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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리' 하석진과 이영은, 또 하나의 운명적 사랑?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생초리

'생초리' 하석진과 이영은, 또 하나의 운명적 사랑?

빛무리~ 2011. 1. 2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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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케이블 방송이기에 오히려 김병욱표 시트콤의 진가를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가 벌써 13회에 이르렀는데, 지금까지의 행보는 솔직히 실망스러운 편이었습니다. 시트콤의 특성상 각 회마다 개별적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해도, 그 중심이 되는 큰 줄거리는 뚜렷이 잡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굉장히 산만했거든요. 멜로는 멜로대로 밍숭밍숭하니 지지부진하고, 심각한 미스테리 부분도 뭘 어쩌자는 건지 계속 떡밥만 흘릴 뿐 그닥 진전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감정이 섬세하게 표현되지 못해서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멜로의 중심에 서 있는 4명의 남녀 중, 이제까지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지민(김동윤) 밖에 없었지요. 다른 세 명의 감정선은 전혀 나타나질 않으니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사랑 따위에는 아예 관심도 없어 보였어요. 그런데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멜로라인이 본격화되며 흥미를 자아내기 시작하는군요.


오랫동안 혼자 애태우던 한지민에게 정식으로 사랑 고백을 받았는데도, 유은주(이영은)는 그저 어색하고 불편해할 뿐 아무런 마음의 동요를 느끼는 기색이 없습니다. 다시 편한 선후배 사이로 돌아가겠다 약속했지만, 한지민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애틋함을 지우지 못하는군요. 유은주는 느닷없이 다가온 한지민의 키스를 거부하지 않았으나, 그것은 허락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받아주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하기만 한다면 썩 잘 어울리는 커플이 될 듯도 싶은데, 좀 안타깝더군요.

조민성(하석진)과 오나영(남보라)의 관계 역시 멜로로 진행될 듯 하다가 멈춰 버렸습니다. 버스 터미널에서 갑자기 전화가 끊겨버린 오나영을 염려하며 한걸음에 달려갔던 조민성이나, 책상 앞에서 일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며 "아저씨, 참 멋있어요!"라고 말하는 오나영의 모습은 충분히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것으로도 보였지만, 그냥 거기까지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커플은 그림 자체가 무척 안 어울려서,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조민성은 12남매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엄청 무게를 잡고 어른스러운 캐릭터인데, 그에 반해 오나영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어리고 소녀적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남보라는 13회에 특별출연한 윤시윤과 훨씬 더 잘 어울리더군요. 윤시윤은 '시크릿 가든'의 현빈 캐릭터를 대놓고 패러디하면서 등장했는데, 그에겐 아직 소년같은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남보라와 더불어 풋풋한 연인의 분위기를 잘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강력하게 예고되었던 러브라인은 오히려 조민성과 유은주 커플이었습니다. 만나자마자 티격태격하기 시작하면서 머지않아 미운정이 들겠구나... 유은주는 오랫동안 곁에 있던 한지민 선배보다, 번개처럼 강렬한 존재감으로 다가온 조민성에게 마음을 빼앗기겠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두 사람은 12회까지도 계속 티격거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총 20부작으로 만들어지는 시트콤인데 어쩌려고 그랬던 걸까요?


조민성은 극 초반에 갑자기 번개를 맞으면서 숫자 감각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것이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될 것 같기는 한데, 만날 오나영과 함께 "한놈, 두식이, 석삼..." 노래만 불러댈 뿐, 그 기발한 소재를 좀처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13회에서 결정적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래요, 바로 이런 것을 기다렸습니다!

