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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최정우(류승수) 검사는 참으로 듬직하고 매력적이며 희망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는 서지원(고준희)와 더불어 가진 자이면서도 못 가진 자의 편에서 함께 싸워주는 젊은이죠. 국내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와 검찰청에 선후배 동문이 수두룩하고, 그의 부친은 한 때 대법관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쟁쟁한 집안이니, 서지원에 필적할만한 부자는 아니더라도 그만하면 평범한 인생과는 거리가 먼, 상위 1%의 엘리트 인생을 영위해 왔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과거 최정우는 자기 아버지의 대수롭지 않은 비리를 적발하여 대법관 후보의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정작 그의 아버지 대신 대법관이 된 것은 장병호(전국환) 같은 썩어빠진 인물이었습니다. 혈육의 정도 무시하고 엄격한 법을 적용한 것은 조금이나마 깨끗한 세상을 만들려는 열혈청년..
'유령' 11~12회에서는 이 드라마의 절대악이며 모든 범죄의 배후조종자인 조현민(엄기준)의 과거가 드러났습니다. 김은희 작가의 전작 '싸인'의 절대악이었던 강서연(황선희)은 선천적 사이코패스에 가까워 사람을 죽이는 데에 타당한 이유가 없었지만, 조현민은 전혀 다르게 설정되었군요. 물론 지극히 냉혹하며 무차별적이라는 면에서는 강서연과 별 차이가 없고, 그 스케일에 있어서는 강서연을 능가하는 수준이므로 사회에 전체적으로 끼치는 해악은 조현민이 훨씬 크다 하겠지만, 그를 희대의 악마로 만들어 버렸던 13년 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니, 저는 조현민을 탓하기에 앞서 이 썩은 사회와 인간의 추악함에 치를 떨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1999년, 세상은 한 건의 빅뉴스로 떠들썩해졌으니, 바로 세강그룹 회장 조경문이 무..
제 생각에 요즘 '추적자'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서회장(박근형)입니다. 주인공 백홍석(손현주)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강동윤(김상중)의 존재감이 강해지긴 했지만, 아무리 몸부림쳐 봐야 서회장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 그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소록소록 전해지는군요. 거의 표정 변화 없이 냉철하고 강인한 남자의 기상을 풍기는 강동윤의 얼굴도, 늘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서회장의 능글맞은 얼굴과 마주치면 삽시간에 그 빛을 잃고 맙니다. 게다가 연륜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서회장의 기막힌 대사들이라니, 요즘은 박근형이 입만 뗐다 하면 저절로 명언 퍼레이드가 되고 마네요. 분명히 악역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는 회를 거듭할수록 서회장의 캐릭터에 푹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회장에게도 부인..
홍자매의 작품치고 이렇게 몰입도가 떨어지는 드라마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의 다른 작품들은 비록 시청률이 최고는 아니었더라도 매번 열광적인 매니아층이 형성되면서 화제몰이를 했고, 주요 캐릭터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비교적 높은 편이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된 셈인지 드라마가 중반에 이르도록 매니아층이 형성될 기미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차가운 무관심 속에 한자릿수 시청률의 굴욕을 맛보고 있습니다. 가끔씩 뜨는 관련기사조차도 요즘 어딜가나 핫이슈인 '수지'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주인공인 공유나 이민정에 관한 내용은 찾아보기도 어렵네요. 경쟁작인 '추적자'와 '빛과 그림자'가 워낙 탄탄한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는 되겠지만, 작품 내부에 문제가 없다면 결코 이런..
아니나 다를까, 저는 또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각시탈'에서는 시원한 액션으로 원수를 무찌르는 히어로의 활약을 맘껏 즐길까 했더니, 어머니와 형은 비참하게 죽고, 단짝친구는 변절해서 원수가 되고, 어린 시절의 연인은 서로를 못 알아보는 등 비극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령'은 조현민(엄기준)의 등장 후 그와 연결된 새로운 악역들이 속속 늘어나며 아리송한 미스테리가 중첩되고 있는데, 솔직히 저는 머리가 좀 아프더군요. 너무 복잡하다 싶은 느낌도 들고,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역동적인 스릴을 느끼고 싶은데, 좀처럼 미스테리는 풀릴 기미가 안 보이니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니 요즘 인기를 끄는 드라마 '각시탈'과 '유령'과 '추적자'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상대하기에는 ..
