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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어머니, 그들에겐 너무 잔인한 이름 본문

종영 드라마 리뷰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크리스마스에..' 어머니, 그들에겐 너무 잔인한 이름

빛무리~ 2009.12.10 12:53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의 남녀 주인공들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습니다. 누군가 그 구멍 안을 들여다본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깊이에 온 몸을 떨게 될 것입니다. 검게 벌어진 상처... 좀처럼 아물지 않는, 어쩌면 그들의 인생 끝까지 따라다닐 그 깊은 상처의 구멍을 낸 사람은 바로 그들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 남들에겐 포근한 그 이름이, 차강진(고수)과 한지완(한예슬)에게는 쓰라린 이름입니다. '미남이시네요'의 모화란을 보며 그 '나쁜 어머니'의 모습에 경악한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강진의 어머니와 지완의 어머니는 어느 면에서 모화란보다 더 지독하게 나쁜 어머니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이고, 어머니의 사랑은 인격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해주고, 어머니와의 추억은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 역할을 해주지 못하게 되면 아이들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립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아이들은 행복을 갈망하지만, 그들이 애써 붙잡은 행복은 모래알처럼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 버립니다.


강진의 어머니, 차춘희 (조민수)


작부의 딸로 태어나, 절대로 엄마같이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거듭하며 소녀시절을 보냈으나, 첫사랑을 빼앗기면서 그녀는 자기의 인생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모든 행복을 포기했으나 죽지도 못하고, 그녀는 어미의 뒤를 따라 작부가 되었습니다. 어쩌자고 아비가 다른 자식을 둘이나 낳아 주렁주렁 데리고 다니면서 술을 팔고 웃음을 팔았습니다.

20년만에, 망가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망가진 모습으로 첫사랑 앞에 다시 나타나 그의 마음을 괴롭히려는 오기는 또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평생 잊지 못한 그 사랑 곁에서 이젠 좀 쉬고 싶었던 것인지, 아비가 다른 두 아들을 데리고 다시 산청을 찾은 그녀의 눈에 너무도 행복해 보이는 첫사랑과 그 가족들이 보입니다. 한준수(천호진)는 춘희를 버리고도 불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곁에는 예전처럼 가증스런 미소를 짓고 있는 영숙이가 보이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뒤에 세워두고 찍은 4인 가족사진은 완벽함 그 자체였습니다. 사진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 사진을 본 춘희는 가차없이 염산을 뿌려 망가뜨립니다.


자기를 버린 그가 행복한 꼴을 죽어도 보기 싫었던 춘희, 그녀는 결과적으로 그 가정을 망가뜨리는 데에 성공합니다. 그녀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또 그녀의 아들 강진이 의도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준수의 딸 지완이가 강진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강물에 빠뜨려 잃어버린 강진의 소중한 펜던트를 찾아주려 했고, 그런 여동생을 위해 대신 강물에 들어갔던 준수의 아들 지용이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에 충격받은 지완이는 집을 나가 버립니다. 하루아침에 아들은 죽고 딸은 가출했으니, 다복했던 준수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준수를 향한 춘희의 갈증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준수가 보는 앞에서 길바닥에 버티고 누운 채 폭력배에게 마구 대들다가 처참하게 얻어맞고 걷어채입니다. "나를 봐. 당신이 버린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어." 준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서려있는 집착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잘난 큰아들 강진이는 춘희에게 있어 자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버지같은 존재였습니다. 산청에 돌아와서 그녀가 다시 물장사를 시작하자 아들이 소리칩니다. "순대국집 한다고 안 했어? 여기로 이사오면 제대로 살 거라고 했잖아!" 그러자 어미가 대답합니다. "그러려고 했는데 제대로 살기가 싫어. 제대로 살고 싶지가 않아."


그렇게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춘희는 거리낌 없이 온갖 남자들에게 교태를 부리며 거리의 여자로 살아갑니다. 준수네 가족사진에 염산을 뿌린 일로 경찰서에 잡혀가게 되자 자기가 안 그랬다고 잡아떼다가, 다짜고짜 자기 아들 강진이를 불러달라며 난리를 칩니다. "공부 잘하는 우리 아들, 앞으로 S대 법대에 갈 아인데, 그애만 오면 당신들 무고죄로 모두 다 콩밥 먹일 거니까! 산청 고등학교... 몇 학년 몇 반인지는 모르겠고, 하여튼 산청 고등학교에 전화해서 우리 아들 차강진이 좀 불러 줘요, 빨리!"

철없는 어미는 아들이 몇 학년 몇 반인지도 모르면서 저렇게 기대려고만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강진은 그렇게 어미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어미를 보호하면서 자라났습니다. 공부도 잘 하고 성실한 그가 폭력으로 인해 수차례나 정학을 당하고 전학을 가야 했던 이유도 어미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눈앞에서 어미의 옷고름을 풀며 희롱하는 파렴치한을 그냥 보아 넘기기에는, 아들은 어미를 너무 사랑했던 것이지요.


소년은 어느 새 어른이 되었지만, 어미는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습니다. 밤이면 홀로 술을 마시며 아들에게 전화하여 신세한탄을 늘어놓고, 아들은 그런 어미를 달래려 전화기에 대고 노래를 불러 줍니다.

아들은 어미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합니다. 자기를 사랑한다고 매달리는 여자가 생기면, 우선 그녀의 손목을 잡고 어미를 보여주러 산청으로 갑니다. 오십줄의 나이에 짙은 화장을 하고 머리에 꽃을 꽂고 온갖 남정네들에게 교태를 부리는 춘희가 그의 어미입니다. 춘희를 보고도 강진의 손을 놓고 달아나지 않은 여자는 이제껏 없었습니다.