중대한 프레젠테이션 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머리는 회복될 기미가 없고, 숫자치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더 이상 회사 생활을 지속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지켜야 할 가족들이 많은 조민성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번개를 맞아 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우연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은주가 그를 말리기 위해 달려들었고 두 사람은 함께 번개를 맞아 쓰러지게 되지요. 둘 다 무사히 깨어났지만 조민성의 잃어버린 숫자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조민성의 안타까운 비밀을 알게 된 유은주가 전격적으로 그를 돕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세상에서 제일 약한 사람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고, 제일 강한 사람은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이래요." 그녀의 따뜻한 미소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두 사람은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서울로 향합니다. 회의실에서 준비를 하다가, 조민성의 소매에서 단추가 떨어지려는 것을 본 유은주는 가볍게 그의 팔을 잡는데, 문득 심상찮은 스파크가 일어나는군요! 유은주는 조민성이 사양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바느질을 해서 단추를 달아주지만, 와이셔츠와 양복의 소매단을 붙여 버렸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것을 발견한 조민성은, 예전 같으면 짜증을 냈을 법한데 그저 씨익 웃고 맙니다.

유은주의 도움을 받아 프레젠테이션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으나, 조민성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회사 중역에 의해 그의 비밀은 만천하에 공개되고 맙니다. 숫자 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은 업무 수행 능력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사장 박규(김학철)도 조민성을 무작정 보호해 주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한 조민성은 좌절하여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데, 유은주가 그 곁에서 위로해 줍니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으면 사람들한테 좀 잘해줄 걸 그랬어요. 내가 많이 힘들게 했죠?" 얼음장같던 재수탱이 조민성, 많이 변했습니다.


비틀거리는 조민성을 유은주가 부축해서 밖으로 나가다가, 두 사람은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갑작스레 격렬한 키스를 나누게 됩니다. 이거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군요. 언제나 냉철하던 조민성이 처음으로 이성을 잃고 격정에 몸을 맡기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유은주의 태도가 예전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한지민의 기습 키스를 받을 때는 그저 멀뚱멀뚱 당황하는 모습이었는데, 이번에는 눈꺼풀이 살포시 떨리며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듯 손을 축 늘어뜨립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은주와의 키스를 계기로 조민성의 숫자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동안 아무리 공부를 하고 충격요법을 쓰고 별 수단을 다 써봐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녀와 입술이 마주치는 순간 조민성의 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렇군요. 역시 이 두 사람이 운명이었던 겁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운명은 아무리 먼 길을 돌아서라도 결국 만나게 되어 있군요. 조민성과 유은주의 가슴 뛰는 멜로는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듯합니다.


이 두 사람은 '지붕킥'의 지훈과 세경 커플 이후, 김병욱 시트콤에서 두번째로 등장하는 '운명적 사랑' 커플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언제나 현실적인 사랑만을 그려 왔었지요. 김병욱 시트콤 속의 젊은이들은 쿨하게 만나서 뜨겁게 사랑했고, 가슴 아픈 이별을 겪은 후에도 '밥만 잘 먹더라' 하면서 담담히 살아갔습니다. 그대로 현실 속에 옮겨 놓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지요. '지붕킥'도 처음에는 그렇게 나가는가 싶었습니다. 이지훈(최다니엘)과 황정음, 정준혁(윤시윤)과 신세경, 두 커플 모두 이루어지기는 힘들어 보였지만 현실 속에서 충분히 존재할 법한 연인들이었으니까요. (신세경의 직업이 식모였다는 것은 좀 비현실적이나, 그냥 불우한 환경의 아가씨였다고 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지붕킥'은 생각지도 못한 환타지적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갑작스런 죽음으로써만 맺어질 수 있었던 지훈과 세경 커플은, 현실의 어떤 장벽으로도 결국은 갈라놓을 수 없었던 운명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사랑과는 너무도 달랐기에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초리'에서 또 한 쌍의 커플이 아주 비현실적으로, 운명이라는 단어 외에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석진과 이영은의 멜로는 지세커플처럼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따스하면서도 엄벙덤벙 주책맞은 아가씨 유은주는, 젊은 나이에 부양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혼자 외롭게 세상과 맞서며 살아 온 조민성에게 좋은 짝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났던 스파크가, 불행이 아닌 행복의 전주곡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운명적 사랑이라 해서 모두 비극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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