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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딸 수백향' 잊지 못할 정읍사의 애달픈 가락 본문

드라마를 보다

'제왕의 딸 수백향' 잊지 못할 정읍사의 애달픈 가락

빛무리~ 2014. 2. 8.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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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딸 수백향'은 '구암 허준'의 후속작으로 현재 밤 9시대에 방송 중인 일일 사극이다. 원래 120부작으로 편성되었지만 낮은 시청률 때문에 10부 가량을 축소하는 조기 종영이 결정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시간 될 때마다 기분 좋게 시청하고 있는 중이라 서운한 마음이 든다. 아주 감칠맛 나는 재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스토리 구성이 제법 탄탄하고 인물 캐릭터가 고급스럽다. '왕가네 식구들'처럼 스토리에는 억지와 막장이 판치고 인물 캐릭터는 모두 저질스러운 작품보다야 '제왕의 딸 수백향'이 열 배는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하는데, 기이하게도 시청률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는 '서동요' 밖에 기억나는 것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제왕의 딸 수백향'이 함께 떠오를 것 같다.

 

'제왕의 딸 수백향'이 방송되기 시작한 초반에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는데, 뭔지 살펴 보니 수백향은 백제 공주가 아니라 일본 황후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워낙 오래 전의 역사이다 보니 기록도 허술하고 사람들의 의견도 제각기 분분하여 몹시 헷갈리고 어려웠다. 그렇다면 작가가 어떤 결말을 내놓을지 조용히 지켜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백제 공주가 일본 왕에게 시집간 것으로 처리된다면 일본 황후라고 기록된 역사와도 큰 얼개는 부합될테니 말이다. 어차피 대부분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접하기 전까지 '수백향'이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을텐데.

 

 

주인공 설난(서현진)은 무령왕(이재룡)이 보위에 오르기 전, 귀족 백가(안석환)의 딸 채화(명세빈)와 사랑에 빠지면서 잉태되었다. 어미의 태중에서 그녀는 이미 '수백향'이라는 고귀한 이름을 하사받았다. 수백향은 백제를 지키는 전설의 꽃이라 한다. 그러나 채화의 아버지 백가가 딸을 황후의 자리에 올릴 욕심으로 동성왕(정찬)을 시해하면서 모든 사람들은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동성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사촌으로서 왕위 계승권자였던 무령왕이 보위에 올랐으나, 동성왕을 시해한 백가는 끔찍히 처형당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던 것이다.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던 동성왕의 죽음 앞에 분노한 무령왕은 사랑하는 채화조차 따로이 돌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불어닥친 피바람 속에 채화는 임신한 몸으로 간신히 도망쳐 목숨을 부지한다. 백가의 부하로서 채화를 남몰래 사모해 온 벙어리 구천(윤태영)이 든든한 보디가드처럼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들은 백제를 떠나 가야 연맹에 속하는 작은 나라 기문국으로 숨어드는데, 혼자 아이를 낳게 된 채화는 무령왕이 하사한 이름 '수백향' 대신 '설난'이라는 평범한 이름을 딸에게 지어 준다. 벙어리 구천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한 채화는 그 마음을 받아들여 부부의 연을 맺고 2년 후 둘째 딸 설희(서우)를 출산하니, 두 딸자식 중 큰 딸의 아비는 백제의 무령대왕이요 작은 딸의 아비는 천민 벙어리 구천이었다. 

 

