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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발견' 무신경한 동물 학대, 최악의 자충수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연애의 발견

'연애의 발견' 무신경한 동물 학대, 최악의 자충수

빛무리~ 2014. 8. 19.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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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미가 없지는 않다. 기본 구도는 식상한 4각관계지만 세부적 설정과 에피소드가 참신해서 식상한 느낌을 없애준다. 특히 현재 남자친구인 남하진(성준)의 맞선 자리에 몰래 쫓아 나갔던 한여름(정유미)이 하필 그 자리에서 전 남친 강태하(에릭)과 마주쳤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쫄깃한 찹쌀떡처럼 맛있었다. 난데없이 전 여친에게 물벼락까지 맞고 당혹스러울만한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며 적절한 말들로 받아쳐 주는 강태하의 센스가 압권이었다. 그 와중에 "보고 싶었어!" 하고 깨알같은 진심을 털어놓을 때는 또 어찌나 콩닥거리던지! 강태하의 캐릭터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잘 만들어져서, 만약 이 드라마가 좋은 시청률을 낼 수 있다면 에릭 문정혁의 연기 인생에는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은근 마마보이 기질이 있어 보이는 남하진은 완벽한 외모와 스펙을 갖춘 로맨틱 가이 캐릭터지만 첫회부터 강태하에게 KO패하고 말았다. 아무리 완벽해도 마마보이는 아닌 것이, 엄마가 선보기를 강요한다는 이유로 여친 몰래 맞선이나 보고 다니는 놈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더욱이 그 엄마가 대놓고 아들의 연인을 무시하며 구박하는 인물인데야, 아무리 잘생긴 의사에 돈 많고 매너가 좋다 해도 그건 꽝이다. 한여름은 로코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밝은 성격에 약간 푼수기 있는 여주인공인데, 특별한 매력은 역시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른 ×이 채가기 전에 얼른 남하진을 붙잡아야 하는데 빚이 많고 돈이 없어서 시집을 못 간다며 혼자 술타령을 하던 한여름은 바뀐 휴대폰을 빌미로 강태하와 다시 만나게 된다. 

 

한여름을 잊지 못하고 있던 강태하는 취한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데, 티격태격하면서도 묘한 분위기에 휩쓸린 두 사람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 하필 다음날은 여름의 생일이어서, 아침 일찍 꽃다발을 들고 집 앞으로 찾아온 남하진은 그녀의 수상한 외박을 눈치채고 마는데... 나는 정현정 작가의 최근작인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를 퍽이나 재미있게 보았던 터라 살짝 기대 심리가 있었는데, '연애의 발견'도 재미는 있지만 '로필3' 보다는 좀 못한 작품이 될 것 같다. 김소연, 성준, 남궁민 등 '로필3'의 주인공들은 모두 매력이 철철 흘러 넘쳤는데, 강태하를 제외한 이쪽 주인공들은 너무 허술하고 찌질하다. 오히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느낌은 들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은 현실감보다도 끌리는 매력이 우선이니까.

 

 

지루한 느낌 없이 꽤나 재미있게 시청했는데도 '연애의 발견'의 앞날이 썩 밝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캐릭터의 무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무신경한 동물 학대 장면을 태연히 방송에 내보냄으로써 많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준 이유가 더 크다. 작가와 PD, 각종 스태프와 배우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단 한 명도 그 부분에 치명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 토끼는 기본적으로 목욕을 시키면 안 되는 동물이다. 스스로 그루밍을 해서 자기 몸을 깨끗이 하기 때문에 목욕을 시킬 필요가 없고, 태생적으로 물이 몸에 닿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하며, 귀 등에 물이 들어갔을 때는 건강에 몹시 해롭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토끼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자칫하면 죽을 수 있어서 한 번의 목욕도 치명적이다.

 

