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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비' 서준이 나쁜 남자가 된 결정적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사랑비

'사랑비' 서준이 나쁜 남자가 된 결정적 이유

빛무리~ 2012. 4.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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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의 매력을 물씬 풍기는 서준(장근석)이 등장한 후, 저는 언제나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외모는 그렇게 젊은 시절의 아버지 서인하(정진영)를 쏙 빼닮은 아들인데, 어쩌면 성격은 그리도 정반대일 수가 있냐는 거였죠. 아직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별을 지켜보아야 했던 상처로 인해 살짝 비뚤어진 거라고 대략 설명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이별한 원인이 평생 첫사랑을 잊지 못한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해서 아버지와의 사이도 냉랭하고, 순수한 첫사랑에 대해서 비웃듯 시니컬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뭔가 석연치 않았어요.

 

무릇 남자의 첫사랑이 어떤 의미인지는 보편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며, 더욱이 서인하는 김윤희(이미숙)이 벌써 오래 전에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정도가 약간 심했다 해서 결별의 책임을 그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요?  만약 서준이 매사에 어머니를 극진히 아끼는 살갑고 다정한 아들이었다면, 어머니를 대신해서 아버지의 냉정함을 원망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서준은 어머니 백혜정(유혜리)에게도 그저 무뚝뚝하고 데면데면할 뿐이었습니다.

 

부모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엄마 편을 드는 모습은 보기 좋았습니다. 술에 취한 백혜정 곁을 서인하가 지키고 있을 때 서준이 돌아와서 대뜸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는 그만 가보세요. 어머니 곁에는 제가 있을 테니까요!" 그 때는 모처럼 듬직한 아들이다 싶어서 정말 괜찮아 보이더군요. 제가 백혜정 캐릭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에서 아들이라도 엄마 편을 들어야 한다 싶었거든요. 하지만 엄마 앞에서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런다 치더라도, 아버지와의 개별적인 관계가 지나치게 냉랭한 것은 좀 이해불가였습니다.

 

아들과 대화할 기회가 오죽 없었으면, 아들이 얼마나 아버지를 피했으면, 서인하는 일부러 서준의 스케줄에 맞추어 일본을 방문하면서까지 아들을 만나려 했지만, 서준은 만나지 않겠다고 딱 잘라 거절했었죠. 아들은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서인하가 무슨 외도를 해서 가정을 파탄시킨 것도 아닌데, 단지 첫사랑을 잊지 못했다는 것이 자식에게 이토록 원망받을 일인 걸까요? 도대체 무엇이 서준의 가슴에 이토록 깊은 상처를 냈던 걸까요? 늘 궁금했던 그 이유가 드디어 9회에서 밝혀졌습니다.

 

"너를 갖지만 않았어도, 이런 불행한 결혼 시작도 안 했을텐데..."

 

불과 5분 전에 유부남 애인과의 전화 통화를 아들에게 들키고서도 백혜정은 당당했습니다. "이미 다 끝난 일이야. 네 아빠 말고 다른 남자는 나한테 아무 의미 없어. 유부남인 줄도 몰랐고..." 별 일 아니라는 듯 한 마디 변명으로 사태를 마감하더니 "지금 네 아빠가 그 지긋지긋한 첫사랑을 만나고 있는데, 아들 너라도 집에 들어와서 엄마 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군요. 아들이 질려버린 표정으로 대답을 안 하고 냉정한 태도를 보이자, 그 때 백혜정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너까지 나한테 이럴 수 있니? 다 똑같아, 네 아빠도 너도!!! 너를 갖지만 않았어도, 이런 불행한 결혼 시작도 안 했을텐데..."

 

여자로서의 백혜정에게는 동정심이라도 간다지만, 엄마로서의 백혜정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습니다. 어쩌면 자식에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어쩌면 그렇게까지 자기 생각만 할 수가 있을까요? 그녀의 이 한 마디로 또 하나의 의문점이 풀렸습니다. 김윤희가 떠나버린 후, 서인하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백혜정과 그토록 빨리 결혼했는지가 언제나 의문스러웠거든요. 헤어진 지가 32년인데 서준의 나이가 무려 29세라는 부분이 저는 당혹스러웠습니다. 군대에 다녀오자마자 곧바로 결혼하고 서준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남자가 얼마나 우유부단하고 못났으면 그렇게 되고 만 걸까? 제가 서인하 캐릭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룻밤 실수로 백혜정은 서준을 임신했고, 서인하는 그 일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결혼한 거였군요. 짐작컨대 김윤희를 그리워하며 술에 취한 서인하를 백혜정이 유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술에 취하고 그리움에 취한 서인하의 시선에는 혜정의 얼굴이 잠깐 윤희로 보였을지도 모르지요. 결과적으로 백혜정은 뱃속의 아들 덕분에 그토록 원하던 남자의 껍데기나마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놓고서 이제는 아들을 원망하는군요.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서인하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간절히 재결합을 원하고 있으면서, 너만 아니었으면 이 불행한 결혼 시작도 안 했을 거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요?

 

낌새를 보아하니 백혜정이 서준 앞에서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이 처음은 아닌 듯 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 엄마는 냉정한 남편 때문에 힘들 때마다 자식에게 화풀이라도 하듯 막말을 해댔겠지요. 너만 아니었으면 이 불행한 결혼은 시작도 안 했다... 어릴 적부터 그런 말을 들으며 자라온 서준은 자기 존재에 대해 깊은 회의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내가 불행한 결혼의 시작이었다면서 엄마는 나를 원망한다... 엄마는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럼 아빠는 나를 원했을까? 그럴 리가 없지. 갑자기 생겨버린 나의 존재는 아빠에게 차라리 형벌이었을 거다... 아무도 원치 않았는데, 나는 왜 생겨난 걸까?

 

거듭되는 고뇌는 서준을 나쁜 남자로 만들었습니다. 원래 그의 천성은 외모 만큼이나 아버지를 닮아, 순수하고 착한 남자였을 듯 싶은데요. 그의 내면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닮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인 거부반응이 있었습니다. 자기 존재를 부정한 부모를 그 자신도 부정하고 있었던 거죠. 부모가 평생토록 가질 수 없는 한 사람에 대한 집착적 사랑 때문에 괴롭게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랑과 세상을 향한 서준의 시선은 점점 더 시니컬해졌습니다. 상처는 결국 사랑을 부정하게 만들었군요.

 

서준이 '3초'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수많은 여자들을 유혹하며 지내온 것은, 어쩌면 부모를 닮아 지독히 외골수적인 사랑에 빠져들 수 있는 자신의 성향을 두려워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스스로에게 예방주사라도 맞히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정하나(윤아)를 만나자마자 그 모든 노력은 삽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나쁜 남자의 가면은 벗겨졌습니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윤희와 똑같은 이미지의 하나에게, 서준은 3초만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죠. 어쩔 수 없이 똑같은 부자(父子)입니다.

 

최후의 보호막이 무너져 내렸으니, 이제 달콤한 순간이 지나가면 상처를 피할 수 없겠군요. 아무것도 모르고 사랑에 빠진 두 아이에게 서인하와 김윤희의 관계는... 마치 얼음칼로 등허리를 찔리는 것처럼 서늘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어쩌면 그 상처는 이 사랑을 죽일지도 모르겠네요. 예고편에서 준과 하나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던 장면이 왠지 불길한데, 그 이유는 다른 포스팅에서 본격적으로 언급하겠습니다. 나쁜 남자 서준의 가면이 벗겨지고 그 한없이 여린 내면의 상처가 드러났던 '사랑비' 9회는 참으로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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