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놀러와' 조규찬의 담담한 표정에 숨겨진 아픈 사연 본문
싱어송라이터 특집으로 꾸며진 '놀러와'에 조덕배, 강산에, 조규찬이 출연했습니다. 역시 섭외력이 대단하더군요. 다른 두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조덕배의 모습을 토크쇼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첫 예능 출연에 무척 긴장했다던 조덕배는 시간이 지날수록 골방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해가며, 너무 편안해서 잠이 쏟아질 지경이라는 농담을 할 만큼 릴랙스해졌습니다. 현재도 뇌졸중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탓에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을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힘겨워 보여서 안타깝긴 했지만, 자신의 건강 상태를 가벼운 농담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는 훌륭히 극복해낸 모습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뇌출혈 당시 웃음에 관련된 신경이 건드려졌기 때문에, 그 이후 조덕배는 스스로 웃음을 통제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전혀 웃고 싶은 기분이 아닌데도 자기 뜻과 상관없이 웃음이 터져나올 때도 있고, 한 번 웃기 시작하면 도무지 멈출 수가 없어서 고생한다고도 했습니다. 토크 중에 조규찬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모두들 웃고 있을 때, 조덕배가 문득 "저는 웃고 싶은데, 한 번 웃으면 멈춰지질 않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게 웃을 일은 아니지만, 상황이 너무 기이해서 저절로 웃음이 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는..;;) 그러면서 후배 조규찬에게 "네 이야기가 재미없어서 안 웃는 게 아니라 참고 있는 거야" 라는 식으로 양해를 구하더군요.
하지만 조규찬 역시 조덕배와 마찬가지로 '웃음'에 관한 일종의 장애(?)를 겪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선배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가수다' 출연 당시부터 조규찬 특유의 담담한 표정은 많은 화제가 되었었지요. 스스로 농담을 하면서도 전혀 웃지 않고 시치미를 뚝 떼는 바람에 그 진지한 얼굴이 신기해서 남들은 더 많이 웃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농담을 했을 때도 조규찬은 좀처럼 웃지 않고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때로는 혹시 그 농담의 뜻을 못 알아치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물론 그건 아니었죠.
저는 그저 조규찬의 성격이 차분하고 감정 절제에 익숙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조규찬은 웃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웃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담담한 표정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숨겨진 아픔이 있더군요. 조규찬은 고등학생 시절, 오른쪽 얼굴에 극심한 안면마비를 겪었답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 전체의 오른쪽 신경에 마비가 왔었는데, 현재까지도 완전히 치유된 상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웃을 때면 오른쪽 얼굴의 근육은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고 왼쪽 얼굴만 웃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웃을 때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것은 무척 건방져 보이기도 하고 얼핏 비웃음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양쪽 입꼬리를 한꺼번에 올리면서 웃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었답니다. 그러나 억지로 힘을 주어 웃게 되면 오른쪽 뺨에 과도한 힘이 들어가서 근육이 파르르 떨린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점차로 웃음을 자제하게 되었고, 원래 웃는 상이었던 얼굴이 어느 사이엔가 굉장히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으로 바뀌었답니다.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누구라도 웃을 때마다 얼굴의 근육 경련을 체험해야 한다면, 조금씩 웃음을 잃어갔을 듯합니다.
더욱 가슴아픈 일은 그 안면마비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학창시절 겪었던 큰 아픔을 계기로 발생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조규찬의 외모를 보면 부잣집 막내 도련님으로 곱게만 성장했을 듯한 느낌이 들고, 더구나 위의 두 형과 더불어 3형제가 모두 음악을 한다는 것 또한 왠지 집안이 궁핍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 들게 하지만, 사실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서 한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더군요. 원래 화가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지라 예고에 진학했는데 그 학교에서는 미술 실기 비용을 매월 12만원씩 납부해야 했고, 집안이 어려웠던 조규찬은 번번이 실기 비용을 내지 못해서 죄인처럼 움츠러든 채로 학교에 다녔답니다.
그런데 2학년이 되었던 어느 날, 같은 반 급우가 실기 비용을 도둑맞는 사태가 발생했고, 선생님은 아무 근거도 없이 여러 친구들 앞에서 조규찬을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다짜고짜 교무실로 불러서는 "다 알고 있으니까 솔직하게 불든가, 아니면 나랑 여기서 같이 밤을 새든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윽박지르는 선생님에게 조규찬은 "선생님, 저를 못 믿으세요?" 라고 물었더니 "그래, 난 너를 못 믿는다" 라는 답변이 되돌아왔습니다. 속절없이 누명을 쓰고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차가운 방바닥에 웅크리고 누워서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행히도 누명은 벗겨졌지만 가슴 속에는 이미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새겨진 후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직후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멎지 않는 상처의 고통에 시달리던 조규찬은 그 지방에서 파는 큰 병짜리 소주를 사다가 수학여행 첫날밤에 혼자서 다 마셔 버렸답니다. 생전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대어 본 것이 그 때였다는군요. 그걸 한꺼번에 마시고 기절한 조규찬은 수학여행 기간 내내 일어나지 못했고, 다녀온지 며칠 안 되어서 안면마비 증상이 찾아왔습니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안면마비가 지독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저도 수년 전의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가벼운 증상이었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두 번 정도 맞고는 금세 완치되었기 때문에 정말 다행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저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낄 만큼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살짝 가볍게 앓고 넘어갔는데, 한창 나이의 건강한 고등학생이 얼굴뿐만 아니라 온 몸의 오른쪽 신경에 마비가 올 정도였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완쾌가 안 되었을 정도라면... 어린 나이에 그가 느꼈던 압박감과 억울함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토록 그의 삶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 체험이었지만, 조규찬은 여전히 평소처럼 흔들림 없는 담담한 어조로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상반되는 증상이긴 하지만, 조덕배와 조규찬이 두 사람 다 웃음에 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포착한 사람은 MC 유재석이었습니다. 조덕배는 뇌신경의 이상 때문에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와서 웃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와 반대로 조규찬은 얼굴의 신경마비 때문에 웃고 싶어도 웃을 수가 없는... 이와 같은 기묘한 사연을 지닌 두 사람이 함께 출연했다는 것부터가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조규찬의 아픈 이야기는, 누군가를 섣불리 의심하는 행동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큰 비극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생생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대등한 관계에서도 그럴진대, 더구나 어린 학생과 교사라는 특수한 관계였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 선생님은 혹시 알고 있을까요? 자신의 경솔한 의심 때문에 상처받은 한 학생이, 그 이후로 수십 년 동안이나 마음껏 웃지도 못하고 표정을 잃은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별 뜻 없이 던진 한 마디의 말이나 한 번의 손짓이, 상대방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라 했는데, 만약 그 선생님이 이 방송을 보셨다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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