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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덕만, 드디어 날개를 펴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선덕여왕" 덕만, 드디어 날개를 펴다

빛무리~ 2009. 7. 21.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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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선덕여왕 17회는 지난주 16회에 최고조에 달했던 답답함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한 회였다. 16회 내내 미실의 포스에 짓눌려 깜짝깜짝 놀라기만 했던 덕만이 어느새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미실에게 대항할 수 있게 되었으며, 유신과 천명공주와 알천랑 등 덕만의 사람들이 점점 더 의지를 굳건히 하여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소엽도를 매개체로 하여 숨겨져 있던 덕만의 정체가 드러나기 일보직전의 상황까지 도달했다.

(먼저 잠시 소품에 대해 언급한다면, 이 소엽도라는 소품은 정말 100% 멋지게 활용되었다. 소엽도는 진흥대제의 전설을 담고 있으며, 마야부인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천명과 덕만을 탄생하게 하였고, 소화의 손에 들려 칠숙을 찌름으로써 덕만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였고, 이제 다시 중요한 시기에 등장함으로써 덕만의 정체를 밝히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1. 덕만

“선덕여왕”, 이 대하사극의 주제를 말한다면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 이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주제는 주로 미실의 입을 빌어 드러나고 있으나, 앞으로는 선덕여왕의 모토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는 줄곧 “사람”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 채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이지만 덕만은 이미 알고 있다. 언제나 타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을 만큼 덕만은 “사람이 귀하다”는 진리를 어려서부터 저절로 깨달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 상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포악한 중국 성주에게 맞설 때, 그리고 전쟁 중 부상자들을 베어 버리려는 알천랑에게 맞설 때, 덕만은 이미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켜서 자기의 사람으로 만드는, 그녀의 천성적인 카리스마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미실 또한 “사람의 힘”이 핵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사람을 얻는 데에 큰 재주를 지녔으나, 미실은 “술수”를 통해 사람을 얻는데 비해 덕만은 “진정성”을 통해 사람을 얻는다. 술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단지 손을 잡을 수 있을 뿐이지만, 진정에 감복한 사람들은 용광로 속에서 녹아드는 쇳덩어리들처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미실과 덕만의 대결에서 덕만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을 모으되 완전히 하나로 만드는 그 진정성에 있다. 관찰해 보면 미실의 사람들은 그 내부에서도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며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술수에 의해 하나로 뭉친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 손을 놓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요원의 연기가 불만족스러웠다. 아직도 남장을 하고 있는지라 어색할 수밖에 없는 부분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더라도, 표정이나 대사 처리가 전체적으로 과장되어 있어서 약간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눈썹을 과하게 움직이며 눈살을 찌푸리고, 여전히 과하게 깜짝 놀라고,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는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느껴질 뿐, 그녀 주위에 몰려든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다스리고 포용할 군주로는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물론 아직은 덕만이 자기의 카리스마를 제대로 발휘할 시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요원의 연기가 조금만 더 성숙했더라면, 남장의 악조건 속에서도 덕만의 분위기를 더 잘 표현해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2. 유신

“선덕여왕” 17회에서는 무엇보다 김유신의 카리스마가 제대로 폭발했다. 얼마나 대단했던지 천명과 덕만, 두 공주는 김유신의 기세에 완전히 눌려서 여장부다운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나약한 여인들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 순간 들었다.

그 동안 청년 김유신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늙고 맥 빠져 보였던 엄태웅이 드디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중심으로 나서며, 남자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멋있었다.

김유신은 덕만의 가슴속에 억눌려 있던 분노를 격발시켜 그녀를 힘차게 일으켜 세운다. 앞으로도 그는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장수로서 덕만의 든든한 수호자 위치에 서서, 여왕을 받들고 때로는 이끌며 그녀를 지켜나가는 진정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한 가지 내가 염려스럽다고 느꼈던 점은 김유신의 대사 중 매우 위험해 보이는 발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익보다 분노가 우선이고, 정치보다 분노가 우선이고, 수를 생각하기 전에 분노가 우선입니다. 사람이 느껴야 할 마땅한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이 먼저란 말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다.