19년 후, 기문국 시골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던 그들 가족에게 다시 피바람이 불어온다. 무령왕에게 역심을 품은 진무(전태수)가 보낸 자객들에 의해 채화는 죽임을 당하고, 구천 역시 중상을 입은 채 행방불명이 된다. 설난과 설희 자매는 간신히 목숨을 구해 도망치는데, 거기서부터 그들의 운명은 잔혹하게 갈리기 시작한다. 채화는 숨을 거두기 전 설난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 주는데, 자객의 칼에 눈이 멀어 설희를 설난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혼자 임종을 지킨 설희는 어머니의 비녀를 쥐고 백제 황궁으로 달려가 무령왕 앞에 엎드려 자신이 수백향이라고 외친다. 채화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수백향이라는 이름을 듣고, 오래 전 자신이 선물했던 비녀를 본 무령왕은 애틋한 심정으로 설희를 받아들인다. 벙어리 구천의 딸 설희가 백제의 공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헤매던 설난은 운명처럼 백제 황궁으로 이끌려 들어오는데, 이미 권력의 단맛에 중독된 설희는 악귀처럼 변해 있었다. 진짜 수백향인 언니의 존재가 두렵고 꺼림칙한 설희는 갖가지 악행으로 설난을 해치려 하는데, 영문도 모른 채 설희가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온갖 고초를 겪던 설난은 결국 자기 출생의 비밀과 설희의 거짓말을 모두 알게 된다. 하지만 설난은 진실을 밝히지 않고 그대로 떠날 것을 결심하는데, 욕심 없는 성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령왕의 태자 명농(조현재)에 대한 사랑이 더 큰 이유였다. 설난이 무령왕의 딸이면 명농과는 친남매가 되는 셈이니, 이루지 못할 사랑을 곁에 두고 고통받기 보다는 떠나기를 택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명농은 죽은 동성왕의 친자이다. 무령왕이 동성왕의 핏줄에게 다음 번 왕위를 물려주려고, 어린 명농과 자기 아들 진무를 바꿔치기 했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무령왕과 내관 홍림(정석용)뿐이다.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밝게 웃을 수 있는 설난은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 마음 속엔 사랑만 가득할 뿐 한 점의 욕심도 없다. 또 사람에 대한 연민이 지극하니 그 순수한 진심은 기문국의 왕 수니문(김영재)을 감복시켜 백제에 무릎 꿇도록 했던 것이다. 이로써 백제와 기문국의 백성들은 피 흘리는 전쟁을 치르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게 되었으니, 과연 백제를 지키는 꽃 수백향다운 행적이었다. 이제 살아 돌아온 구천의 알림으로 무령왕에게 설희의 정체가 밝혀졌으니, 머지 않아 설난도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공주가 된다고 해서 어찌 행복할 수 있을까? 평생을 사랑하는 명농의 누이로 살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만약 설난이 일본 왕에게 시집가서 일본 황후가 된다면, 백제를 지키려는 충심과 더불어 사랑의 고통을 잊기 위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수백향의 운명은 얼마나 모질고 외로운 것일까? `

 

'제왕의 딸 수백향'에는 매우 임팩트 강한 OST가 존재한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 '정읍사'에 가락을 붙인 노래인데, 아련하고 애달픈 곡조가 들으면 들을수록 중독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초반에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아비와 연인을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된 채화의 애달픈 심정이 느껴지더니만,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백제를 위해 홀로 모든 짐을 짊어지고 희생하는 설난의 외로운 심경이 절절히 느껴진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어긔야, 즨데를 드데올셰라~ 어긔야, 내 가논데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현대어로 해석하면 "달아, 높이 떠올라 그 빛을 멀리 비추옵소서. 내 님 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자칫 험한 곳을 디딜까 두려우니 달아, 높이 떠올라 그 빛을 멀리 비추옵소서!" 이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읍사'는 가난한 행상의 아내가 장터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노래로 알려져 있는데, 해석에 따라서는 남편이 여자의 유혹에 빠질까봐 염려하는 내용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남편이 험한 일을 당할까봐 염려하며 달님께 무사 귀환을 비는 노래라고 해석하는 편이 훨씬 아름답지 않은가? 사랑하는 낭군이 산 넘고 물 건너 돌아오는 길에 혹시라도 산짐승이나 도적을 만날세라, 혹시라도 풍랑에 휩쓸릴세라, 동네 어귀까지 마중나와 애태우며 기다리는 아낙네의 여린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기다림이란 본질적으로 외로운 것이라 '정읍사'에는 짙은 외로움의 정서가 묻어난다. '수백향'을 보면서 언제부턴가 흥얼거리게 되어버린 이 노래의 애달픈 가락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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