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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이연희, 그녀가 정말 아름다웠던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미스코리아' 이연희, 그녀가 정말 아름다웠던 이유

빛무리~ 2014. 2. 6.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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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드라마 대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내가 선택하고 잔뜩 기대하던 작품은 '별에서 온 그대'였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별그대'는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강경옥 작가의 만화 '설희'와의 저작권 분쟁도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는 부실한 스토리가 훨씬 더 큰 문제였다. 메인 스토리의 갈등 구조와 에피소드가 지나치게 단조로움을 느끼며 계속 지루해하던 나는 새로 시작한 김현중 주연의 '감격시대 : 투신의 탄생'에도 살짝 눈길을 돌려 보았지만 또 실패였다. 10여년 전에는 '야인시대'를 매우 즐겨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감격시대'에는 왠지 집중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절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처음부터 눈길도 안 주던 '미스코리아'를 중간쯤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이게 의외로 재미있었다. 역시 나의 개인적 취향과는 거리가 좀 먼 내용과 인물들이라서 감정적으로 몰입은 안 되었지만, 어쨌든 중심 스토리 만큼은 지루함을 느낄 틈 없이 쫄깃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시대 배경은 1997년, 가난한 구멍가겟집 딸로서 머리가 좋지도 않고 품위도 별로 없지만 타고난 미모 하나로 소싯적부터 온 동네를 사로잡던 오지영(이연희)이 이 작품의 히로인이다. 여자로 태어나 예쁜 외모를 지녔다는 것은 그야말로 보석같은 축복이지만, 미모 외에는 갖춘 것이 워낙 없었기 때문일까? 학창시절 내내 모든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오지영이지만, 여상 졸업 후 그녀의 인생은 별로 산뜻하게 풀리지 못했더랬다.

 

온종일 하이힐에 정장 차림으로 엘리베이터 안에 서서 근무해야 하는 엘리베이터걸의 고단한 일상을 묵묵히 7년간이나 견디어 왔다는 사실은 오지영의 성품이 특별히 모나거나 예민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상사의 구박과 희롱은 나날이 심해지고 어쩔 수 없는 사정까지 겹쳐지면서 끝내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데, 그 시기와 맞물려 첫사랑 김형준(이선균)과 재회한다. 김형준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몇몇 동료들과 함께 화장품 회사 '비비'를 설립했으나, 마침 불어닥친 IMF 태풍에 떠밀려 제품 출시도 못하고 주저앉을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지영은 김형준과 '비비' 동료들의 후원을 받아 1997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기로 한다.

 

 

미스코리아 출전은 오지영에게 있어 새로운 살을 향한 도전이고 희망이었다. 더불어 잊지 못하던 김형준과의 사랑을 다시 꽃피울 수 있게 해 준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김형준이 회사를 살리기 위한 방책으로 자신을 이용하려 했음을 알게 된 오지영은 배신감에 잠시 방황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김형준에게 돌아온다. 미스코리아 업계의 대모라 불리는 마애리(이미숙) 원장의 탄탄한 후원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무엇이 그녀를 돌아오게 만들었을까? 이성적으로 판단했다면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으련만, 필시 그것은 바보같은 사랑의 힘이었을 게다. 솔직히 나는 오지영이 왜 김형준을 사랑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각기 제 눈에 안경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사전 심사를 할 때 신체 각 부위의 치수를 낱낱이 재는 모습이라든가 수영복 차림으로 대중 앞을 활보하는 모습 등을 보면, 인간의 몸을 상품화시킨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나는 거부감이 들었다. 게다가 부정부패와 비리까지 난무하는 대회의 뒷모습을 보니, 저것은 마땅히 사라져야 할 문화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세계 각국 미인대회의 역사와 권위를 생각한다면 나름대로의 이유와 의미가 있는 거겠지. 내가 보기엔 좀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목표일 수도 있고 큰 기쁨과 행복일 수도 있을텐데,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쨌든 미스코리아 진을 향한 오지영과 그 서포터즈의 처절한 몸부림은 나날이 그 강도를 더해가는데, 너무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자금 때문에 희망의 빛은 미약하기만 했다.

