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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가슴 저린 문노의 최후, 그리고 비담...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선덕여왕, 가슴 저린 문노의 최후, 그리고 비담...

빛무리~ 2009. 9. 29.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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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번에 "문노가 제자 비담에게 주는 편지"를 작성했으니, 오늘은 "비담이 스승 문노께 드리는 편지"를 작성하여, 아버지같은 스승을 마지막으로 떠나 보내는 비담의 절절한 심경을 담아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판에 염종을 따라가는 비담의 약간 뒤집어진 눈빛을 보니 도대체 이 녀석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짐작할 수가 없어서, 비담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려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답니다. 비담은 내력이 파란만장하고 상처가 많은 아이라는 점만은 확실하지만, 아직도 선악의 경계에서 격렬하게 흔들리는 녀석이라 오직 다이내믹할 뿐 종잡을 수가 없어요.

캐릭터와의 감정 일치에 실패한 관계로, '선덕여왕' 37회 리뷰는 편지 형식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 리뷰로 진행됩니다. 편지 시리즈를 기대하셨던 분들께는 급사과를 드립니다..;; 

문노가 비담의 얼굴을 쓰다듬던 저 장면은 제가 '선덕여왕' 37회의 베스트샷으로 지정한 화면입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평생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털어놓는 문노의 회한이 가슴 저리게 와 닿았습니다.


1. 유신과 덕만, 그 밋밋한 하모니

저는 이 메인 커플에게 도통 정이 가지 않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한번쯤은 짚어 주어야 할 것 같으니,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덕만은 애초에 유신과의 관계를 남녀에서 군신으로 변화시킨 장본인입니다. "내가 당신의 주인이 되면, 나는 당신을 장기판의 말처럼 다루어야 합니다." 이 말도 덕만이 유신에게 했던 것이구요.
공주가 되고 나서도 유신을 자기 남편으로 삼고자 하는 낌새가 별로 없었지요.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이제와서 "제 마음은 어쩌란 말입니까?"하면서 그 지겨운 눈물을 다시 쏟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꽤나 멋져 보이던 공주님이 다시 찌질해지려고 하는 중입니다. 그럴 거였으면 진작에 그쪽으로도 적극적으로 노력을 했어야지요.

유신은 덕만보다는 자기 캐릭터를 더 확고히 구축한 것 같습니다만, 자기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그 모습이 우직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교활해보여서 영 찜찜하고... 목표를 위해서는 여인에 대한 사랑을 자기 마음먹은 대로 싹둑 가위질하듯 잘라내 버릴 수 있는 그 무서운 결단이... 제가 여인이라서인지 좀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를 않네요. 그러나 공주가 비틀거리고 있으니 유신이라도 중심을 잡아야 하겠지요.
하여튼 하종의 딸 영모와 결혼하여 몸은 미실의 품에 기대게 되었으나, 여전히 마음은 덕만공주에게 충성을 다하게 된 김유신의 행보도 지켜볼만은 할 것 같습니다.


2. 문노와 비담, 너무 늦어버린 애틋함 

이 독특한 사제지간의 슬픈 이야기가 37회의 주된 골자였지요. 지난 회에서 문노가 자기에게 주겠다고 했던 그 대업, 그 꿈을 상징하는 책자(삼한지세)를 김유신에게 넘겨주겠다는 말을 엿듣고 비담은 완전 뒤집어졌습니다. 그때 분위기로 봐서는 스승에게 예고도 없이 그냥 혼자 뒤편에 숨어서 홱 비뚤어져 버릴 것만 같았는데, 오늘 그래도 버젓이 스승 앞에 나타나 당당하게 요구하고 당당하게 대드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대견했답니다. 사실 비담은 스승에게 요구할만한 자격이 있거든요. 그들의 긴밀한 관계로 봐서도 그렇고, 더구나 이미 오래전에 스승이 친히 약속했던 일이니까요.


"너는 역시 손잡이 없는 칼이로구나. 아무도 네 손잡이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내가 그 칼을 꺾어버리는 수밖에... 너는 그런 놈이니까. 미실처럼" 이라고 문노가 말할 때, 솔직히 저는 문노에게 무지막지하게 실망했습니다. 핏덩이 때부터 품에 안아 자식처럼 키워 온 제자에게 저게 스승으로서 할 수 있는 말입니까?

"자격을 만들어 주셔야 할 분은 스승님이 아니셨습니까? 스승은 가르치는 사람이잖습니까?" 그렇죠. 비담의 말이 옳습니다. 그런데도 문노는 꽉 막힌 소리만 합니다.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만 안단 말이냐?"

