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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발견' 한여름(정유미)은 정말 사랑스런 여자일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연애의 발견

'연애의 발견' 한여름(정유미)은 정말 사랑스런 여자일까?

빛무리~ 2014. 9. 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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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애의 발견'이 전파를 타기 시작한 이후 가장 뜨거운 화제를 일으킨 것은 여주인공 한여름(정유미)의 러블리한 매력이었다. 살아있는 아기 토끼를 소품처럼 함부로 다루는 바람에 동물 학대 논란도 제법 일었으나, 소수의 애묘인들을 제외하면 그 부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아주 컸다고는 보기 어렵다. '연애의 발견'이라는 키워드에 연관된 대부분의 기사들은 여주인공 한여름의 캐릭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것을 표현하는 배우 정유미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초반부터 한여름이라는 여자의 캐릭터가 전혀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실제인 듯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정유미의 연기는 칭찬할만했으나, 캐릭터 한여름에게는 도대체 무슨 장점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남주인공 강태하(에릭)와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하던 10년 전에는 산뜻하고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닌 22세 아가씨였다. 강태하와 5년 동안 연애를 하고, 그의 무덤덤함에 지쳐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한여름은 아직 때묻지 않은 27세의 순수한 여자였다. 하지만 다시 5년의 세월이 흘러 32세가 된 지금, 한여름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 곰 같은 여자보다는 여우 같은 여자가 훨씬 좋다고 세상 남자들은 말한다. 물론 여우 같은 여자가 순수하기까지 하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함이 사라진 상태에서 여우 같은 기질만 남았다면, 그런 여자 곁에 있는 남자의 운명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한여름의 여우 같은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은 매일 조금씩 피를 빨리며 말라 죽어가는 먹잇감처럼 느껴질 뿐이다.

 

하긴 대부분의 여자들이 '정말 좋은 남자'를 쉽게 알아보지 못하듯, 대부분의 남자들도 '정말 좋은 여자'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머릿속으로는 좋은 사람인 것을 알고 있더라도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여자들은 무뚝뚝하면서도 진실한 남자를 외면한 채 바람둥이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고, 수많은 남자들은 요령 없고 소박한 여자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채 꽃뱀의 살살 녹는 애교에 넘어간다. 어쩌면 상처받고 눈물짓게 될 줄을 뻔히 알면서도 나쁜 남자, 나쁜 여자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은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인류의 공통된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진짜 좋은 여자는 한여름이 아니라 그녀의 오랜 친구인 윤솔(김슬기) 같은 여자라고 할 수 있다. 나이 서른을 넘기고도 한 가닥 요령조차 피울 줄 모르는, 언제나 솔직하고 단순하고 열정적인 그녀가 나는 참 좋다. 그런 솔이의 짝은 아마도 오랫동안 곁을 지켜 온 도준호(윤현민)가 아닐까 싶은데, 나는 주인공 커플인 한여름-강태하보다 그 쪽 러브라인에 더욱 큰 관심과 호감을 갖고 있다. 그들은 남매처럼 친구처럼 지내 온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에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있었지만, 이제 윤정목(이승준)의 강력한 등장으로 잠들었던 연애 세포가 깨어나며 서로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될 것 같다.

 

한여름의 입장에서 좋게 생각해 본다면, 현재 그녀가 매우 혼란스런 상태임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년째 사귀고 있는 애인 남하진(성준)은 외모, 집안, 학벌, 직업에 성격과 나이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최고의 킹카다. 강태하처럼 깊이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결혼 상대자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여기며, 어떻게든 다른 여자가 채어가지 못하게 꽉 붙잡으려고 애써 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옛사랑 강태하가 눈앞에 나타났다. 예전보다 훨씬 안정되고 멋있어진 모습으로, DK건설 대표라는 매혹적인 직함까지 달고, 무엇보다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노골적인 눈치를 팍팍 주면서 말이다. 게다가 강태하와 우연히 재회하던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하필 연인 남하진은 다른 여자와 맞선을 보고 있었다. 엄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면서.

 

 

이런 상황에서 혼란을 느끼지 않을 여자는 없다.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아도 현 남친의 마마보이적 기질에는 다분히 실망을 느꼈을 것이고, 아무리 잊었다 해도 깊이 사랑했던 옛 애인의 임팩트 넘치는 등장에 전혀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 이후 특유의 여우 같은 밀당 스킬을 시전하며 양다리 어장관리에 들어간 한여름의 행태를 어찌 사랑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별 이유도 없이 옛 남자 강태하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묵을 만큼 그녀는 행실이 허술하며 단정치 못하다. 이후 상황에 밀려서 그랬다지만 결국 한여름은 강태하와 업무적으로도 얽히게 되었고, 수시로 연락하며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엄청난 사실을 한여름은 현재 애인인 남하진에게 철저히 숨기고 있다. 바뀐 휴대폰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그 남자의 집에까지 가서 하룻밤 자게 되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듣고도 애써 참고 이해해 줄 만큼, 남하진은 마마보이 기질을 제외하면 썩 괜찮은 남자다. 어쩌면 그가 어머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입양아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 남하진 역시 안아림(윤진이)과의 관계를 숨기고 있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관계다. - 그토록 마음 넓고 착한 애인을 감쪽같이 속이면서도 한여름은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강태하가 그녀의 과거 5년 동안을 송두리째 차지했던 옛 남자라는 사실을 남하진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지 잘 알면서,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털어놓으려는 생각보다는 그저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식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배신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애인인 남하진에게 신의를 지키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아무리 늦어도 DK건설과의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털어놓아야 했다. 하룻밤 해프닝으로 끝나서 두 번 다시 강태하와 마주칠 일이 없다면 숨기는 게 나을 수도 있겠으나, 업무상으로 얽혀서 앞으로도 관계가 지속될 상황인데 더 이상 숨긴 것은 명백히 신의를 저버린 행동이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할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최선을 다해서 양해를 구해 보고, 남하진이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 DK건설과의 협력 업무를 더 이상 진행하지 말아야 했다. 한여름은 자신의 혼란스런 감정에 빠져 갈팡질팡하느라, 연인에게 지켜야 할 기본적 예의마저 저버린 것이다.