김유신은 저 대사를 자기 부모님인 김서현과 만명부인 앞에서 먼저 외치고, 바로 뒤이어 천명공주와 덕만의 앞에서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나의 판단으로는 저 생각이 김유신의 진심이라기보다는, 두려움에 움츠려 떨고만 있는 자기 편 사람들을 최고로 격발시켜 미실에게 맞서도록 하기 위한 계책이라고 생각된다.

김유신은 용장(勇將)보다도 지장(智將)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치밀한 계획으로 자신의 누이동생을 김춘추에게 시집보낸 일화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감정을 따라가기보다는 매사에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이 드라마에서도 그는 줄곧 냉철한 모습을 보여 왔다. 어린 시절 천명공주와의 만남에서도, 무술을 수련하는 모습에서도, 살벌한 전쟁터에서도 그는 거의 흥분하는 일 없이 진중하고 차분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다른 무엇을 따지기 전에 분노가 우선입니다!” 하고 외친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17회에서 보여준 유신의 과격한 행동은 다분히 계획적이었다고 생각되며, 그래서 저 과격한 대사 역시 유신의 본심은 아닐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계획된 대사였던 만큼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겠지만 저 대사는 매우 선동적이고 위험해 보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억울함과 분노가 쌓여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처럼 우리는 분노를 끌어안고 산다. 그러나 감정을 따르기에 앞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얼마든지 있기에, 감정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기에 우리는 오늘 하루도 분노를 섣불리 터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고, 차분한 인내 속에서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한 사람의 캐릭터가 멋지게 보이면,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 하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된다. 드라마가 뜨면 주인공의 패션 스타일도 뜨고, 어떤 대사가 뜨면 그 말은 유행어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유신의 저 선동적인 발언은, 힘겨운 상황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약간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우려가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나의 기우이기를 바라며 또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3. 알천

나는 사극을 쓰시는 드라마작가 중에 개인적으로 김영현 작가를 가장 좋아한다. 분석하는 글은 나중에 쓰도록 하겠지만, 하여튼 그분의 드라마는 “딱 내 스타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시청률에 있어 크게 성공하지 못했던 SBS드라마 “서동요”였다. 서동요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택기루”라는 가상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인물 묘사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드라마 종영 후에도 한참을 잊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선덕여왕” 초반부에서는 김영현 작가가 마음먹고 “알천 띄우기”에 나서 주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캐릭터가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유신도 멋있었지만, 내 마음을 더 사로잡은 것은 알천이었다. 그는 처음엔 지나치게 냉정하고 매섭기만 하더니, 전쟁 중에는 아찔하도록 용맹한 기개를 보여주더니, 전쟁 후에는 강인하면서도 배려심이 깊은, 최고의 남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가야인들을 황무지로 이주시키도록 한 미실의 정책이 가혹하다고 말하는 알천에게, 석품은 “새주를 비난하는 거냐”고 물으며 미실의 이름을 빌어 은근한 협박을 한다. 그에 알천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그렇다고 흥분하지도 않고 더없이 당당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맞선다.

“나는 미실 새주는 물론 그 누구의 파벌도 아니네. 단지 10화랑일 뿐이야. 이런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자네가 미실 새주의 파벌이라 해서 새주의 편만 드는 것이 오히려 새주를 욕보이는 것이네.”

스스로의 입장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올곧은 논리로써 상대방을 점잖게 후려치기까지 하는 놀라운 대사였다.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덕만과 알천이 잠시 마주한 자리에서도 알천은 다시 한 번 명대사를 남긴다.
“화랑에게 모시는 자는 하늘이나 따르는 낭도들은 땅이다. 땅을 딛고 서지 못하면 일어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잘 하거라. 괜한 오해 사지 말고.”

유신과 덕만이 미실을 속이기 위해 오해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던 모습을 보았기에 조언해 준 것이겠으나, 저 말에서 알천의 인품을 알 수가 있다. 위로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부하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진짜 명장으로서의 기개가 느껴지는 것이다. 동료인 김유신을 염려함과 동시에 부하인 덕만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알천의 소탈한 모습이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스미게 했다.

더구나 이승효의 연기는 알천랑 역에 잘 어울렸고, 목소리나 표정 등도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렇게 극본과 배우가 환상의 호흡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알천이라는 인물의 매력은 날로 더해만 갈 것 같고, “선덕여왕”에서 그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듯 하다.


*사진 출처 - MBC드라마 "선덕여왕"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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