 

설상가상 김형준의 회사를 빼앗으려는 이윤(이기우)의 음모로 인해 '비비'는 미스코리아 대회 본선 당일날 부도 위기를 맞게 된다. 김형준과 동료들은 빚쟁이들한테 붙잡혀 시달리느라 대회장에 오지 못했고, 오지영은 그 살벌한 적진 속에 홀로 남겨진 것이었다. 물론 할아버지와 아빠, 삼촌, 오빠가 응원을 오긴 했지만 오지영의 마음속에 누구보다 힘이 되는 사람은 김형준이었기에, 그의 부재는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그가 못 온 이유조차도 분명히 알지 못했으니,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의기소침해지거나 포기하고 싶어질만도 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지영은 강인하고 긍정적이었다. 그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와이키키~!"를 외치며 웃는 연습을 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도와주는 사람 한 명 없이 혼자 옷을 갈아입고 머리 단장을 하면서도 오지영은 기가 죽지 않았다. 김형준이 앉아 있어야 할 객석의 빈자리가 계속 눈에 들어와도 그녀는 슬퍼하지 않고 씩씩하게 웃었다. 그리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모두 힘겨워하는 IMF 시대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고학력의 완벽한 미녀보다는 옆집 언니처럼 평범하고 친근한 이력의 소유자, 예전보다 관심이 떨어진 미스코리아 대회의 의미를 새롭게 환기시킬 수 있는 무성형의 자연미인, 심사위원들이 내세운 이 두 가지 콘셉트는 오지영의 조건과 기막히게 맞아 떨어졌고, 맨땅에 헤딩하듯 빈 손으로 부딪혔던 오지영은 기적적으로 미스코리아 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거대 미용실 자본의 후원을 받은 김재희(고성희)와 신선영(하연주)을 제치고 이루어낸 쾌거였다.

 

화면에 비친 이연희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가혹한 발연기 논란에 시달리면서도 꾸준한 노력으로 조금씩 발전하더니 끝내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성공한 모습도 예뻤지만, 무엇보다 캐릭터 오지영과 내면적으로 일치한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지영이 그토록 예뻤던 이유는 강하기 때문이었다. 구박도 희롱도 배신도 수치심도 억울함도 외로움도 모두 이겨내고 그 자리에 혼자 꿋꿋하게 웃으며 서 있을 수 있는 강인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나는 순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조금 슬퍼졌다.

 

나는 지금껏 강자보다는 약자 쪽에 더 시선을 두었고, 약한 것도 강한 것 못지 않게 아름답다고 생각해 왔다. 특별히 응원하는 팀 없는 스포츠 경기를 무심히 관람하게 될 때면, 나는 어느 순간부턴가 지고 있는 팀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상하게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아빠 어디 가'를 볼 때도 언제나 밝고 의젓하고 씩씩해 보이는 윤후보다는 예민하고 소심하고 눈물 많아 보이는 민국이에게 더 시선이 갔다. 나는 약한 것을 강해지라고 담금질하기보다는, 약하면 약한 대로 그 나름의 장점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생각하니 나 자신이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본능적으로 나와 비슷한 모습에 끌리고 연민을 느끼며 감싸고 싶어졌던 것이다.

 

 

아, 그런데 만약 오지영이 약한 여자였다면 지금처럼 빛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정말 아름다운 이유는 미스코리아 진의 자리에 올라서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김형준의 빈자리를 아프게 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강인함 때문이었다. 호된 담금질 속에 성숙하고 단단해진 그 모습이 나약한 철부지보다는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도주의적으로 약한 것을 감싸안는다고 미화시켜 생각했던 내 성향은 어쩌면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도망치고 싶어하는 비겁한 심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힘겨워도 부딪혀야 하는 것을, 노력으로 강해질 수 있는 만큼은 강해져야만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나는 애써 부인하며 안주하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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