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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스태프 80명 입수, 정말 시청자가 원하는 재미였을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1박2일' 스태프 80명 입수, 정말 시청자가 원하는 재미였을까?

빛무리~ 2011. 5. 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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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차를 걸고 내기했던 축구시합에서 패배한 후, 나영석 PD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은 채 초강수를 두었죠. 멤버들 6명의 저녁식사는 이미 보장된 상태에서 나머지 74인분의 준비된 밥을 버릴 수도 없으니 스태프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조건으로 족구시합을 제안했는데, 그 댓가가 바로 스태프 80명의 입수였습니다.

그게 정말 재미있고 기분 좋고 빵 터졌나요? 솔직히 저는 처음부터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비판하는 글을 쓰려다가, 해당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을 보니 온통 반응이 폭발적이고 긍정적이길래 "나만 그렇게 느꼈나? 어쨌든 결과를 보고 나서 말하자" 는 생각으로 접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결과를 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모든 게 설정이었나 싶기도 해서 언급을 할까말까 고민하다가 '1박2일'이 자기 프로그램의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있는 '리얼'이라는 점에 입각해서, 소수 의견일지라도 제 생각을 말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작가 및 PD와 카메라맨 등의 스태프들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 월급을 받는지는 모르지만, 연예인들의 수입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1박2일'은 촬영하기가 무척이나 고되고 까다로운 프로그램에 속할 것입니다. 본인이 자원한 경우보다는 어쩌다보니 이쪽으로 배정을 받아서 오게 된 경우가 더 많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언젠가 멤버들이 벌칙으로 스태프들의 짐을 대신 옮기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언뜻 보아도 깔려죽을 듯한 무게의 지미짚 등을 보니 생색도 안 나는 곳에서 스태프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가 실감나더군요.

그 사람들은 화면에 얼굴을 비추고 인기와 돈과 명예를 얻는 연예인들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회사원들과 다를 바 없는데, 단지 좀 더 고달픈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1박2일' 멤버들이 밥을 굶거나 입수를 하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만큼의 댓가를 받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회당 수백만원을 준다면 그 정도 고생을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1박2일'을 촬영하러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들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을 것이며, 합류한지 얼마 안 되는 엄태웅도 처음부터 다 각오하고 온 일이기에 한 마디 불만도 없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스태프들의 입장은 그런 게 아니지요.

가뜩이나 박봉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왜 사전에 협의도 없이 몽땅 물에 빠뜨리겠다는 것인지, 저는 나영석 PD가 처음 제안하는 순간부터 식겁을 했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거든요. 갈아입을 옷조차 준비가 안된 사람도 많을 것이고, 특히 여성들은 물 속에 들어가기가 불편한 상황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데, 정말 어쩌자고 그런 무리수를 두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강호동은 한술 더 떠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머리 끝까지!"라며 신나서 동의를 하더군요.

어쨌든 운명을 걸고 족구 시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빛나는 것은 이승기의 존재감이었습니다. 엄태웅과 김종민은 진짜로 족구를 잘 하지 못해서 실수를 연발하는 거였지만, 이승기는 일부러 져 주려고 몇 차례의 실수를 하는 듯 했거든요. 이수근과 더불어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보여 주었던 축구 실력을 생각해 보면, 족구라고 그렇게 못할 이승기는 아닌 것 같으니까 말이지요. 사실 멤버들은 지더라도 이미 밥을 확보한 상태기 때문에 손해볼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태프 팀은 패배하게 되면 80명이 저녁밥도 못 먹고 쫄쫄 굶은 채 물에 빠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루종일 고생한 사람들한테 정말 너무한 일이었지요. 그런다고 월급이나 좀 올려 줄까요?

