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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예상을 뒤엎은 순정마초의 충격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무한도전’ 예상을 뒤엎은 순정마초의 충격

빛무리~ 2011. 7. 3.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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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궁금증과 기대 속에 기다려 온 ‘무한도전’의 야심작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가 드디어 방송되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7팀은 모두 제각각의 특성을 살려 최고의 노래를 만들었고 최고의 공연을 했습니다. 비록 현장에 있지는 않았으나 뜨거운 함성과 열기는 제 방까지 전해져 왔고, 덕분에 저도 그들과 더불어 마음껏 신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노래가 다 좋았지만 그 중에도 저를 가장 큰 충격에 휩싸이게 한 것은 첫번째 무대를 장식했던 ‘파리돼지앵’ 팀의 ‘순정마초’였습니다. 정형돈과 정재형이 그 동안 너무나 코믹하고 허술한 모습만을 보여 왔기 때문에, 이 정도 퀄리티의 음악이 탄생할 거라고는 솔직히 전혀 예상 못하고 있었거든요. 뮤지션으로서 정재형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건 아니지만 이 프로젝트에 임하는 자세가 너무 장난스럽게 보였던 탓입니다.


가요제가 열리는 날까지도 하하와 10센치는 두 곡의 노래 중 한 곡을 정하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정형돈은 마치 자신들의 노래가 준비되지 않은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우리한테 한 곡만 달라"며 떼쓰기도 했습니다. 유재석이 나서서 "오늘이 공연인데 지금 노래를 달라고 하시면 안되죠" 라고 말리자, 정재형은 오히려 한 술 더 뜨면서 "왜 안돼?" 라고 당당히 되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행동이 깜찍한 쇼였다니... 저는 그들의 '순정마초' 공연을 보고 나서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한 배신감마저 느꼈습니다.

'순정마초'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바닷길'(길+바다)의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잔잔한 발라드였고, 나머지 5팀이 준비한 노래는 모두 경쾌한 댄스곡이었습니다. 댄스와 발라드는 그 장르상으로 봤을 때 꽤나 익숙한 음악들이라 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순정마초'에서 사용된 탱고풍의 멜로디는 평소 우리 대중가요에서 쉽게 접할 수 없던 것이었습니다. 노래 전체에서 짙게 뿜어져 나오는 이국적 분위기가 무척이나 독특하더군요. 정형돈의 투우사 복장도 예상과 달리 전혀 우습지 않고 오히려 멋있었습니다. 연습할 때 정재형이 "내가 소 분장을 하고 너를 들이받을까?" 이런 식의 농담을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바람에, 공연 자체를 코믹하게 하려나보다 생각했던 건 완전 착각이었습니다.


게다가 '마초'라는 컨셉이 잡히면서부터 저는 이 팀의 노래를 별로 기대하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마초를 워낙 싫어하거든요. 정형돈 특유의 캐릭터와는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절대로 그 노래가 제 취향에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공개된 '순정마초'는 진짜 마초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목숨처럼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버림받은 남자의 처절한 절규였습니다. "나의 사랑을 버린 그댈 잊지 못한... 죽은 심장, 상처난 백합" 이렇게까지 처절한 가사 또한 웬만해서는 대중가요에서 듣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버림받은 남자는 차가운 복수를 꿈꾸며 치명적인 옴므파탈로 변신합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여자가 눈짓 한 번에 넘어온다 해도, 그의 마음은 자기를 버린 여인에 대한 끊지 못한 사랑으로 묶여 있습니다. "나는 그대를 정복하는 사랑의 파괴자" 라고 노래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사랑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 할 뿐, 이 남자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가사 만큼이나 애절한 멜로디가 흐르며, 상처받은 남자의 순정은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두드립니다. 정형돈의 터프한 목소리와 정재형의 맑은 음색은 진짜 듀엣을 결성해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환상적으로 어우러졌습니다.


이렇게 '순정마초'는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투우사와 소 분장을 한다고 해서 웃기는 노래인가 했더니 오히려 비감하기 짝이 없는 장중한 노래였고, 마초를 컨셉으로 잡았다 해서 잔뜩 잘난체하는 승리자의 노래인가 했더니 오히려 버림받은 사랑에 아파하는 패배자의 노래였습니다. 그렇게 웃음기 쏙 빼고 신들린 듯 비장한 공연을 하더니만, 음악이 끝나고 인터뷰가 시작되자 '파리돼지앵'은 언제 비장했냐는 듯 금세 다시 허당스런 코믹 컨셉으로 돌아갔습니다. 정형돈은 원래 개그맨이니까 그렇다 치고, 정재형은... 이 사람은 참... 볼수록 그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인물입니다.

한편 유재석과 이적이 결합한 '처진 달팽이' 팀은 왜 그랬는지 본선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던 '말하는 대로'를 제쳐두고, 중간평가 때 위장용으로 쓰려고 만들었던 '압구정 날라리'를 들고 참여했더군요. 아마도 신나는 공연을 위해서는 그 편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말하는 대로'가 훨씬 좋았기 때문에 많이 아쉬웠는데, 다행히도 공연이 끝난 후 스페셜 무대를 마련해 완성곡을 들려주었기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어려웠던 시절의 회상에 잠긴 듯, 조금은 촉촉히 젖은 듯한 유재석의 눈빛을 보니 제 가슴도 젖어오더군요. 이적의 폭풍 가창력도 감동이었지만, 유재석의 꾸밈없이 진솔한 창법은 더욱 큰 감동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순정마초'의 독특한 애절함에 가장 끌리는군요. 그 가사와 멜로디가 제 가슴을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도는 중입니다. 더불어 정재형이라는 뮤지션에 대한 관심도 크게 증폭되었습니다. 그가 만든 노래들을 좀 더 찾아서 들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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