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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리' 하석진, 최민용과 최다니엘의 계보를 잇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생초리

'생초리' 하석진, 최민용과 최다니엘의 계보를 잇다

빛무리~ 2010. 11. 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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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매일을 행복하게 해 주던 김병욱표 시트콤을, 일주일에 달랑 1번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은 차라리 고문에 가깝군요.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 (이하 '생초리')는 이제 겨우 3회까지 방송되었지만, 각각의 캐릭터는 거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중에도 단연 압도적으로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조민성(하석진)입니다. 그런데 왠지 하석진을 보면, 김병욱의 전작인 하이킥 시리즈에서 보았던 최민용과 최다니엘의 캐릭터가 자꾸만 겹쳐서 떠오르는군요.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 3명의 남자에게서는 적잖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우선은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혹은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등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추억에도 잠길 겸 해서 이들의 흥미로운 캐릭터를 간단히 분석 비교해 보았습니다.


1. '거침없이 하이킥'의 최민용 (극 중에서는 이순재의 아들 '이민용')


이순재의 아들이며 정준하의 동생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를 맡고 있으며, 이제 겨우 30살 가량의 나이지만 벌써 결혼과 이혼 경력이 있고 젖먹이 아들까지 둔 홀아비입니다. 부유한 병원집 막내아들로서 최고 신랑감에 손꼽히던 그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전처는 바로 '신지'였군요.

가족들의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일일이 간섭하며 통제하려는 형수 박해미와는 앙숙 관계입니다. 언뜻 보면 매우 까칠하고 시니컬한 성격이라 자기 사생활에 누군가 끼어드는 것을 못 참는 듯 보이지요. 그러나 수시로 봉을 타고 자기 방에 드나드는 가족들을 쿨하게 받아주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게다가 교사로서는 아주 훌륭한 마인드를 지닌 보기 드문 스승입니다. 비록 학생주임으로서 '미친개'라는 별명을 지니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학생들을 친동생이나 조카처럼 여기는 인물이지요. 이미 스무살이 넘었고 자기 부모와 함께 첩보활동을 하고 있는 강유미(박민영)의 정체를 알면서도 그냥 '자기 반 녀석'에 불과하다며 어떻게든 학교로 돌아오게 만들려고 애쓰던 민용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연애 면에서는 그의 시크하고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배려심 깊은 매력이 그대로 살아났습니다. 같은 학교 영어교사였던 서민정이 먼저 그를 사랑했지만, 민용은 쉽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혼남에 홀아비인 자신의 처지로 그녀를 욕심낼 수도 없었고, 게다가 민정은 전처 신지의 친구이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변함없이 자기를 향해 진심어린 사랑을 쏟아붓는 민정에게 감동한 민용은 드디어 모든 것을 각오하고 마음을 엽니다.

그렇게 시작된 순진녀 서민정과 까도남 최민용의 러브스토리는 재미와 감동을 고루 갖춘, 지금껏 제가 TV에서 보았던 모든 멜로 중에 거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민용에게 집착하는 전처 신지로 인해 그들은 안타깝게도 결혼을 앞두고 눈물의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훤칠한 허우대와 더불어 까칠함과 코믹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했던 최민용은 김병욱표 시트콤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아이 아빠 역할인 만큼 젖먹이 아들을 돌보거나 안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는데, 그 긴 팔로 아기를 폭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따뜻해 보였던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2. '지붕뚫고 하이킥'의 최다니엘 (극 중에서는 이순재의 아들 '이지훈')


최민용에 이어서 이순재의 막내아들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그 때만 해도 신인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던 최다니엘이었습니다. 이지훈, 이 남자는 '엄친아'라고 할만큼 완벽한 스펙을 갖추었군요. 이혼남에 홀아비였던 최민용에 비해, 이지훈은 총각이며 부잣집 막내아들에 잘 나가는 의사이니 흠 잡힐 곳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은 최민용보다 약간 뒤처진다고 판단됩니다. 일단 이 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시점이 등장하지 않고 베일에 싸여 있었기에,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너무 진지해서 코믹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지붕킥'이 워낙 독특한 작품이었으니 망정이지, 원래 이지훈 같은 캐릭터는 시트콤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속을 모르겠으니 점점 더 그 마음을 궁금해하게 되고, 그러다가 지훈에게 빠져들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끝까지 알 듯 모를 듯하던 지훈의 진심은 저로 하여금 긴장을 놓지 못하게 했고, 줄곧 애태우게 만들었지요. 원래의 구도를 벗어나 중간에 황정음과의 연애가 너무 길게 진행되었던 관계로 (원래의 시놉에는 지훈과 정음이 '잠깐' 사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는데, 실제 작품에서는 거의 확정적 연인 모드였지요) 시청자들에게 적잖은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기본 캐릭터상 이지훈은 신세경과 소울메이트이고 황정음과는 내면적으로 통하는 면이 하나도 없는데, 겉으로는 엉뚱한 방향의 커플이 맺어져 있었으니까요.

중간에 너무 오래 지속되었던 탈선은 결과적으로 '지붕뚫고 하이킥'을 망작으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김병욱 시트콤을 좋아하지만, 그리고 실제로 아주 재미있게 보았지만 성공작이라고 인정해 주기는 어려운 작품이었어요. 다른 길로 한참을 가다가 아무 준비 과정 없이 원래의 시놉대로 결말을 내 버렸으니, 그 황당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청자는 극소수에 불과했지요.


