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남자의 자격' 아들에게 바치는 김태원의 시(詩) 본문
지난 4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김태원은 결코 털어놓기 쉽지 않았을 아들의 병을 세상에 고백했습니다. 마음이 아픈 아이... 지금 열 한 살이 되었지만, 아직 한 번도 아빠와 대화를 해 본 적 없는 아이... 그래서 아빠로 하여금 끝없이 대화하는 꿈을 꾸게 하는 아이... 엄마로 하여금 "내 소원은 너보다 꼭 하루만 더 사는 거란다" 하고 말하게 하는 아이... 엄마 아빠로 하여금 시간이 멈추도록 기도하게 만드는 아이... 엄마 아빠가 너를 지켜줄 수 있도록, 쑥쑥 자라서 어른이 되지 말고, 그냥 지금처럼 어린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소망하게 하는 아이... 지금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머나먼 외국에서 지내고 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엄마 아빠와 누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이... 그런 아이가 김태원의 소중한 아들 우현이었습니다.
김태원이 힘들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유는, 아들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더 이상 어두운 곳에 숨어 지내지 않고 좀 더 쉽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꿔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찬란한 유산'에 한효주의 자폐아 남동생으로 등장했던 은우(연준석)의 모습인데, 아마도 우현이는 은우보다 좀 더 많이 아픈 모양입니다. 은우는 그래도 사람들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대화가 되는 아이였으니까요. 이제 열 한 살, 똘망한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며 조잘조잘 하루종일 말을 걸어도 모자랄 나이인데, 단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눌 수 없는 그 마음을, 타인으로서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못 하겠습니다.
이번 주 '남자의 자격'은 특별 게스트로 김용택 시인을 초청하여 '남자, 시를 쓰다'라는 주제로 만들어졌습니다. 일단 놀란 것은, 김태원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시(詩)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지내왔을 듯한 이미지인데, 그래서 아무리 시켜봐야 몇 문장 쓰지도 못하고 쩔쩔 매면서 코믹한 웃음이나 줄 거라고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저마다 진솔한 속내를 드러내며 제법 괜찮은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는 점입니다. 시(詩)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님을, 그저 진실한 마음을 담기만 한다면 일상적인 언어로도 얼마든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만으로도 '남자, 시를 쓰다' 편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택 시인이 뽑은 1위는 이윤석의 '틀니소리'였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작품이었죠. 틀니가 잘 맞지 않아서 늘 뽀그작 빠그작 씹는 습관을 갖고 계셨다는 이윤석의 아버지는, 아들이 퇴근해 돌아오면 외로움에 지친 나머지 말을 걸고 싶어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곤에 지친 아들은 고양이처럼 돌아누운 채 잠든 척 모른 척을 했고, 한동안 아들의 방문 앞에 서 계시던 아버지는 쓸쓸히 발길을 돌리시는데, 뽀그작 빠그작 틀니소리가 멀어져가는 것으로 아버지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하지만 이제 그 아버지는 계시지 않고, 장례에서 돌아오니 주인 잃은 틀니만 문갑 위에 덩그라니 놓여 있었던 그 아픈 추억을 이윤석은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윤석과 김태원의 시는 통하는 면이 있군요. 벌써 20년째 노랫말을 작사하고 있는 김태원은 기성 시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기준에서, 김용택 시인은 김태원의 작품을 열외로 놓고 이윤석을 뽑았지만, 저 역시 그 의견에는 이의가 없지만, 확실히 작품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아들에게 바치는 김태원의 시가 으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여, 나는 너의 잠 속에 꿈이고 싶다
너의 까만색 동공에 비춰지는 모두이고 싶다
그래서 시간 속 가슴시려야 할
모든 조건의 밖이고 싶다
나는 진정
사랑을 울타리로 희망을 기와로
소망을 닮은 강아지 한 마리와
무지개로만 지어진 세상에
너를 놓아두고 싶다
그래서 너의 시선 속에 나는
늘 서성이고 싶다
저 아름다운 꽃이 자라는 곳에
끝도 없이 너를 던지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이라도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단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눌 수 없는 아들을 향한 마음... 이보다 더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을 수가 있을까요? 얼마나 너를 지켜주고 싶은지... 얼마나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지... 이보다 더 간절한 소망이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맞닿지 않도록, 소망을 담은 강아지 한 마리와 무지개로만 지어진 세상에 너를 놓아두고 싶은 아빠의 마음...
언제까지나, 세상의 수많은 고통 따위 모르고 지내도록, 살아있는 동안 그저 예쁜 것만 보며 행복할 수 있도록, 저 아름다운 꽃이 자라는 곳에 끝없이 아들을 던져두고 싶은 아빠의 마음... 혹시 꿈 속에서는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들의 잠 속에 꿈이고 싶은 아빠의 마음... 세상 모든 조건과 상관없이, 아들의 영원한 친구이고 싶은 아빠의 마음... 비록 내 말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아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 서성이며, 너를 사랑한다고 온 몸으로 말해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
아들에게 바치는 김태원의 시에는, 그의 삶과 영원히 함께할 아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아픈 숙명이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면 그 존재마저 행복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김태원은 쉽지 않은 세상살이에, 오늘도 한 줄기의 위로와 격려를 더해 주었습니다. 하늘에서 살펴보면, 삶을 포기하고 주저앉았던 사람들이 김태원의 여윈 손을 꼭 붙잡고 일어서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띌 것만 같습니다.
관련글 : 김태원,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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