 

사실 한여름은 뚜렷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강태하와 다시 만난 순간부터 그에게 격렬히 끌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술김이라도 그의 차를 타고 그의 집까지 가서 쭉 뻗어 잠들었을 리가 없다. 돈이 아쉽다고 그 남자와 함께 일하는 선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옛사랑과의 재회를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기막힌 솜씨로 화난 애인을 달래기에 성공한다.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서 적반하장으로 상대를 탓하며 속을 썩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렁각시 노릇을 하면서 집안을 치워놓고 벽장 속에 숨어 퇴근해 올 애인을 기다린다. 애인이 벽장 문을 열자 솜사탕 같은 미소를 흩뿌리며 두 다리로 남자의 허리를 감고 그의 어깨에 매달려 안긴다. 솔직한 사과 대신 "너한테도 잘못이 있어" 하는 식의 태도를 줄곧 유지하는 것도 밀당의 고급 스킬이다.

 

 

다만 얼굴 좀 예쁘고 여우 같은 애교를 부릴 줄 안다는 이유로, 진실하지도 순수하지도 않은 한여름을 러블리한 여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발칙한 여우짓이 줄곧 가증스럽게 느껴졌을 뿐인데, 5회에서 강태하의 고백을 들은 후 회심의 미소를 짓는 한여름을 보자 급기야 분노가 치밀었다. 사실 과거 5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강태하가 한여름에게 잘못하긴 했지만 그것은 여자의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의 무딘 감성 때문이었을 뿐이다. 강태하는 한 번도 그녀를 배신한 적 없었고, 양다리를 걸친 적도 없었으며, 거짓말을 한 적도 없었다. 폭언이나 폭행을 한 적도 없었고, 경제적으로 그녀를 뜯어먹은 적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강태하의 잘못이란 여자를 잘 몰랐다는 것과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뿐이었다.

 

한여름과 재회한 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깨닫고, 그녀의 곁에 다른 남자가 있음을 가슴 아파하던 강태하는 결국 술김에 고백을 하고 만다. "좋아한다, 한여름...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어. 진심이야. 내일 아침에 술 깨면 후회할 것 같은데, 지금은 술 취했으니까 그냥 말해 버리는 게 좋겠어. 좋아해, 한여름...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는데, 예전에 내가 널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건 다 가짜야, 가짜... 왜냐하면 그 때는 이렇게 아프지 않았으니까. 그 때는 이렇게 애틋하지도 않았고, 이렇게 간절하지도 않았고, 이렇게 괴롭지도 않았어. 네가 아무리 괴롭다고 말해도 난 그게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이젠 알겠어.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괴롭다는 거... 아, 겪어보니까 이거 완전 지옥이네, 지옥이야..." 두 눈에 고인 눈물 만큼이나 고백의 말은 애절하기 짝이 없었다.

 

 

그토록 애절한 고백 앞에서 한여름은 '권력 관계'를 떠올린다. "연애도 일종의 관계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권력 관계라는 게 생길 수밖에 없고, 강자와 약자로 나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약자가 되는 거죠.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고, 많이 기다려주고, 많이 참아주는 거죠. 옛날에는 제가 약자였어요. 항상 그 사람 마음이 궁금했고, 더 많이 받고 싶고, 모든 기준이 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지옥이었어요... 내가 예전에 겪었던 그 지옥에 이젠 강태하가 들어갔어요. 이 관계의 권력을 내가 쥐게 된 거죠. 마음껏 괴롭혀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잔인한 거 아는데요. 그래서 강태하의 고백이 기뻤어요 난!"

 

자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이용해서 괴롭힐 생각을 한다는 건, 그 자체로 굉장히 못된 심보다. 불공대천의 원수도 아닌데, 한 때 사귀다가 헤어졌을 뿐 따지고 보면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 강태하에게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이유는 한 가지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고, 한여름의 마음이 강태하에게서 완전히 떠나갔다면, 단 한 점의 미련도 없다면 괴롭혀 주겠다는 그런 생각조차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괴롭히고 싶다는 것은 매우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이며, 그의 고백이 기뻤던 이유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를 괴롭히려는 생각에 의기양양하던 한여름은 이제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괴로워진다는 사실을, 사랑의 잔인한 덫에 걸린 사람은 강태하뿐만 아니라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무리 봐도 두 남자가 너무 아깝다. 한여름이 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만큼 가치있는 여자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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