하여튼 이지훈은 역시 훤칠한 외모에 차가움과 미스테리함을 겸비한 매력적인 캐릭터였습니다. 베일 속에 싸인 와중에도 아주 감질나게 그의 내면이 살짝살짝 비춰지곤 했는데, 그럴 때면 너무 깊은 외로움이 전해져 와서 가슴이 쓰리곤 했습니다. 그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 그가 미술관에서 들여다 보던 그림... 그가 오래된 레코드점에 앉아서 눈을 감고 듣던 음악... 이 모든 것이 눈에 선하고 귓가에 쟁쟁하군요. 최다니엘은 결코 쉽지 않은 캐릭터 이지훈을 훌륭히 형상화시킴으로써 아주 독특하고 풍부한 감성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3. '생초리'의 하석진 (극 중에서는 '삼진증권'의 본사 기획부장 '조민성')


이순재의 막내아들은 아니지만, 까칠한 도시 남자의 매력을 발산하며 이후 멜로라인의 핵이 될 거라는 점에서 최민용과 최다니엘의 대를 잇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매우 똑똑하고 좋은 직업을 가졌으며 총각이라는 점에서는 이지훈과 좀 더 비슷합니다. 그런데 조민성에게는 최민용과 이지훈이 갖고 있지 않던 하나의 치명적 아픔이 있으니, 바로 그의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가족의 무게입니다.

꼬맹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무려 10명의 동생이 있는데, 아버지는 빚만 잔뜩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와 자기를 포함, 12명 가족의 생계를 오직 조민성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지요. 이렇게 되면 아무리 재수없을 만큼 까칠하게 굴어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그에게는 남의 사정을 봐줄만한 여력이 없으니까요.


그는 무조건 회사에서 인정받아야 하고, 무조건 출세해야 합니다. 사장 딸이 좋다고 매달리면 마음 내키지 않아도 받아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출중한 능력으로 돈을 많이 번다 해도 혼자 힘으로 12명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동생들 공부까지 시키기는 벅차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까지 불사하려는 조민성은, 어찌 보면 참 불쌍한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지나치게 거만을 떠는 행동은 그를 동정하다가도 조금씩 얄미워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조직사회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지만, 아버지뻘 되는 임원들에게도 너무 싸가지가 없거든요. 그만큼 조민성은 사장(김학철)으로부터 전적인 신임을 받고 있으며, 직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난데없이 벼락을 맞아(뚜둥~) 숫자치가 되고 말지요. 원래는 전자계산기보다 훨씬 빠른 암산능력을 지녔던 숫자 천재였는데, 갑자기 숫자를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숫자에 대한 개념이 싹 지워져 버린 겁니다.


숫자 부분을 담당하는 뇌에 일시적 이상이 생긴 탓이라는데 이게 좀처럼 회복되질 않습니다. 업무에 치명적인 장애를 갖게 되었기에 사직을 망설였지만, 그에게 목 매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습니다. 사장이 자기의 비밀을 알아차리기 전에 한동안 멀리 떠나 있기로 결심한 그는, 오지 중의 오지인 '생초리' 지점으로 자원하여 내려가게 됩니다. 

'생초리' 지점은 사실상 '버리기 위해 만들어진 카드'였습니다. 수개월째 최하위 실적을 기록하면서도 당최 업무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가리봉 지점 직원들에게 분노한 사장은, 원래 가리봉 지점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려 했으나 고용법상 그럴 수 없었기에, 스스로 그만두게 만들려고 궁벽한 시골에 판자집 수준의 사무실을 만들어서 그들을 내몰았던 것입니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오지인데다, 전기도 수도도 전화도 인터넷도 들어오지 않는 사무실에 입성한 직원들은 모두 아연실색하던 참인데, 마침 사장의 총애를 받는 조민성 부장이 부임해 옴으로써 이 모든 업무 지원은 단숨에 해결됩니다.


조민성은 사장을 설득하여 '버리는 카드'를 '살리는 카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생초리'의 주민들이 지역 재개발 보상금으로 받게 될 액수가 무려 1000억에 달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들을 주식시장에 끌어들여 3개월 이내에 100억 가량의 대박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한 것이지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생초리에 부임했지만, 정작 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소리를 하지 못해 "입이 아주 많아도 할 말이 없다"고 대체하는 상황입니다. 열이건 백이건 천이건 숫자가 들어가면 말문이 막혀 버리거든요. 틈만 나면 병아리가 그려진 초등학교 산수문제집을 들여다보며 숫자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천재의 모습은 한편 슬프면서도 코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조민성의 캐릭터는 충분히 대박의 조짐이 보입니다. 숫자치가 됨으로써 최다니엘이 갖지 못했던 코믹성을 확보했고,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새롭게 적응해 나가야 하는 상황도 각 캐릭터의 고유한 특징을 드러내기에 아주 좋은 설정입니다. 이제 그는 서민정과 약간 비슷한 순수 캐릭터 이영은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 동안의 차가움을 조금씩 따뜻함으로 바꾸어 가겠지요. 까칠남의 변신은 언제나 짜릿한 설렘을 동반합니다. 저는 '민용앓이', '지훈앓이'에 이어서 이번에도 감미로운 '민성앓이'를 할 준비를 마쳤는데, 다만 기다리는 일주일이 힘겨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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