아니, 오래 전에 꼭 한 명 있었습니다. 소년 강진을 좋아한다고 당돌하게 말하던 소녀 지완... 스스럼 없이 강진의 어머니 춘희에게도 먼저 다가서서 천연스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던 지완이가 있었지요. 그 아이 이후로 그런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 동안 강진은 지완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어머니까지도 끌어안아 줄 수 있는 유일한 여자... 어미 때문에 생긴 가슴의 구멍까지도 마음놓고 보여줄 수 있는 여자...  그래서 그가 마음놓고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 그는 지완이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세월의 강을 건너, 그의 눈앞에 그녀가 서 있습니다.


지완의 어머니, 서영숙 (김도연)


그녀는 명성 있는 한의원 집의 귀한 외동딸이었는데, 그녀가 사랑하는 한준수는 작부의 딸 차춘희를 사랑했습니다.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준수는 춘희를 버리고 자기 곁에 남았으나, 사랑 없이 시작된 결혼생활이기에 영숙은 늘 불안했습니다. 그녀의 불안을 잠재워 준 것은 바로 준수를 꼭 빼닮은 모습으로 태어난 아들 지용이었습니다. 지용이만 있으면 준수는 결코 그녀 곁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춘희가 20년만에 돌아왔지만, 별로 두렵지 않았습니다. 든든한 아들 지용이가 있으니까요. 비록 자기에 대한 준수의 사랑을 신뢰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잘난 자식을 두었는데 어떻게 흔들릴 수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준수가 나를 버릴 수는 있지만, 그리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 없는 못난 딸 지완이를 버릴 수는 있지만, 그 자랑스런 아들 지용이를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지용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유일한 희망의 끈으로 붙잡고 있던 지용이가 떠나 버렸습니다. 춘희 계집애가 지금도 곁에서 호시탐탐 준수를 노리고 있는데, 이제 영숙에게는 그 뱀 같은 시선을 막아낼 방패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도 슬픔이려니와, 남편 준수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녀는 미쳐갑니다. 준수에 대한 영숙의 집착 또한 춘희 못지 않게 오싹합니다.

지용이가 죽은 원인 제공을 지완이가 했다는 것을 영숙이 알고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흰 천으로 덮여 멀어져가는 지용의 시신을 바라보고 오열하며, 그녀는 해서는 안될 말을 입에 담습니다. "지용이는 안 돼... 차라리 지완이를 데려가시지... 차라리 지완이를 데려가시지..."


어미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었습니다. 그 순간 서영숙은 모화란보다도 더 나쁜 어미가 되었습니다. 자식을 버리는 어미보다, 곁에 두고 사랑하지 않는 어미가 훨씬 더 나쁘거든요. 자식을 비교하는 것도 나쁘지만, 살아남은 자식 앞에서 차라리 네가 죽는 것이 더 나았겠다고 말하는 어미는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어미입니다. 오빠가 자기 때문에 죽어서 가뜩이나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어미가 저렇게 나오니 딸자식이 어찌 한집에 살 수가 있겠습니까?

지용이가 살아있을 때에도, 영숙은 지완이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의좋은 남매였던 지용과 지완은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 둘이 한의원을 이어받자고... 지용이는 의대에 가고, 지완이는 한의대에 가서... 나중에 산청에 양한방 병원을 지어서 어려운 사람들 무료로 진료해주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어린 남매의 그 예쁜 약속을 보면서, 어미인 영숙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완이한테 바랠 걸 바래라. 고등학교나 무사히 졸업하면 다행이다. 지완이같은 어리버리가 한의사 되면 사람 여럿 죽인다."


이렇게 대놓고 어린 딸을 비웃던 엄마가 영숙이었습니다. 사랑하던 오빠의 죽음 앞에서 지완은 그 약속을 떠올립니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자기를 비웃던 엄마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지완은 애써 고개를 저으며 "기억나지 않아" 하고 되뇌입니다. 이미 뚫려버린 가슴이지만, 애써 그 상처를 외면하려 합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혼자 검정고시를 치르고 한의대에 진학한 것은 오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미의 비웃음을 자꾸 기억하면 오빠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테니까, 그녀는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뚫린 가슴으로 버티며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춥습니다. 가슴의 구멍을 메워줄 사랑을 갈망하던 지완이는 문득 다가온 남자 박태준(송종호)의 손을 덥석 잡아 버립니다. 자기를 사랑하는지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애정에 굶주린 그녀는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용당한 것만 같습니다.


그녀가 원치도 않던 약혼식을 하자며 고집부리더니, 정작 드레스를 입고 기다리는 그녀 앞에 태준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옛 애인 이우정(선우선)에게로 달려가버렸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정에게 보여주기 위해 태준이 벌인 쇼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지완이는 아무래도 못 먹을 음식을 허겁지겁 먹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더욱 불행해질 찰나, 그녀 앞에 오래 전의 그 소년, 차강진이 다시 나타납니다. 어머니로 인해 가슴에 뚫린 구멍을 끌어안고 살아오던 소년과 소녀는 이제 서로의 사랑으로 그 상처 구멍을 메워주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벌써부터 가슴이 아파옵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과연 진정한 사랑이 올까요? 이 드라마, 심상치가 않습니다. 너무 지독한 아픔을 속에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 왠지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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