'추적자 THE CHASER'는 상당히 남성적이고 굵은 터치의 드라마이며 핵심 배역도 모두 남자들입니다. 처음에는 백홍석(손현주)과 강동윤(김상중)이라는 양대 기둥이 이끌어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오그룹의 노회한 구렁이 서회장(박근형)의 존재가 히든카드였군요. 게다가 평범하고 정이 많으면서도 적당히 속물적인 중년 서민의 전형같은 황반장(강신일)과 거칠지만 정의로운 젊은 지성을 상징하는 최정우(류승수) 검사 등, 탄탄한 연기력의 조연들은 잘 짜여진 대본에 힘을 더해주며 시청자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그런데 이 남성적인 드라마 속에서도 여성 캐릭터들의 빛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습니다. 무릇 남성 위주의 드라마에서 여성들이란 그저 예쁘기만 한 민폐덩어리거나 존재감 없는 쩌리 신세에..
'추적자 THE CHASER' 제9회는 정말 슬펐습니다. 이 드라마는 1회부터 지금까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슬픔으로 가슴을 후벼팠지만, 9회는 특히 더 슬펐습니다. 차라리 백홍석(손현주)이 조금이라도 얍삽한 인간이었다면 보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속상하진 않을텐데, 어떤 상황에서든 정면돌파를 고집할 뿐 요령이라고는 전혀 피울 줄 모르는 그 우직함이 저는 너무도 슬펐습니다. 우직하기만 하면 그래도 좀 나으련만, 지나치게 선량하기까지 한 백홍석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못 견디게 괴롭더군요. 주위를 살펴보면 백홍석 같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가진 것도 없으면서 퍼주기 좋아하고 너무 착해서 만날 손해만 보면서도, 남들이 안타까워하면 자기는 그렇게 사는 것이 좋다며 씨익 웃는 사람들... 백홍석은 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졌다는 속담이 이렇게나 절묘하게 들어맞는 상황이 있을까요? 한오그룹 총수 서회장(박근형)과 그의 사위로서 차기 대권을 노리는 강동윤(김상중)의 대결구도에 정말 우연찮게 소시민 백홍석(손현주)이 휘말려들면서 그의 가정은 완전히 파탄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의 목숨이 억울하게 스러져갔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당한 놈만 억울하고 약한 놈만 서러운 격이라, 절대 다수의 소시민에 속하는 시청자들은 모두 백홍석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그와 함께 울고 웃습니다. 그가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납치 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시청자는 언제나 백홍석의 편이 되어 그를 응원하고 있지요. 성경 속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에게 승리했지만 이 시대의 현실 속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알기에, 죽은 아..
'추적자' 5회의 내용은 굵직하게 '혜라의 활약' 과 '창민의 배신' 으로 요약될 수 있겠군요. 강동윤(김상중)이 그토록 막아보려 했지만, PK준(이용우)이 촬영한 동영상은 결국 서회장(박근형)의 아들인 서영욱(전노민)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백수정(이혜인)의 죽음의 진실에 대해 영원히 함구할 것을 명하는 강동윤의 모습과 음성이 생생히 담긴 그 동영상이 공개될 경우, 강동윤은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꿈에 그리던 대선 출마와 대통령 당선은 커녕, 살인교사죄가 발각되어 옥살이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수년 전에 강동윤에게 된통 당했던 서영욱은 이번 기회에 그를 짓밟아 버리기로 작정하고, 그 동영상을 강동윤의 정적(政敵)인 유태진(송재호) 의원에게 전달하려 합니다. 위기 일발의 ..
'유령'은 상당히 특이한 드라마입니다. 보통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1회에 총력을 기울이고 2회부터는 슬슬 힘을 빼는 법이죠. 그래야 첫방송에서 시청자를 사로잡기가 수월하니까요. 최근 시작된 '추적자'와 '각시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숨막힐 듯 진행이 빠르고 역동적이던 1회에 비해, 2회는 현저히 늘어지고 약간은 지루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실망하지는 않았어요. 원래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그런데 '유령'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1회는 첫방송치고 임팩트가 부족하다 싶을 만큼 평이하고 잔잔하더니만, 오히려 2회가 상상초월 대박이군요. 저는 편안히 누워서 보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벌떡 일어나 가슴을 졸이며 손에 땀을 쥐고 시청했습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이렇게까지 완벽 몰입해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