배려심이 돋보이는 이승기의 허당 플레이와 비교되게, 이수근은 기를 쓰고 이기려는 듯 멋진 발놀림으로 강 스매싱을 계속하더군요.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그렇게 미워 보이기는 또 처음이었습니다. 어쨌든 이승기, 엄태웅, 김종민의 헛발질 몇 차례에 힘입어 스태프 팀이 아슬아슬하게 승리했고, 덕분에 80명은 따뜻한 저녁식사와 더불어 참혹한 입수를 면하게 되었지요. 강호동은 "연기자 팀의 승리를 가장 목말라했을 분들이 시청자들" 이라고 표현하며 아쉬워했고, 자막 역시 "아마도 연기자 팀을 응원했을 시청자"라고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정말 그랬나요? 박봉에 고생하는 스태프 80명이 저녁까지 굶은 채 물에 빠지는 장면을 정말 모든 시청자가 보고 싶어했나요?

잠자리 복불복으로 마련된 노래방 시합에서도 멤버들은 "이겼다, 또 이겼다!"를 외치며 전원 실내취침을 얻어냈습니다. 이승기와 엄태웅의 노래 실력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는 특히 막내작가 김대주의 노래솜씨가 감탄스럽더군요. 여자 PD는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대주 작가는 현직 가수라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제가 듣기에 그랬다는 얘기죠..ㅎㅎ 역시 숨은 인재들이 참 많아요.

평온한 실내취침을 만끽하며 수다를 떨다가 강호동이 또 하나의 제안을 하는군요. 스태프 80명의 입수라는 대박 아이템을 그냥 버리기가 아쉽다며, 내일 아침에 또 한 번의 시합을 하자고 나영석 PD를 꼬드긴 것입니다. 나PD는 멤버들이 저녁 때까지 촬영을 계속한다는 조건을 걸고 냉큼 받아들였습니다. 그냥 지나가서 천만다행이었던 무리수를 또 다시 꺼내드는 것을 보고 좀 황당했지만 그새 두번째라고 충격도 좀 무디어진 데다가, 80명을 밥도 굶긴 채로 오밤중에 물에 빠뜨리겠다던 어젯밤의 제안보다는 좀 나은지라 일단 또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운명을 건 계주 시합은 또 스태프 팀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날렵한 체격의 카메라 감독, 그 분 40대라던데 정말 잘 뛰고 멋있으시더군요. 그래서 원래 오전 10시면 퇴근할 수 있었던 멤버들은 오후 6시까지 연장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상하기로는 나영석 PD가 현지의 아름다운 구경거리들을 더 많이 찍지 못해서 아쉬운 나머지 위험한 모험까지 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결국 방송되는 내용을 보니 그건 아니었더군요..;; 제철이라서 가장 맛있다는 털게를 한껏 포식하는 모습 외에는 별로 본 게 없으니까요. 도대체 8시간이나 연장근무를 한 이유가 뭘까 싶을 만큼 나머지 촬영분은 허술했습니다.


스태프 80명의 입수라는 제안 자체가 너무 파격적인 데다가, 그것을 걸고 게임했을 때마다 스태프 팀이 승리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자극을 위한 설정이 아닐까 싶은 것도 사실입니다. 실행하기는 무리라는 것을 모두 알기에, 일단 떡밥만 던져 놓고 결정적 한 수는 피해가는 거죠. 하지만 '1박2일'은 언제나 '리얼'을 강조해 왔습니다. 나영석 PD와 멤버들은 언제나 '설정 논란'이 가장 억울하고 속상하다는 반응을 보여 왔어요.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스태프 80명의 입수'도 게임에서 졌을 경우는 얼마든지 실행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강호동은 이것을 대박 아이템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음에 또 다시 도전해서 꼭 스태프 80명이 입수하는 장관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하던데,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연예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시시덕거리며 좋아할 만큼, 그렇게 가학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가요? 어쩌면 이것도 '나가수'에 대한 견제의식 때문에 벌어지는 무리수인지도 모르겠군요. 시청자는 새디스트가 아닙니다. 방송을 재미있게 하자는 열정은 좋지만, 이런 식으로 무리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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