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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네 식구들' 고민중, 정말 속 시원했던 진실 폭로 본문

드라마를 보다

'왕가네 식구들' 고민중, 정말 속 시원했던 진실 폭로

빛무리~ 2014. 2. 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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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존재하는 진실의 대부분은 드러나지 않고 숨겨지는 편이 더 좋은 것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그게 의문이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솔직히 말하면 안 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타인의 잘못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행동이 과연 입이 무겁고 참을성과 배려심이 있다 하여 칭찬받을 일이기만 한 걸까? 오히려 말하지 않아서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는 없을까?

 

 

멕시코에서 제작된 어린이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을 아주 오래 전에 보았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와중에 '마리아'가 손을 번쩍 들며 외친다. "선생님, 까르멘이 보고 써요!" 내가 보기에는 정정당당한 고발이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정작 컨닝을 하다가 딱 걸린 학생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처벌이 주어졌고, 그것을 일러바친 마리아는 훨씬 호된 꾸지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학급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물론 까르멘도 잘못을 했지만 마리아는 더 많이 잘못했어!" 상냥한 히메나 선생님이 말했다. 도대체 왜? 어린 마리아가 이해를 못 하는 것처럼 나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시비비가 불분명한 상황도 아니고 명백한 잘못이 저질러진 상황에서, 그 부정행위로 인해 선량한 다수의 학생들이 피해를 볼 게 뻔한데도 그것을 말하지 않고 숨겨주는 게 옳단 말인가?

 

물론 모함이나 험담을 하는 것은 나쁘지만,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는 마땅히 드러내는 게 옳지 않은가? 잘못한 친구를 배려하기 위해 숨겨주어야 할까? 나쁜 짓을 하다가 안 들키고 잘 넘어가면 앞으로 계속 또 나쁜 짓을 할텐데, 그렇게 만드는 것이 친구를 위한 일일까? 난 아직도 마리아의 행동이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내 아이를 교육하게 된다면 절대 그런 행동은 하지 말라고 가르칠 것이다.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왕따가 될 테니까. 하지만 아이가 "왜 말하면 안 돼요?" 라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해 줄 말은 없다. "그러면 친구들이 너를 싫어할거야" 정도로 말해주면 될까? 결국 '불의를 보면 나서지 말고 꾹 참아야 한다'고 가르칠 수밖에 없는 셈이니, 나는 이런 사회가 정말 답답하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입바른 소리를 한다면 참 좋을텐데.

 

 

'왕가네 식구들'에서 얼마 전까지 가장 답답하던 인물은 왕광박(이윤지)이었다. 오만정(이상숙)은 왕광박의 남편 최상남(한주완)의 생모이니 어쨌든 시어머니라고 해야겠지만, 사실상 시모 행세를 할만한 입장은 아니었다. 어린 자식을 팽개치고 재산까지 훔쳐서 집을 나간 후 평생 다방 마담으로 전전하다가 최근 장가간 아들에게 돈이나 뜯어낼 요량으로 다시 돌아온 오만정은 한 번도 최상남에게 엄마 노릇을 한 적이 없었다. 제 손으로 키우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재정적 도움도 준 적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엄마로서의 사랑을 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수십년만에 찾아 온 아들을 보고도 반가워하는 눈치가 전혀 없었다. 그런 어미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인간 중에 그런 종자가 없으란 법도 없다.

 

평생 어미 품이 그리웠던 최상남은 그런 어미도 어미라고 애틋이 여기는데, 아들이 안 보는 곳에서 며느리를 쥐 잡듯하는 오만정의 행태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다. 다른 행패는 모두 참아 넘긴다 해도 뻔뻔스레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데야 어찌 참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왕광박은 미련하게 참고 또 참았다. 오만정이 그런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면 최상남이 상처받을까봐, 남편에게는 한 마디도 털어놓지 않고 혼자서 모두 감당하려 했다. 심지어 결혼 전부터 갖고 있던 돈 천만원을 내주면서까지 오만정을 달래서 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왕광박이 오만정을 함부로 대한다고 오해한 최상남은 점점 싸늘하고 못된 남편이 되어 갔던 것이다.

 

만약 오만정이 왕광박을 괴롭히는 모습을 최상남이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신혼 가정은 돌이킬 수 없는 파경을 맞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고 숨겨서 좋아진 일은 하나도 없었던 셈이다. 어차피 진실은 주머니 안의 송곳처럼 튀어나오게 마련이고, 오만정 같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은 최상남이 감당해야 할 운명일 뿐 숨긴다고 달라질 일은 아니었다. 만약 그로 인해 의좋은 신혼부부 사이에 금이 가고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면 쓸데없이 또 하나의 불행을 더하는 셈이니, 왕광박의 침묵은 배려심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최상남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왕가네 식구들' 속에는 온통 제정신 아닌 사람들 투성이지만, 그 중에도 가장 못 봐줄 비호감 캐릭터는 왕수박(오현경)이라 할 것이다. 안하무인 제멋대로인 이 여자의 언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입에 담기도 싫을 지경이지만, 특히 남편이었던 고민중(조성하)에게는 더할 수 없는 최악의 아내였다. 고민중의 사업이 망하여 처가살이를 하게 되자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도 하지 않고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았으며, 그 와중에 첫사랑이었던 허우대(이상훈)와 재회하게 되자 옳타꾸나 바람을 피우면서 노골적으로 이혼을 요구했다. 고민중은 애지와 중지 두 아이를 생각해서 이혼하지 않으려 했지만, 왕수박과 허우대의 대학시절 동거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결국 이혼에 동의하고 말았다.

 

고민중이 첫사랑 오순정(김희정)과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한 것은 이혼 후였으니 사실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자식의 허물을 모르는 이앙금(김해숙) 여사는 불쌍한 자기 딸이 속절없이 당했다며 펄펄 뛰기 시작했다. 비록 허우대한테 사기를 당해서 집을 날렸지만 그건 남편 집이 아니고 친정집이니, 왕수박은 고민중에게 지은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눈 뒤집힌 왕수박과 이앙금 모녀가 집으로 쳐들어와 애꿎은 오순정의 머리채까지 잡는데도 답답한 고민중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애들 엄마니까, 할 수 있는 한 허물을 덮어주고 넘어가려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죄 짓고도 벌 받지 않으면, 숨겨주는 배려심에 감동하여 눈물 흘리며 개과천선하는 인물은 열에 하나도 없다.

 

  

제 자식 허물도 모른 채 기고만장 사위를 잡던 이앙금은 결국 준엄한 진실 앞에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왕수박의 불륜뿐만 아니라 숨겼던 과거의 진실까지 모두 알고 있음을, 고민중이 장모 앞에서 아주 속 시원히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늘상 이름처럼 고민에 고민만 거듭하던 우유부단한 인물 고민중이 처음으로 통쾌하게 날린 장타였다. 물론 왕수박을 정신차리게 하기에는 이것으로도 불충분하겠지만, 최소한 알면서도 말 안하고 끙끙 앓는 답답한 상황만은 면하게 된 셈이니 다행이다. 부디 진실을 말하던 그 순간의 굳은 결심이 끝내 변치 않기를 바랄 뿐이다. 또 무슨 용서 어쩌고 하면서 재결합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멘붕에 머리 뚜껑 열릴 시청자가 한둘이 아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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