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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은 농구공처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 선덕여왕 22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덕만은 농구공처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 선덕여왕 22회

빛무리~ 2009. 8. 5.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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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노의 재등장과 비담의 출현으로 떠들썩했던 '선덕여왕' 21회 본방송을 어제 놓치고 오늘에서야 시청했다. 과연 비담의 존재는 충분히 화제가 될만했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한때 무협소설을 탐닉했던 나는 초록누리님의 포스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화려하게 등장하는 비담(김남길)을 보며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전설적 무공을 지닌 사부 밑에서 어릴 때부터 엄격한 훈련을 받았으나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그 자유로운 영혼 캐릭터는, 얼핏 '소오강호'의 영호충을 연상시키기도 했으나 그보다 더 야생에 가까운 원초적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강한 이미지를 어필했다. 야생 버라이어티 1박2일이 현재 예능 프로그램 중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듯이, 요즘 대세는 '야생'인데 참 그 컨셉 한 번 제대로 잡은 듯 싶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오늘 '선덕여왕' 22회는 본방을 사수했다. 시청 소감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확실히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 아직도 전개가 빠른 것은 아니지만, 지난주까지처럼 지리멸렬함의 연속도 아니었다. 히로인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문노와 비담이라는 산소공급으로 인해 숨막힐 듯하던 지루함이 절반 이상이나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시청자들의 멀어져가는 마음을 잡으려면 전개를 빨리 하는 것만이 수라고 생각했었다. 하재근님의 포스팅에서 언급되었듯이 김유신(엄태웅)의 캐릭터가 '고뇌하는 김햄릿'(이 표현 정말 너무 우습고 재미있었다)이 되어 버린 것도, 여주인공 덕만(이요원)이 어울리지도 않는 철학소녀가 되어 자기 존재의 본질적 비극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에 잠겨야 하는 것도, 모두 너무나 느린 전개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기 출생의 충격적 비밀을 알고 나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장면은 최대한 짧게 스쳐지나가듯 넘겨버리고, 어서 빨리 자기의 자리를 되찾으려 돌진하는 여왕의 강한 모습을, 그리고 보좌관들(김유신, 알천 등)의 듬직한 모습을 부각시켜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빠른 전개 대신 새로운 캐릭터라는 카드를 투입했다. 실상 문노와 비담은 처음부터 미리 준비해 두었던 비장의 카드였는데, 약간 늦은 듯도 하지만 한참 지루해지는 상황에서 숨통을 틔어 주는 조커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 주었다.

문노 역의 정호빈은 이번 역할로 인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SBS '태양을 삼켜라' 에서는 전광렬의 오른팔인 백실장 역을 맡고 있는데 지금까지 그가 해 왔던 대부분의 역할은 거의 그랬던 것 같다. 그가 갖고 있는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기에는 너무나 주목받기 어려운 역할들이었던 거다.

그러나 반백의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넘기고, 역병에 쓰러져가는 백성들을 구하고자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마을에 머물러 약초를 구하며 환자들을 보살피는 문노의 모습은 마치 성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제자인 비담을 엄격하게 가르치는 모습이며, 김유신의 손을 보고 무예 정도를 가늠하는 모습에서는 여전한 무림고수의 포스가 엿보였다. 역시 연기자에게는 캐릭터가 날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배우 정호빈의 얼굴이 그렇게 반듯하고 잘생긴 줄을 오늘 처음 알았다. 


