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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백성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선덕여왕, 백성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다

빛무리~ 2009. 10. 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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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오늘 '천명공주의 편지'를 다듬어 올릴 생각이었으나, 어제 예고편을 보니 오늘 방송분에서 춘추 공자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 같더군요. 아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나서 어머니의 편지를 다듬는 편이 낫겠다 싶어 내일로 미루었습니다. 하여 오늘은 어제 39회 방송을 보며 가슴 깊이 느꼈던 서러움에 대해 가볍게 풀어 볼까 합니다.


어제의 주인공은 단연 덕만공주였습니다. 물론 미실이 차지하는 비중도 적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덕만공주가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충격적인 결단으로써 그녀의 존재감은 기존의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손에 피를 한 방울도 묻히지 않고 왕이 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제 그 하얗기만 하던 손에 스스로 피를 묻혔으니, 그녀는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진 것이며, 정치가로서의 길에 한발짝 더 깊숙이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무조건 너그럽기만 한 정치가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안타까운 점은 덕만공주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있어, 적대관계에 있는 미실의 도움을 너무 크게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 미실은 덕만공주의 곁에 있는 제갈량이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미실의 입장에서는 덕만공주를 아직 하룻강아지라고만 생각하기에 별다른 두려움도 없이 살살 재료를 던져주며 "이걸 가지고 네가 어떻게 요리하는지 내게 보여주렴" 하면서 웃고 있다가 의외의 뒤통수를 맞고 망연자실하는 모습입니다. 미실은 그 동안 승승장구만 해왔던 터라 지나친 자만심에 빠져 있는 캐릭터이니 그럴만도 하다 싶습니다.

그러나 덕만공주가 한번도 아니고 두번, 세번 계속해서 미실에게 조언을 구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난 후 미실의 대답에서 실마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역이용하여 미실을 치는 이런 방식이 반복되는 것은, 상당히 모양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덕만공주의 곁에는 왜 '머리 쓰는 신하' 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일까요? 죄다 '몸 쓰는 신하' 뿐이니, 정작 머리는 주군인 공주 자신이 써야 하는데 그나마 연륜이 부족해서인지 미실에게 계속 딸리는 상황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어쨌든 '미실의 조언'을 통해 자기의 새로운 행동 방식을 결정한 덕만공주는 백성들을 무조건 너그럽게 대해주고 베풀어 주기만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과감히 자기 손으로 배신자들을 처단합니다. 공주의 하얀 얼굴에 튄 핏방울은 큰 충격이었지요.

배은망덕하게도 공주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황무지 개간을 조건으로 내어준 곡식과 농기구만을 챙겨서 달아나버린 백성들의 소행은 그야말로 괘씸하기 이를데 없었으나, 막상 그들의 변명을 들어보니 수긍이 가기도 했습니다. 이제껏 그들에게 털끝만큼이라도 '신뢰감'을 심어준 관리들은 전무했기 때문에, 공주의 말을 믿지 못한 백성들만 탓하기도 딱한 상황이었습니다.


쥐는 고양이를 보면 달아나는 것이 당연하지요. 이제껏 고양이를 만나면 잡아먹히는 것 외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는데, 갑자기 예쁘장한 고양이가 나타나서 "나는 다른 고양이와 달라. 너희에게 잘해 줄 거야." 하고 배시시 웃는다고 그 말을 믿을 쥐는 없을 겁니다. 진심을 말했던 고양이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쥐의 입장에서는 달아나는 게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백성들을 괘씸하다 여겼으나, 단순한 몇 마디로 하소연하는 그들의 변명을 듣고 나서는 삽시간에 백성들 편으로 마음이 돌아섰습니다.

그렇다고 덕만공주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껍질이 깨어져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희생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신뢰의 초석을 쌓기 위해서라도 배신자는 처단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다 알고 있는데도, 저는 울고 있는 덕만공주보다 처참하게 피를 흩뿌리며 쓰러져 죽어간 그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제가 일상 생활 중에서 자주 되뇌이는 명언(?)입니다. 워낙 유명한 말이니 모두 들어보신 적은 있겠지요? 그런데 실제로 저렇게 살려고 노력해 보신 분이 계십니까? 지난 날의 상처들은 모두 없었던 일로 하고, 이제 새로 태어난 듯 깨끗한 마음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대책없는 순수한 믿음으로 다시 한 번 사랑을 해보자... 이렇게 결심하고 노력해 보신 분이 계십니까? 만약 계시다면... 그게 잘 되던가요?

저는 잘 안 되더군요. 솔직히 지금 생각에는 죽을 때까지 저렇게는 안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지우려 노력해도 상처는 남아 있습니다. 어떤 것은 통증 없는 흉터로 남아 있지만, 어떤 것은 아직도 살짝만 건드리면 온몸을 전율하도록 끔찍한 통증을 몰고 오는 상처도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가슴에 깊게 새겨진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배신에 의한 상처는 썩어들어가고 부패하여 징그러운 흔적을 남기지요.
쉽게 믿고, 쉽게 사랑하고, 쉽게 웃던 날들이 지나가고 이제는 누군가를 믿는 일, 사랑하는 일, 마음 열고 웃는 일이 모두 힘겨워집니다. 점점 솔직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마음속으로는 "너를 믿을 수 없어" 라고 말하면서 겉으로는 "그럼, 너를 믿지" 라고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사회이니까요.

약속을 지키던 사람도 점점 약속을 가벼이 여기게 됩니다. 나 홀로 지켜봐야 손해라는 것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체험했기 때문이지요. 믿음이 사라지면 소망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믿을 수 없다면 소망은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덕만공주가 "나는 너희에게 땅을 주려고 한다" 라고 말할 때, 그 말을 믿을 수 있다면 백성들도 "내 땅을 가질 수 있다" 는 소망을 품게 될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소망은 일어나지도 않는 것이지요. 상처투성이가 되어 메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버린 것이 백성의 마음입니다. 가엾은 사람들...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덕만공주는 다스리는 자로서 그들을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하겠지만,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잃어버린 믿음을 되찾고, 말라버린 소망의 샘물을 다시 솟아오르게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할까요? 결코 쉽게 답이 나올 리 없는 이 절박한 물음에, 아픈 가슴을 부여안고 잠들었던 어젯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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