나도 예전에 수년간 하얀 토끼를 키운 적이 있었다. 대소변에서는 당연히 냄새가 나지만 토끼의 몸에서는 씻기지 않아도 냄새가 나지 않았다. 토끼 화장실 청소를 자주 해 주고, 가끔씩 응가나 쉬야가 엉덩이쪽에 묻었을 때는 긴 털을 살짝 잘라주거나 물티슈로 가볍게 닦아주면 그뿐이었다. 나중엔 너무 심한 알레르기 때문에 어느 초등학교 내부의 작은 동물원으로 보내고 말았지만, 깊은 정이 들었던 터라 못내 가슴아파 울기도 많이 했었다. '연애의 발견' 1회에 느닷없이 등장한 하얀 토끼는 내가 키우던 그 녀석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스토리 전개에 반드시 토끼가 필요했던 것도 아닌데 왜 굳이 토끼의 특성을 공부하지도 않고, 생명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지키지 않은 채 살아있는 토끼를 소품처럼 등장시켰을까? 술에 취해서 길바닥에 구토를 하던 한여름의 눈앞에 갑자기 어디선가 정말 생뚱맞게 토끼 한 마리가 나타났다. 신기하다며 덥석 토끼를 집어든 한여름은 그대로 강태하의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한다. 강태하는 동물이 싫다면서 질색을 하는데, 한여름은 함께 사는 친구 솔이의 알레르기 때문에 키울 수 없다면서 막무가내로 강태하에게 토끼를 떠맡기려 한다. 서로 "네가 키워!" 하면서 아기 토끼를 전혀 조심성 없이 물건처럼 거칠게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데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네가 키워. 목욕은 내가 시켜주고 갈게." 한여름이 말하는 순간,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욕이라니? 설마 했는데 한여름은 곧장 욕실로 들어가 한 손에는 아기 토끼를 들고 다른 손에는 샤워기를 잡은 채,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폭포수같은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온 몸이 흠뻑 젖어버린 아기 토끼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데, 그 다음 순간에는 토끼가 손을 빠져나가면 한여름이 놀라서 펄쩍 뛰는 설정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카메라에 잡힌 모습은 분명 여배우 정유미가 손에 들고 있던 토끼를 욕실 바닥에 휙 내팽개치는 장면이었다. 다행히 머리 쪽으로 떨어지지 않고 네 발로 착지하긴 했으나, 욕실 한 구석으로 도망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기 토끼의 모습은 너무도 애처로웠다.

 

 

그 이후로는 한여름과 강태하가 욕실 안에서 이리저리 샤워기를 틀어대며 어떤 난리를 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애를 하건 싸움을 하건 너희 둘이서 하면 되지, 왜 가엾은 토끼는 데려다가 물건처럼 다루면서 제멋대로 학대하느냐 묻고 싶었다. 나만 그렇게 느꼈는가 해서 방송 후 '연애의 발견' 홈피의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더니, 역시 토끼 목욕에 관한 문제로 수많은 비난이 오가고 있었다. 한 번도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써 본 적이 없는데 일부러 가입해서 글 남긴다는 사람도 적잖이 보였다. 그들은 흠뻑 젖고 내팽개쳐진 아기 토끼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혹시 죽지나 않았는지를 애타게 염려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 때문에 정말 토끼를 목욕시켜도 되는 줄로 잘못 알고 토끼를 목욕시키는 사람들이 발생할까봐 더욱 염려하고 있었다.

 

1회부터 버젓이 방송된 동물 학대 장면은 이제 시작하는 드라마에 최악의 자충수가 되었다. (동물 학대 논란이 일어나면 반드시 '식용' 동물과 비교하며 반박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하는데, 육류 섭취와 동물 학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한여름은 동물을 싫어한다는 강태하에게 억지로 토끼를 안겨주며 "매정한 놈, 너는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이런 식으로 말하던데, 나름대로는 한여름과 강태하의 성격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도 같다. 토끼를 목욕시키는 과정에서 둘 다 흠뻑 젖었으니 닦아주는 과정에서 은근한 시선이 오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효과를 위해 반드시 토끼를 이용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목욕시켜도 괜찮은 강아지였다면 별 문제 없었을 수 있다.) 제작진의 어처구니 없는 무신경과 부주의함이 통한스러울 뿐 아니라, 작고 약한 생명을 너무 거친 손길로 막 다룬 배우들에게도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부디 이런 패착을 다시는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덧붙이기 : 제작진의 해명 기사(기사 원문 링크)가 떴다. "토끼를 물로 목욕을 시키면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한 장면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촬영을 했다. 그 날 촬영을 했던 토끼도 무사하다. 2회에서는 강태하(문정혁)가 토끼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수의사로부터 '왜 토끼를 물로 목욕 시켰느냐'고 혼나는 장면도 등장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알면서 의도적으로 그랬다면 몰라서 그런 것보다도 더욱 명백한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 목욕시키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목욕시키는 건 당최 어떻게 하는 건가??? 독약도 철저히 준비하고 먹으면 독약이 아니게 되는 건가? 지금 당장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일지 모르나, 물에 젖고 던져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아기 토끼가 앞으로도 계속 건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남주인공이 의사에게 혼나는 장면 하나가, 작은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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