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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트' 최수종과 홍요섭의 멋있는 전쟁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프레지던트

'프레지던트' 최수종과 홍요섭의 멋있는 전쟁

빛무리~ 2010. 12. 23.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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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드라마 '프레지던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는 사실입니다. 출연 분량이 많거나 적거나에 관계 없이 '프레지던트'의 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명확한 이유를 지녔습니다. 현재까지 이 드라마에서 개연성 없는 행동을 보이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오히려 너무 그렇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정통 정치드라마를 표방하는 '프레지던트'에는 적합한 인물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3회의 내용도 아주 알차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주인공 장일준(최수종)은 판단이 빠르고 현명한, 젊은 대선 후보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이 인물은 선악의 경계에 모호하게 걸쳐져 있기에 시청자로서도 그의 인품을 단정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그를 꺼려하는 이유도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지요. 박을섭 후보의 뒤통수를 쳐서 지지율을 하락시키고, 그 후폭풍으로 신희주(김정난) 후보마저 위기에 처하게 되자, 발빠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신희주와의 연대를 결성하는 장일준의 과감함과 기민함은 초반부터 빛을 발했습니다. 장일준은 결코 정석만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니며,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비열한 방식도 사용할 수 있는 정치꾼입니다. 다만 그 결과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대형사고가 터졌습니다. 분명히 장일준이 폐기처분하라고 명령했건만, 그의 아들 장성민은 김경모(홍요섭) 후보의 비리에 대한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고 언론사에 제보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장성민이 입수한 정보는 벌써 3년 전에 대대적 수사를 거쳐 무혐의로 처리된 일이었습니다. 장성민은 아직 끝나지 않은 대기업의 후계자 싸움에 휘말려 이용당했던 것이지요. 김경모는 자기를 향한 노골적 흑색선전에 분노했고, 이번 사건을 다각도로 철저히 조사할 것을 명령합니다. 제보자가 바로 장일준의 아들이었다는 것이 수사 과정 중에 밝혀지면, 장일준의 정치 생명은 곧바로 끝나버릴 위기였습니다.

조소희(하희라)는 친정의 재력을 이용해 관계자들의 입을 막는 방식으로 처리하려 합니다. 자기 아들 성민의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지만 않게 하면, 모든 일은 탈 없이 마무리될 거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장일준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김경모의 출판기념회에서 직접 그를 만나, 자기 아들의 실수였음을 솔직히 밝히고 정식으로 사과를 한 것이었습니다. 수백 개의 플래쉬가 터지는 앞에서 말이지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입을 열까봐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장일준이 정식으로 사과를 한 이상 김경모는 자기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그의 아들을 법적으로 고소하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장일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김경모를 향해 갑작스레 경제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미리 답변을 준비해 오지 않은 김경모는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에, 김경모는 말했지요. "나와 토론을 하자는 거라면, TV 토론 석상을 이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장일준은 거침없이 받아칩니다. "TV 토론을 꺼려하시지 않습니까?"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김경모는 현재 최고의 지지율을 얻고 있지만, 장일준이나 신희주에 비하면 언변에서 밀리기 때문에 되도록 TV 토론에 참여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 물러설 수 없게 된 김경모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TV 토론에 참여하겠습니다."

정말 놀라운 계책이었습니다. 아들의 실수로 인해 자칫 정치 생명이 끝나 버릴 위기에 처했던 장일준은, 김경모의 출판기념회에서 2발의 화살을 쏘아올렸습니다. 첫번째 화살은 스스로 작은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곪아터질 염려가 없도록 최선의 방어를 하였으며, 두번째 화살은 불시에 상대의 헛점을 찌름으로써 평정심을 무너뜨리고 상대가 지켜 오던 계책 하나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절묘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는 새로이 모실 주군을 찾아 기웃거리는 젊은 정치 컨설턴트 기수찬(김흥수)이 참석해 있었는데, 장일준의 눈부신 활약에 드디어 마음을 정한 듯 싶더군요. 이렇게 해서 장일준은 탐내던 인재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일거삼득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장일준의 현명한 선택을 칭송할 때 오직 한 사람만은 타오르는 분노를 금치 못합니다. 바로 그의 아내 조소희였습니다. "당신은 절대로 버려서는 안될 것을 버렸어! 성민이 입장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어야지. 전국민이 보는 뉴스에서 그 아이는 범죄자가 되어 버렸어. 학교에서든 길거리에서든 그 아이를 아는 사람들은 다 뒤에서 수군댈거야. 오늘 이 일은 평생 꼬리처럼 성민이 뒤를 따라다닐 거란 말이야!"

약간 오버스럽긴 했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겨우 23살의 나이에 남에게 속아서 아버지를 돕자고 벌인 실수일 뿐인데, 그게 뭐 죽을 죄라고 평생 꼬리처럼 따라다니기야 할까마는, 어쨌든 장성민의 입장에서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된 것은 사실이니까요.


외부에서는 그토록 용의주도한 장일준이 왜 아내 앞에서는 요령있게 말을 못 했던 걸까요? 그 자리에서 부드럽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모두 잊혀질 일이야. 성민이의 앞날에도 지장 없을 거야." 라고 대답했다면 조소희의 분노를 많이 잠재울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러나 장일준은 아들 성민에 대해 아무런 배려심도 없는 것처럼 냉혹하게 소리칩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 그리고 남자라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해!"

"그래도 당신 아들이야! 당신을 위해서 한 일이야. 어떻게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하나뿐인 아들 인생을 망가뜨려?" 조소희의 말에 장일준은 다시 차갑게 대답합니다. "그 정도로 망가질 인생이면 그것도 제 운명이야!" 같은 말을 해도 어쩌면 저렇게 밉게 할까요? "그 정도로 인생 망가지지 않아. 걱정마." 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장일준의 이러한 반응은 결국 조소희의 발톱을 세우게 합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의미심장하게 남편을 노려보며 묻는 조소희의 말 속에는, 장일준의 숨겨진 아들 유민기(제이)의 존재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주인공 장일준의 종횡무진 대활약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에 필적할만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연이 있었으니 바로 김경모 역의 홍요섭이었습니다. 김경모는 여당의 경선이 마무리될 때까지 장일준의 최대 적수인데, 최수종과 홍요섭의 투샷은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명품 연기의 대결이었어요. 최수종이 야심만만하고 패기와 재치가 넘치는 젊은 도전자의 이미지를 구현한다면, 홍요섭은 보다 후덕한 인품과 연륜을 갖춘 1인자의 여유를 표현하더군요. 기품이 넘치는 얼굴과 목소리가 김경모 역할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출판기념회에서 장일준이 한바탕 휘젓고 간 이후, 참모 백찬기(김규철)는 절대 장일준의 아들을 가볍게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간곡히 김경모에게 조언합니다. 장일준의 목적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했던 것이지요. 사실 김경모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공식 석상에서 갑작스레 당황스런 사과를 받은 데다가, 그 직후에 기습 공격까지 받았으니 충분히 불쾌하고 화가 났을 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김경모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합니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장일준 그 친구가 마음에 들어. 내게 부족한 점을 많이 갖고 있고, 똑똑하고 야심도 있지. 우리 당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야... 그 친구는 내 정부에서 첫 국무총리가 될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무 날 세우지 말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은 자기에게 독화살을 겨누고 있는 적군임에 분명하건만, 커다란 날개를 펼쳐 적군까지 감싸안으려 하는 김경모의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김경모는 머지않아 장일준에게 생각지도 않은 패배를 당하고 물러나야 할 운명이겠지만, 되도록이면 이 두 남자의 멋진 전쟁을 오랫동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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