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승재 (15)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1965년, 내 아들 마준이가 태어나던 날... 인숙이가 결코 내 여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아름답고 도도하고 부유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감히 그녀를 욕심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가질 수 없더라도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싶었다. 평생 일중이의 밑에서 허리를 숙이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은, 달리 살 길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일중이의 품에 안겨 있는 인숙이를 보는 것이, 그녀를 못 보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다. 그래, 나는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미친 놈이었다. 내 영혼은 삽시간에 그녀에게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그녀를 빼고 나면, 내 안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중이 곁에서 행복하지 못한 그녀를 보며,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제빵왕 김탁구' 11회는 주인공들에게 있어 삶의 전환점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김탁구(윤시윤)와 구마준(주원)이 정면승부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제빵인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요. (관련글 : 구마준이 김탁구에게 이길 수 없는 이유) 이 젊은이들의 대결에서 이미 승자와 패자는 정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뻔한 듯한 구도임에도 결코 뻔하지 않게 끌고 가는 작가의 능력 때문에 앞으로의 전개가 충분히 흥미로울 거라고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팔봉 선생의 손녀 양미순(이영아)은 역시 할아버지를 닮아 사람 보는 눈이 날카롭더군요. 처음에는 구마준의 고상한 허우대에 반해서 호감을 가졌지만 차츰 그의 표리부동한 실체를 깨달으면서 마음이 멀어지는 모양입니다. 구..
'제빵왕 김탁구' 8회에 엔딩에서 드디어 신유경의 어른 역할을 맡은 유진이 등장했습니다. 여주인공 이영아의 캐릭터가 다분히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이미지를 지녔으므로, 상대적으로 여성미를 물씬 풍기는 유진의 등장은 상당히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윤미순(이영아)이 철없는 어린애 같다면 신유경은 남모를 비밀을 가슴에 품은, 성숙하고도 신비한 여인의 분위기를 풍기더군요. 그런데 그녀의 남모를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김탁구(윤시윤) 한 사람 뿐입니다. 김탁구와 신유경은 유년시절부터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을 지녔었지요. 김탁구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매일 구타당하며 지내는데다가 작부의 딸이라는 이유로 친구조차 만들지 못하고 따돌림 당하는 신유경을 언제나 가슴 깊이 아끼고 보호하는 흑기사가..
요즘 드라마 중에는 유난히 복수극이 많고 배신자도 많습니다. 그리고 복수의 대상은 항상 돈과 권력을 지닌 강자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했던 주인공이 파렴치한 강자들의 것을 야금야금 빼앗으며 복수해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신문의 칼럼을 읽으니 이러한 현상은 '자기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부정적 사회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더군요. 자기의 힘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니,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이며, 그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복수'라는 설정이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수극의 내면에는 자신도 나쁜 놈이지만 상대방을 '더 나쁜 놈'으로 만듦으로써 자기의 욕망을 합리..
'제빵왕 김탁구'의 불륜 미화는 나날이 심해져 갑니다. 김미순(전미선)은 할머니(정혜선)이 내미는 돈조차 거절하고 아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숭고한 모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구일중(전광렬)은 탁구(오재무)에게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간의 권위 일변도에서 비롯된 비호감을 벗고 호감형 아버지로 돌아섰습니다. 게다가 탁구가 유경(조정은)의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맞고 있을 때, 더없이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내가 바로 이 아이의 아버지되는 사람이오" 라고 자신을 밝히고 시원스레 주먹을 날려 상대방을 쓰러뜨림으로써 터프한 면모까지 과시했습니다. 김미순과 구일중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서인숙(전인화)의 캐릭터는 대책없이 망가져 갑니다. 구일중이 빵공장에 마준이와 탁구를 함께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