한 환타지에 열광했습니다.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이 복잡하고 갑갑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토록 현실적인 드라마를 만들다니 그 시도와 용기가 매우 가상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에게 던져진 그 진지한 질문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군요. 산다는 게 언제나 그렇듯,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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