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지민 (19)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눈이 부시게'의 여주인공 이름은 '김혜자'다. 2인 1역이라 두 명의 여배우가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데, 분량이 더 많은 쪽은 젊고 싱그러운 한지민이지만 배우의 이름과 캐릭터의 이름이 겹쳐지는 상황을 보면 왠지 진짜 주인공은 원로배우 김혜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타인을 배려하다가 몸만 폭삭 늙어버린 비운의 여주인공이라니 정말 슬프고도 특별하고 신비롭지 아니한가! 어린 시절, 우연히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를 얻게 된 김혜자는 사소한 일에도 종종 그 시계의 능력을 이용하지만, 곧 시간을 되돌린 만큼 본인의 시간이 빨라져서 급격히 나이들어 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사용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5세가 되던 어느 날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도저히..
솔직히 내게는 박근형과 윤여정의 이름만으로도 망설일 필요가 없는 영화였다. 원래부터 무척 좋아하는 배우들이기도 했지만 특히 최근 나영석 PD의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를 통해 새롭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명품 연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기회를 어찌 마다할소냐! 더욱이 여타 작품들에서 노인 배우들의 역할이란 젊은 주인공들의 부모나 조부모 자격으로서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데 반해, '장수상회'에서는 그들이 어엿한 멜로의 주인공들로서 2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을 꽉 채우게 될 터이니, 개봉 첫날 영화관에 들어설 때부터 마음은 기분좋은 설렘으로 콩닥거리고 있었다. '장수상회' 관람 후의 느낌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먹먹함'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가슴 한 쪽이 따스하면서도..
'히든싱어' 시즌3의 개막을 앞두고 그 전야제(?)가 한창이다. 시즌1과 시즌2의 출연 가수들이 나와서 저마다 시즌3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는가 하면, 시즌3의 첫번째 포문을 열게 될 가수 이선희를 중심으로 몇몇 후배 가수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며 함께 노래하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한 번도 블로그에 포스팅한 적은 없었지만 '히든싱어' 시즌1, 2의 열혈 애청자였던 나에게 시즌3 자체는 물론 그 전야제까지도 놓칠 수 없는 보물같은 방송이었다. 가수 이선희, 김경호, 백지영, 임창정, 그리고 사회자 전현무와 패널 송은이가 함께 한 방송은 매우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김경호, 백지영, 임창정 모두 이 시대 최고의 가창력을 자랑하는 가수들이지만, 선배 이선희를 향한 그들의 경외심은 형언하기조차 어려..
개봉 전 기자들의 평점이 낮다고 해서 큰 기대를 품지 않고 관람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취향에 맞아서인지, 나에게 '역린'은 썩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평점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면 스토리가 매우 빈약하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드는 작품이라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 스토리보다는 각각의 캐릭터에 비중을 둔 모양인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영화를 보는 내내 추후의 전개가 거의 궁금하지 않다는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한껏 비장미를 뽐내며 긴박하게 움직이는데, 관객 중 몇몇은 좀처럼 몰입이 안 되는지 줄곧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배우들의 연기에 꽤나 몰입하고 있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1777년(정조 1년)에 발생한 '정..
영화에서는 감독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드라마에서는 작가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영화 시나리오는 연출자인 감독이 직접 쓰는 경우도 많지만, 드라마 대본은 전문 드라마 작가가 아닌 이상 쓰기 어렵죠. 영화에서의 '스토리'가 영상미나 배경음악 등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드라마에서는 '스토리'가 작품 전체의 80% 이상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스토리의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며 예외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장르의 특성이 그러한지라 저는 드라마를 선택할 때 연출자보다는 작가의 이름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허준'과 '대장금'의 눈부신 대성공에 힘입어, 1944년생의 노익장 이병훈 감독은 이 ..
