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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명품조연특집, 그 인간적인 딸바보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1박2일' 명품조연특집, 그 인간적인 딸바보들

빛무리~ 2011. 6. 1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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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배우 특집보다는 명품 조연배우 특집을 훨씬 더 많이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배우들이 저의 기대치를 훨씬 윗도는 재미를 선사해 주는 것을 보고 나서는, 명품 조연들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져 있었지요. 특히 성동일과 김정태의 예능감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풍선처럼 부푼 기대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들이 출연하는 '1박2일-명품 조연 특집' 제1탄이 그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간략한 소감을 말한다면, 절대 실망스럽지는 않았으나 기대만큼 재미있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에요. 조성하, 안길강, 성지루, 고창석은 아예 예능 출연 자체가 처음인 배우들이었고, 생각해 보니 성동일과 김정태도 토크쇼에서 그 입담을 뽐내는 것은 보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성지루는 아주 오래 전에 '쟁반노래방'에서 한 번 보았던 기억은 있습니다.) 그래서 가뜩이나 익숙치 않을 텐데, 설상가상 그들끼리도 대부분 서로 잘 모르는 사이더군요. 왠지 서로들 잘 알고 친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무뚝뚝한 중년 남성들이 낯선 환경 속에서 처음 만났는데 빵빵 터지는 재미가 발생한다는 건 무리였겠죠. 하지만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들의 존재감과 포스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기 때문입니다. 여배우들이 만나자마자 친근하게 수다부터 떨어대며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와는 전혀 다른 자연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이 중년 남성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묵직하게 앉아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그들 자신이 인정했듯이 영화의 장르는 아마도 액션 느와르 쪽이겠지요? ㅎㅎ

가수이면서 배우 활동을 겸하고 있는 막내 이승기가 '1박2일'을 대표하여 선배님들을 영접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원래 가장 큰 웃음은 의도하지 않은 장면에서 발생하곤 하지요.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게스트들을 안내하면서, 이승기는 자연스럽게 함께 걸어오지를 못하고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앞에서 종종걸음으로 뛰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나란히 따라오는 남자 배우들 6명의 모습... 아무 짓도 안 하고 그냥 걸어오는 것뿐인데 마치 KBS를 접수하러 오는 듯한 막강 포스가 저절로 뿜어져 나오니, 그 기이한 풍경에 저절로 웃음이 터집니다.


"베이스캠프는 여러분이 오후 5시 정각에 서 계신 곳이 될 겁니다. 애먼 곳에 서 계시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나영석 PD가 오늘의 프로그램 규칙을 설명하는데, 언뜻 이해하지 못한 듯 김정태가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하고 되묻자 또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그냥 물어봤을 뿐인데 손에 칼이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 서슬이 시퍼렇게 느껴지니 웃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물론 강호동이 부추겨서 일부러 약간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물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런 모습에 깨갱~하는 나PD의 반응을 보니 그 자체가 신선한 재미였습니다. 결국 이 무시무시한 형님들은 소품차에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시간을, 원래 제작진에서 제시한 30초에서 1분으로 무려 2배나 늘려 놓는데 성공했습니다. 어지간한 나PD도 그들의 포스에는 살짝 굴복했다고 봐야겠군요..^^

조금이나마 예능 출연의 경험이 있는 성동일과 김정태의 활약이 역시 두드러졌습니다. '1박2일' 멤버 중 자신들과 가장 친근한 동료 배우 엄태웅을 걸고 넘어지며 웃음을 준 것도 그들이었지요. 하지만 그냥 그 정도였습니다. 도합 12명의 남자가 복작거리며 한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별로 큰 웃음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출연했던 작품 중에 기억에 남았던 역할 이야기를 좀 하고 나니 서로들 할 이야기가 없어서 잠잠하더군요. 그런데 그 자리에는 웃음 대신 생각지도 않았던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방송에서 만날 운전하는 모습만 보이니까... 저희 아들이 저보고 운전수래요" 이수근이 저 말을 꺼낸 의도는 그냥 웃어 보자는 뜻이었던 듯 합니다. 뒷자리에서는 배우들끼리의 대화가 오가는데, 조수석에 앉은 성동일과 공통분모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가다보니 이건 좀 아니다 싶었겠지요. 그런데 성동일은 가볍게 웃고 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돈 버는데 활력소구나, 활력소..." 느닷없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그의 발언이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졌는데.

뒷자리의 조성하와 고창석도 어느 사이엔가 휴대폰에 저장된 자기 딸의 사진을 서로 보여주며 가족 이야기를 꽃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자막이 화면에 입혀졌습니다. "할 이야기는 연기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가 다인 중년 남자 배우들" ... 그 자막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카메라가 중간 자리를 비추니, 마침 성지루도 미국에 있는 아들과 통화하느라 여념이 없더군요. 아빠가 '1박2일'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밥은 굶지 않으셨냐고 묻는 아들과, 아빠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안심시키는 아빠의 대화였습니다.


저는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 굉장히 불쾌하게 느끼는 개그 소재가 있는데, 바로 유부남들이 '가족을 족쇄처럼 여기는' 식의 토크입니다. 대표적으로는 '해피투게더'에서 박명수가 툭툭 그런 이야기를 잘 꺼내더군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인생에 자유가 없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젊은 후배들에게는 "될 수 있는 한 결혼은 늦게 하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그저 웃자고 하는 얘기일 뿐 진심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불쾌감은 억누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정을 가진 남자들이 속으로는 다 저런 마음을 갖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세상이 어두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동안 뚜렷이 느끼지는 못했지만, 저는 그런 종류의 삭막한 개그를 보며 조금씩 마음에 상처를 받아 왔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할 이야기는 연기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가 다인" 이 중년 남자 배우들의 투박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니, 가슴 속에 암암리에 쌓여 있던 묵은 응어리가 온통 씻겨나가는 듯 개운해졌습니다. 팔불출처럼 자기 아이의 사진을 보며 저절로 입이 벌어져서는 동료에게 자랑하기 바쁜 딸바보들... 남이 볼 때야 그냥 평범한 아이일 뿐이지 뭐 그리 예쁠까마는 ㅎㅎ 그래도 서로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서로 예쁘다고 말해 주는 이 순박한 아빠들...


거친 외모 속에 숨겨진 그들의 따스한 인간미가 그대로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성동일의 말처럼 그들에게 있어 가족은 힘든 돈벌이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활력소이며, 나아가서는 삶의 이유와 보람이라 할 수 있겠지요. 대본을 펼쳐들고 집을 나서면 그 때부터는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사는 배우가 되고, 대본을 접어들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 때부터는 지극히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는... 할 이야기라고는 연기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밖에 없는 그들의 삶... 따지고 보면 아주 행복한 사람들인데, 괜시리 조금은 짠하게도 느껴지더군요.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비를 맞으며 계란 토스트를 먹어도 신기하리만치 잘 어울리고, 아직은 차가운 봄바다에 옷을 입은 채 풍덩풍덩 뛰어들어도 어색할 것 하나 없는, 그 존재만으로도 야생 그 자체인 이 남자들의 두번째 이야기가 다음 주면 또 찾아오겠군요. 이제는 빵빵 터지는 웃음을 기대하기보다, 그들의 가슴에서 배어나오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느끼고 싶어서 그들과의 두번째 만남을 기다립니다. '명품 조연 특집'이라는 타이틀에 꼭 맞는 그들은 역시 진짜 '명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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