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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부디 이 경건함을 오래 머물게 하소서! 본문

스타와 이슈

교황 방한, 부디 이 경건함을 오래 머물게 하소서!

빛무리~ 2014. 8. 1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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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에 오신지 벌써 3일째,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그분의 행보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16일 광화문에서 열린 시복미사에는 천주교 신자 17만여명을 포함하여 대략 10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들었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 400여명도 함께 자리했다. 시복식 전의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유족이 모여있는 장소 앞에 이르자 교황은 차에서 내려 그들 쪽으로 다가가 짧은 기도를 올린 후 잠시 대화를 나누셨다. 34일째 단식중인 세월호 유족 김영오씨가 교황의 손을 잡고 몇 마디 간절한 청원을 드린 후 노란 봉투에 담긴 편지를 건네자 교황은 이례적으로 그 편지를 수행원에게 넘기지 않고 직접 품에 넣으셨다. 세월호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교황께서 세월호 참사를 얼마나 가슴 깊이 애통해하시는가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천주교 신자들 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까지 매우 큰 인기를 얻고 계시며, 이번 교황 방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열기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이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교황을 보고 싶으니 광화문에 데려다 달라"며 부모에게 떼를 쓴다니, 한국 나이로 79세의 할아버지 교황님이 아이돌 스타급의 인기를 누리시는 신묘한 현상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카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100만 인파는 한 목소리로 "비바 파파!"를 외치며 교황을 환영했다. ('비바 파파'는 '교황 만세'라고 번역되지만 보다 정감있게 '아빠 만세' 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다정한 모습에는 '아빠 만세'가 더 잘 어울리는 것도 같다.)

 

시복미사가 끝난 후, 또 하나의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무려 10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모였다가 흩어졌는데도 무질서, 쓰레기, 사고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3無의 깨끗한 행사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퇴장했으며, 행사장 주변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꼼꼼히 주워담기도 했기에, 인파가 빠져나간 광화문에서는 바닥을 뒹구는 종이 한 장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100만은 커녕 고작 수천 명만 모였다 흩어져도 난장판 쓰레기장이 되곤 하는 것이 평소의 모습들 아니었던가?

 

 

아마도 교황의 존재와 그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그리고 시복미사의 경건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무의식에 작용한 때문 아니었을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단정히 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겅건함이 아마도 그 넓은 장소에 가득했었나보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던져버렸을 휴지 한 조각도 꼼꼼히 챙겨들고 떠나게 하는, 누가 강요하거나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깨끗함과 단정함을 추구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경건함...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으나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숨결 하나까지도 깨끗해지는 듯 신비로운 경건함... 교황은 시복미사를 마친 후 오웅진 신부가 설립한 음성 꽃동네를 방문하여 장애인들을 위로하셨다.

 

부디 이 경건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를 비는 마음뿐이다. 일시적으로 반짝 붐이 일었다가 사라지는 그런 유행이 아니라, 교황 방한을 계기로 아주 조금은 전체적으로 경건해진 사회적 분위기가 부디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경건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는 뜻인데, 이 말은 단지 종교적 의미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자유와 방종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에 '삼가고 엄숙'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미덕이다. 그렇다면 공경해야 할 대상은 무엇일까? 종교인이라면 당연히 그 첫번째 대상은 '신'이 되겠지만, 비종교인이라면 그 자리에 '자신'과 '세계'를 대입시킬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공경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공경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세계를 공경한다면 저절로 깨끗한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자신과 세계를 공경하는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중독에 빠져들지도 않을 것이며, 쓰레기를 멋대로 버리거나 질서를 무시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회는 지상의 유토피아라 할 수 있다. 물론 교황께서 떠나시고 나면 이 경건한 분위기도 급속도로 냉각되겠지만 단 10% 정도나마 보존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숨통 트이는 세상, 조금은 더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유난히 비극적인 대형 사건 사고가 많았던 2014년... 암담한 혼돈과 슬픔의 시대를 지나고 있던 한국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으로 남겨진 한 줄기 경건함의 빛을 부디 오래 머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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