언뜻 생각하면 맞는 말 같지만, 아닙니다. 충분히 모를 수 있습니다. '살인이 나쁜 것' 이라는 명제를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규범이기도 합니다. 배워서 알고 익히는 것이며, 그 후에는 의지적으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당연한 것을 가르쳐주지도 않고서 무슨 스승의 자격이 있다고 모진 소리나 퍼붓고 있는 문노는 그 순간 굉장히 하찮은 인간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저 말들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토로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런 말다툼 끝에 이어진
사제지간의 마지막 결투... 그 무협활극 속에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든 독침 한 방을 맞고 시대의 인걸(人傑) 문노는 어이없이 숨을 거두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비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문노... 어쩌면 그는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몰라 가족들 사이에서마저 점점 외로워져 가는 이 시대의 가장들처럼, 그런 무뚝뚝한 남자였던 것도 같습니다. "이제서야 너의 마음을 알았는데, 너무 늦어버렸구나" 라고 문노가 한탄할 때 제 마음도 너무 아팠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기를 그렇게 기원했건만, 결국은 늦어버렸으니까요.

제게 있어 개인적으로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제가 문노에게 감정이입하여 그의 마음을 추측하고 써 내려갔던 "문노의 편지"가 결과적으로 아주 정확히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비담에게 퍼부었던 모진 말들이 문노의 진심이라고 밝혀졌다면 제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작성했던 "문노의 편지"는 낙동강 오리알처럼 동동 뜨게 되었을 테니까요..^^;;

비담에게 있어 문노의 존재는 아주 최근까지도 '세상 모든 것'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버지이고 스승이고 인생의 모토이고 유일한 친구이고... 그랬겠지요. 그 외로운 아이에게 달리 누가 있었겠습니까? 책을 유신이 아닌 자기에게 주어야 한다고 그렇게 떼를 쓴 것도 실은 욕심 때문이 아니라 스승에게 외면받는 것이 너무도 서러워서 그랬던 것이지요.


이제 그런 스승 문노가 눈앞에서 허무하게 숨을 거둡니다. 충격에 휩싸인 비담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펼치게 될지는 감히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종국에 가서는 덕만을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되겠지만 그때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비록 식상하더라도 스승의 원수를 좀 시원스레 갚았으면 했는데,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더라구요. 하긴 역사적으로 비담과 염종이 나중에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는데, 문노를 살해한 원흉인 염종을 지금 해치워버리면 너무 대놓고 역사왜곡을 하게 되겠지요. 그래도... 좀 아쉬웠더랍니다.


염종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난 책 따위엔 신경 안 써. 못 찾아도 그만이야. 그냥 죽이고 가지 뭐" 라고 말할 때는 정말 통쾌하고 멋있었는데, 끝까지 그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그 뺀질뺀질한 원수놈의 말발에 휘둘려서 책을 받는답시고 쫄래쫄래 따라가는 모양새를 보니... 가슴이 답답하더라구요.

저는 비담이라는 캐릭터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데, 그 아이가 스승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절절한 유언을 들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저렇게 쉽게 악인에게 놀아나며 그와 손을 잡게 될 것 같은 기색이 보이니까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더 두고봐야 알 일이긴 하지만요.


3. 속을 알 수 없는 이 녀석, 춘추(春秋)

김춘추, 아직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제법 돈쥬앙 분위기를 풍기며 유흥을 즐기고 돌아다니는데, 저로서는 그 하는 짓들이 마냥 우습고 깜찍하고 귀여울 뿐입니다. 춘추(유승호)와 보량(박은빈)의 만남도 "소년, 소녀를 만나다" 식으로 풋풋하고 예쁘게만 느껴졌어요. 극중에서는 순수와는 거리가 멀게 정략결혼의 음모(?)가 시작되고 있는 판국이었는데도 말이지요.


춘추가 김유신을 상대하며 어쩌면 죽은 엄마 천명공주가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역시 핏줄은 못 속인다 싶었지요. 천명공주는 차분하면서도 심기가 깊은 인물이었으니 춘추가 왜 닮지 않았겠어요? 지금 저렇게 허랑거리고 다니는 이유는 첫째, 자기 속마음을 감추기 위함이고 둘째,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어서 국내 사정에 어두우니 여기저기 둘러보고 다니려는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생각지도 않은 염종의 거처에 떡하니 앉아서 '삼한지세'를 찢어 공을 접어 놀고 있는 모습은 약간 충격이었어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하여튼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예요. 비담 못지않게 춘추 때문에도 이어지는 드라마의 진행이 더욱 궁금해지고 있어요.

*******

다소 장황스러웠지만 역시 당분간 계속해서 줄기차게 흥미를 끄는 녀석들은 누님들의 완소캐릭터인 비담과 춘추가 되겠습니다. 도대체 메인 쪽으로는 관심이 안 가고 서브 쪽으로만 끌리니 이것도 바람직한 상황은 아닌지 모르겠으나, 시간이 흘러 불안하게 흔들리는 이 두 녀석이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면 그때는 메인 파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겠죠.

그러나 그때가 되면 이 녀석들의 강렬한 매력은 한풀 꺾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특히 비담이라는 아이는 그 정돈되지 않는 불안함과 종잡을 수 없는 흔들림 자체에서 뿜어져나오는 포스가 엄청나거든요.

그래도 어떻게든 자리를 잡기는 해야 할텐데, 과연 기존의 자유로운 매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어떤 식으로 자리를 잡아갈지 그들의 자아찾기 과정이 자못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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