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바람에 실려' 몬트레이 공연을 망친 제작진의 무신경 본문
시청률이나 화제성 면에서는 다소 기대에 못 미치고 있으나, 미국 음악 여행 '바람에 실려'는 컨셉 자체의 신선함과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항상 기다려지는 프로그램입니다. 특히 임재범의 노래를 무려 3곡이나 ('너를 위해', '데스페라도', '솔져 오브 포츈') 들으며 귀가 호강했던 UC 버클리에서의 공연은 대단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또한 그 공연에서는 이홍기의 '고해'와 이준혁의 '비상'도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중간에 낚시를 하거나 요리를 하는 등의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길게 들어가서 지루하게 만드는 등, 좀 더 알차고 재미있게 편집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항상 남지만, 듣고 싶었던 음악만 충분히 듣는다면 그런 불만쯤은 얼마든지 덮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몬트레이 공연에서는 정말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임재범을 비롯한 '바람에 실려' 공연팀은 준비했던 노래를 절반도 채 부르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공연장을 빌리기로 한 시간에 착오가 생겼던 것입니다. 원래 임재범과 공연팀에게 전달된 공연 마감 시간은 오후 7시였는데, 현장에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오후 5시 30분이었습니다. 공연을 무려 1시간 30분이나 단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도대체 어떻게 된 내막이었을까요? 미국의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더 약속을 중요시하고 정확한 시간을 엄수한다고 알고 있는데, 공연장 측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미리 약속되었던 공연 시간을 일방적으로 변경시킬 리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작진 측에서도 얼마든지 당당한 자세로 항의를 해 볼 수 있었을텐데, 오히려 저자세로 "한 곡만 더 부르게 해달라"고 애걸복걸 부탁하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하는 굴욕을 감수하더군요. 그런 태도로 미루어 볼 때, 불상사의 책임은 공연장 측이 아니라 제작진에게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긴 주먹구구식으로 인정에 호소하면서 원칙에 어긋나는 요청을 해봤자 한국에서나 먹히지 미국에서 가능하겠습니까?
확실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디선가 흘러나온 말에 의하면, 공연장 관리자가 원래 17시 30분까지라고 말했으나 '바람에 실려' 제작진 측에서 seventeen을 seven으로 잘못 알아듣는 바람에 그런 착오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참 황당한 일입니다. 이것이 정확한 내막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막대한 제작비와 노력을 들여서 그 먼 곳까지 갔으면서 어처구니 없는 작은 실수로 무대를 망치게 된 것은 사실이니까요. 온갖 심혈을 기울여 무대를 준비하고 노래를 연습했던 임재범과 공연팀의 노력은 또 뭐가 되는 건가요? 정말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제작진의 무신경은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마감 시간을 잘못 알고 있던 공연팀은 뿔뿔이 흩어져 관객을 끌어모으며 홍보를 하고 있었지요. 한국에서 온 가수들이 한국의 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공연을 하니까 구경하러 와 달라면서 말입니다. 공연팀의 핵심 멤버인 기타리스트 박주원 역시 탤런트 이준혁과 함께 거리 홍보에 나섰습니다. 우선 신들린 기타 연주로 시선을 모으고 나서, 오후 5시까지 공연장에 와 달라고 요청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마감 시간이 5시 30분으로 앞당겨지면서 공연팀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준비한 노래를 한 곡이라도 더 부르기 위해서는 한시바삐 공연 시작을 앞당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박주원과 이준혁은 한가롭게도 거리에서 마주친 낮모를 건반연주자와 더불어 즉흥 합동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신나는 연주이긴 했지만, 속이 바짝바짝 타오르며 그들을 기다리는 임재범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기타리스트가 빠진 상태에서는 공연을 시작할 수 없었으니까요. 어째서 전화를 걸든가 하는 방식으로 재빨리 연락을 취하지 못했던 걸까요? 박주원은 5시까지만 공연장으로 오면 되는 줄 알고 있었으니 그의 잘못은 아니지요. 서로간에 긴급한 연락을 취할 방책도 준비해 놓지 않아서 그저 맥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면, 이 또한 제작진의 허술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공연 중간에 속절없이 마감 시간은 지나갔고, 공연장 측에서는 가차없이 무대 전체의 전원을 내렸습니다. 임재범이 '비상'을 열창하고 나서 무언가 멘트를 하려는 순간, 마이크가 꺼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나마 노래 도중에 전원을 내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해야겠죠. 그 때 시간은 5시 35분이었으니까요. 원칙과 규정에 어긋나는데도 노래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5분의 시간을 더 기다려 준 것은, 훌륭한 음악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만약 노래하는 도중에 마이크가 꺼졌다면, 임재범은 가수로서의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고 말았겠지요.
편집되어서 잘려나간 장면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방송된 내용만으로는 '바람에 실려' 팀이 몬트레이 공연에서 부른 노래는 고작 2곡에 불과했습니다. 김영호의 '마마', 그리고 임재범의 '비상'... 기껏 한국의 노래를 감상해 보겠다고 그 곳까지 찾아와 주었던 관객들은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달랑 2~3곡 정도를 부르고 나서 공연 끝이라니... 하지만 그래도 수고했다고, 쿨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미국인들을 보니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바람에 실려' 팀은 벌써 모든 촬영을 끝내고 귀국한지 오래인데, 이제 와 쓴소리를 해봤자 별 의미는 없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렇게 좋은 최상급의 재료들을 갖고서도 번번이 실망스런 요리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제작진의 무신경과 무능력은 정말 염려스럽군요. 앞으로 임재범을 제외한 새로운 멤버들을 모아 '바람에 실려' 2탄을 제작할 예정이라는데, 개선 없이 계속 이런 식으로 한다면 1탄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나마 임재범의 독특한 음악과 강렬한 존재감이 있었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제 뭘 믿고 다시 그 머나먼 음악 여행을 떠나려는 걸까요? 제작진이 조금만 더 정성을 기울이고 노력했다면 족히 3배 정도는 더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었을텐데... '바람에 실려'는 두고두고 정말 아까운 방송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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