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1박2일' 엄태웅의 강아지 사랑이 짠했던 이유 본문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풍이라고 욕을 먹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최근 '1박2일'에서 엄태웅은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캐릭터에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예전처럼 우직하고 요령이 없는 편이며, 몸으로라도 때우려는 듯 그저 매사에 열심히 뛰어다닙니다. 다만 강호동의 부재로 팀의 맏형이 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게 되었으며, 예전보다 좀 더 말이 많아졌을 뿐입니다. 헌데 그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엄태웅의 존재감은 180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사실 엄태웅이 갖고 있는 기본적 이미지는 그 자체가 매우 호감형입니다. 그는 보기 드물게 착하고 성실하고 잘 웃는, 성격 좋은 남자입니다. 너무 어리버리하면 답답함 때문에 비호감일 수도 있겠지만, 엄태웅은 꾀돌이는 아니지만 결코 바보스럽지도 않습니다. 몸으로 때우는 미션마저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만큼 비실거린다면 그 또한 밉상일 수 있겠지만, 탄탄한 근육질에 놀라운 체력은 동생들보다도 훨씬 나은 수준입니다. 이와 같은 절대 호감형의 인물이 본업도 아닌 예능에 임하면서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데야 누가 싫어할 수 있겠어요?
비록 예능감은 좀 부족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새로운 캐릭터와 유행어(?)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오프닝에서 번번이 나서며 느닷없이 제작진에게 "오늘 어디로 가나요?" 라는 대사를 던지는 바람에, 엄태웅은 '급한 진행 엄MC' 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난 번 단점 극복 프로젝트에서 유정아 PD와 1분 토론을 할 때는, 워낙 몰입하다 보니 순둥이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욱하는 모습까지 보이며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1박2일-가정마을' 편에서도 엄태웅은 특유의 순박함과 적극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제 마음을 짠하게 하는 장면이 있었으니, 엄태웅이 진돗개 '태풍이'를 발견하자마자 반색을 하면서 다가가 손을 내미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머나먼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녀석이건만, 엄태웅이 두 달 전에 잃어버린 강아지 '백통이'와 어쩌면 그렇게도 꼭 닮았을까요? 그 녀석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저절로 백통이 생각이 나던데, 제가 그랬을 정도면 엄태웅의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또 왜 하필이면 이름은 태풍이인지..;; 녀석을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가 손을 내미는 엄태웅의 몸짓에는 그리움이 가득했습니다. 그 진심이 전해졌던 걸까요? 낯선 사람을 맞이하는 예의(?)로 처음에 한 번쯤 으르렁거리던 태풍이는, 곧바로 엄태웅에게 바짝 달라붙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혀로 그의 손과 얼굴을 핥았습니다. 어떻게 그처럼 삽시간에 친해질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하더군요.
태웅이와 태풍이는 친구가 된 기념으로 둘이 산책을 나갔습니다. 제작진이 '네버엔딩 데이트'라고 표현할 만큼 그들이 함께 하는 시간은 달콤했던 모양이죠. 불과 30분 후에 태풍이는 엄태웅이 "앉아!" 라고 명령하면 그 말을 알아듣고 따를 정도로 완벽하게 훈련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역시 진돗개는 머리가 좋은가봅니다. 하지만 그 모습에도 여전히 마음이 짠해졌던 것은, 어차피 함께 할 수 없는 그들의 인연이 너무도 짧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임에 취약한 엄태웅은 저녁식사 복불복으로 벌어진 '딸기 게임'에서 연달아 패배하여 음식을 별로 먹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뒷정리와 설거지를 걸고 벌였던 마지막 게임에서도 지는 바람에, 동생들이 따뜻한 방 안에서 쉬는 동안 밖에서 찬물에 손을 담그고 30여분 동안이나 혼자 설거지를 해야 했습니다. 명색이 연예인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스탭들은 온통 자기 일에 바빠서 제대로 눈길 한 번 주지를 않더군요. 좀 미안했는지 나영석 PD가 다가오면서 "형, 아직도 하고 있었어?" 하고 묻습니다. 하지만 엄태웅은 그저 동네 착한 백수 형처럼 웃을 뿐이었습니다.
명품 배우 엄태웅은 다음 주에도 아낌없는 웃음과 살신성인의 몸개그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듯합니다. 하지만 막상 베이스캠프로 묵었던 그 집을 떠날 때에는... 태풍이와 헤어지기가 서러워서 눈물이나 흘리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지난 번 5일 장터에서도 어떤 아주머니가 데리고 나오신 강아지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잠시나마 안아보고 얼굴을 부벼대던 엄태웅인데, 백통이를 꼭 닮은 태풍이와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정이 들었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이별의 아픔이란 평생 익숙해질 수 없는 감정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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