세자빈 화용(정유미)인지, 그 여동생 부용(한지민)인지, 아니면 또 다른 궁녀인지 알 수 없는 한 여자가 300년 전의 조선 왕궁에서 연못에 빠져 죽었습니다. 비록 한창 젊은 나이의 서글픈 죽음이었지만, 그래도 연못에 떠다니던 연꽃들과 평화롭게 노닐던 물고기들은 자기들만의 노래와 언어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해 주었겠지요. 하지만 300년 후의 대한민국 서울에서 가냘픈 몸뚱아리를 사정없이 자동차에 받힌 후 내동댕이쳐진 박하... 그녀가 풍덩 빠져버린 저수지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요? 그 이름도 살벌한 공룡저수지에는 향그러운 연꽃 한 송이 떠다니지 않고, 각박한 서울 생활에 지쳐버린 물고기들은 밤낚시꾼들의 속임수를 피해 꽁꽁 숨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박하의 곁에 다가와 위로의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는 아무도..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른 이유는 오직 하나뿐...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내가 솜털보다 가벼운 영혼이 되어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본 것은 연못에 빠져 죽은 그녀를 보며 눈물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느닷없이 조선의 왕세자가 되어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육신을 벗어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끝없이 순환하는 인생의 고리와 그 안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이어지는 인연들을, 나는 배우지 않았는데도 한 순간에 깨달았던 거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나 놀라움 따위가 아니라 깊은 슬픔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부용을 사랑했으면서도... 끝내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그녀가 처제만 아니었다면, 존귀한 나의 신분으로 꺾지 못할 꽃이 있었..
치열한 수목드라마 전쟁에서 제가 가장 먼저 선택한 작품은 '적도의 남자'였고, 그 다음으로는 '더킹 투하츠'도 놓치기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방송되는 드라마 3편을 모두 챙겨보기는 어려울 듯하여 '옥탑방 왕세자'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었지요. 조선시대의 왕세자가 느닷없이 현대에 뚝 떨어졌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코믹하고 유치할 것만 같아서 별로 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주말 재방송을 통해 몇 번 곁눈질을 하면서 의외로 무게감도 있고 재미있는 드라마임을 알게 되었지요. 그 이후로 리뷰는 쓰지 않았지만 틈나는 대로 즐겁게 시청하던 드라마가 '옥세자'였습니다. 지난 번 '적도의 남자' 리뷰에서도 저의 성향을 밝힌 바 있지만, 저는 한 드라마를 선택하여 무조건적으로 충성을 다하는 스타일의 ..
좀 더 푹 빠져들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워낙 좋아하는 드라마라서 그저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김선우(엄태웅)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는 그가 언제쯤에나 시력을 회복해서 속시원한 복수를 시작해 줄까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건만, 정작 그 때가 되었는데도 통쾌함의 카타르시스를 기다리며 설레기보다는 온통 마음속 한가득 물음표 투성이입니다. 세간의 칭찬이 자자했던 9회의 마지막 부분도 제가 보기에는 참 의문스럽고 이상했는데, 10회를 보고 나니 더욱 황당하다는 생각뿐입니다. 13년이라는 기나긴 준비 기간을 거쳐 드디어 돌아왔으니, 이제부터 김선우의 모든 언행은 엄청난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말 한 마디부터 행동 하나까지 모두 치밀한 계산하에, 아주 의미심장하게 진행되어야..
노희경 작가의 신작 드라마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는 방송 전부터 제 관심을 끄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JTBC 월화드라마로 편성되는 바람에 단 한 차례도 본방 사수를 한 적이 없네요. 아직은 종편 4개 채널이 몇 번에 설정되어 있는지도 헛갈릴 뿐만 아니라 저녁 8시 45분이라는 방송 시간대도 매우 어정쩡하기 때문에, 어지간히 신경써서 챙겨보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도 본방 사수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와중에 '빠담빠담' 3회는 종편 개국 이후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더군요. 그래봤자 1.6% 정도로, 공중파 드라마와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이지만 말입니다. 홈페이지에서 무료 다시보기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길래 별 부담없이 1~3회를 시청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안타까운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