비담의 야생 캐릭터는 오늘도 제대로 하늘을 날아 주셨다. 멋있었다. 놀라운 무예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극히 순수하고 단순한 캐릭터도 잘 어울렸다. 앞으로 그는 혈연의 어미인 미실과 맞서 덕만의 편에 서게 될까? 그의 등장으로 인해 호기심이 증폭되니 '선덕여왕'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그러나 연장 방송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선덕여왕'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느린 전개는 여전했다. 그 느림의 미학(?) 한가운데에 히로인 덕만이 있다. 그녀는 오늘도 눈물바람을 하며 자기 존재의 비극과, 삶과 죽음에 관해 처절하게 고민을 했다. 나는 문노와 비담이 등장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면을 바라보다가, 덕만과 유신이 등장하여 다시금 철학모드에 접어들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면서 드라마를 시청했다. 그 지리멸렬함을 위해 장문의 대사를 외워야 하는 이요원은 안스러워 보였다.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덕만은 비담의 손에 의해 설원공에게 넘겨진다. 도망칠 수 있었지만, 역병 환자 200명을 구할 수 있는 약초와 자신을 맞바꾸기로 했다는 비담의 말을 듣고, 기왕 죽을 거면 그런 의미라도 건지고자 도망치지 않고 순순히 끌려갔다. 철학소녀는 기꺼이 순교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미실 측에서도 덕만을 향해 손을 뻗고, 을제 쪽에서도 손을 뻗는다. 어느 쪽이 먼저 '덕만을 확보'하느냐 하는 데에 그들의 승패가 엇갈리게 된다. 여주인공 덕만은 마치 농구공처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다닌다. 그 공을 잡아서 골대에 집어넣어야만 승리할 수 있는 양측 선수들은 모두 필사적으로 '공'인 그녀를 쫓는다. 미실 측의 공격수였던 비담은 최종에 변심하여 같은 팀의 손에서 '공'을 가로채어 보호했다.

히로인으로서 덕만이 한 일이라고는 철학적 고뇌와 자살 결심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수동적으로 손을 묶인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주저앉혀 놓으면 꼼짝도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또 철학적 고민에 잠긴다. 아, 정말이지 환장하겠다.

우직한 힘으로, 그리고 덕만을 향한 열정으로 비담에 의해 갇혔던 폐허 옥사를 깨부수고 달려나온 김유신은 최소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실제의 김유신은 거의 간교하다 싶을 정도의 지장(智將)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게 돌쇠같은 우직함과 충성심을 보여주니 내 생각엔 좀 안 어울린다 싶기는 했지만, 어쨌든 답답한 와중에서도 그나마 노력하는 열정 때문에 봐줄만 했다.

주변 인물들은 매력이 넘치거나, 또는 적어도 한 가지라도 봐줄 게 있었다. 자살하려는 덕만의 소엽도를 손으로 막아 피를 철철 흘리던 보종(백도빈)이나, 매섭게 덕만의 팔을 꺾어 다시 포박하던 석품(홍경인)에게서도 나름 용맹한 화랑의 기세를 느낄 수 있어서 약간은 멋있었다. 그러나 덕만은 '농구공'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좀 다른 표현을 한다면 그녀는 주인공은 커녕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고 생명 없는 동상(像) 캐릭터였다고나 할 것이다.

위기의 순간 비담이 바람처럼 등장하여 적군들을 낙화유수로 쓰러뜨리고, 뒤이어 폭풍 질주하듯 달려온 김유신이 그녀 앞을 막아선다. 두 남자는 말한다. "누구도 이 아이를 건드릴 수 없다"고... 공주를 보호하는 믿음직한 기사들의 모습,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두 남자가 쳐 준 보호막 뒤에서 22회의 엔딩을 맞이하는 히로인 덕만의 얼굴은 맥빠진 표정에서 슬며시 변화를 일으키며 조금은 당찬 표정으로 바뀐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녀가 제발 이제 좀 능동적으로 박차고 일어나기를 바란다.

 


자기를 버린 아버지 임금님께 대들기라도 좀 해보고, 자기의 존재가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좀 해보기를 바란다. 맨날 질질 끌려다니기만 할 게 아니라, 아무리 현재 입장이 그럴만하지 않더라도 자기 주변에 있는 부하들, 비담과 유신 등을 카리스마 있게 좀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명색이 주인공인데 어떻게든 동상(像)이나 농구공의 캐릭터는 면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사진 출처 - MBC '선덕여왕' 홈페이지 (모든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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